옥당에서 임금이 여러 일에서 형식적이지 말고 실지로 독실하게 실천할 것을 진계
옥당(玉堂)에서 차자(箚子)를 올렸는데, 대략 이르기를,
"전하께서 평일에 스스로 기약하신 바는 한(漢)나라·당(唐)나라보다 휠씬 뛰어 나고자 함이었는데, 형식(形式)만 잘 꾸미려는 의사가 늘 이기고 실지로 독실하게 실천하려는 공력은 늘 적었습니다. 어제의 성교(聖敎)로 말하더라도 선비를 존숭하고 늙은이를 존경하는 일을 어찌 재앙이 닥칠 때를 기다리겠습니까? 그런데 두서너 사람의 신하를 부른 일들은 아마도 허식의 말에 지나지 않음을 면치 못할 듯합니다. 왜냐하면 전하의 마음에 과연 지성으로 꼭 불러들일 뜻이 있었다면 나라의 동량(棟樑)으로 여기면서 산야(山野)에 버려둘 이치는 없었을 것입니다. 어찌 일찍이 평일에 정성을 다하여 ‘늙은이를 버리지 말라.’는 뜻을 본받지 아니하시고 근시(近侍)에게 명하여 유소(諭召)케 하라는 명을 오늘에야 내리십니까? 산림에서 독서(讀書)하는 무리들에게도 은근스럽게 별유(別諭)하라 하신 것은 말씨나 예모(禮貌)에 있어서 구차하고 만홀(慢忽)하다고 여김을 면치 못할 듯합니다. 저들 암혈(巖穴) 속에서 스스로 그 몸을 아끼는 무리들 중에 참으로 몇이나 현사(賢士)가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오나, 일컫기를 ‘독서하는 무리’라 하면서 어슬렁어슬렁 제발로 걸어오게 하려고 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는 전하께서 존유(尊儒) 경로(敬老)한다는 명성은 있으나 존유 경로하는 실상은 없는 것이니, 황발자(黃髮者)429) 는 들에 숨고 독서자는 암혈에 숨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전하께서는 매양 형식을 버린다 하시면서 형식은 더욱 늘고 실덕(實德)에 힘쓰겠다 하시면서 실덕은 튼튼하지 못하니, 오늘날 조정 신하로서 전하를 섬긴 자들은 그 폐단이 마침내 허위에 그침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뜻이 같은 사람은 두호(斗護)하는 즈음에 피혐(避嫌)하면서 오직 계교(計較)만 일삼고, 사(私)는 버리고 공(公)에 힘쓰는 중간에서 이름만을 얻기 위하여 오로지 가식(假飾)만 만들어 냅니다. 허물이 진취(進取)에 방해가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분수에 지나친 의논을 창도(倡導)하여 두각(頭角)을 바꾸려 하고, 사단(事端)이 후고(後顧)의 염려가 있거나 꺼리는 바에 저촉되면 오로지 윗사람의 처분에 맡겨 미봉(彌縫)하기만을 구차하게 바라고 있으니, 그 까닭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전하께서 일세(一世)를 이끌어가는 표방은 반드시 다함께 대동(大同)의 경지에 이르게 하고자 하심이니, 뜻하신 바가 지공 지정(至公至正)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다만 다스려짐은 구함이 너무 급하고 효과를 바람이 너무 빨리 말이 시사(時事)에 관계되면 구습(舊習)을 버리지 못하였다고 책망하시고 말이 조정의 현실에 미치면 마음을 씻지 못하였다고 의심하시므로 오늘날 한 마디 말을 올리고 한 가지 일을 논하는 자들은 문득 백방으로 헤아려서 반드시 구습을 버린 것으로 꾸미고 마음을 씻어버린 것으로 꾸미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반드시 공정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 비록 지성에서 나왔지마는, 다만 군신(君臣)들이 형편이 없고 오로지 성실성이 모자람으로 해서 기절(氣節)은 날로 더욱 저상(沮喪)되고 언론은 날로 더욱 모호하게 되었으니, 세도(世道)를 걱정함에 있어서 어찌 대단히 상심(傷心)하지 않겠습니까? 또 전하께서 여러 신하들을 깔보심은 실로 전하 자신의 큰 흠이 되고 있습니다. 다만 작록을 잡아매는 것을 구사(驅使)하는 제일 상책이라 여기시므로, 대신(大臣)을 우대하는 마음이 연주(筵奏)하는 사이에 나타나지 않고 대각(臺閣)을 멸시하는 기풍이 비유(批諭)할 즈음에 번번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말 한마디를 하시고 글 한 줄을 씀에 있어서 스스로 옳다고만 여기시면, 대신이 비록 간하고 대간(臺諫)이 비록 말하더라도 흔연히 받아들여 고루 베푸는 아름다움은 전연 없고 한갓 허물을 숨기고 나쁜 짓을 그대로 하려고 하는 병폐만 있게 됩니다. 여러 신하들도 ‘우리들의 성의가 부족한데 어떻게 임금의 마음을 돌릴 수가 있겠는가?’라고 여기면서 오로지 잠잠히 따르고 용인(容認)하는 것으로써 자신을 위하는 계획으로 삼아 우탄(憂歎)하는 말은 사실(私室)에서만 들리고 광구(匡救)하는 의논은 어좌(御座)에까지 미치지 못하니, 신은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신 등이 가만히 듣건대, 엊그제 연석(筵席)에서 염퇴(恬退)의 기풍을 권장하자고 청한 사람이 있었는데, 전하께서 ‘이런 사람들을 중용한다면 앞으로 분분하게 고퇴(告退)할 것이다.’라고 전교하셨다 하니, 애석합니다. 전하의 말씀이 어찌하여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진실로 그의 뜻이 득실(得失)에만 있다면 전하께서 비록 날마다 상을 내리면서 물러가기를 바라도 반드시 이루지 못할 것이며, 진실로 그의 뜻이 명절(名節)430) 에 있다면 전하께서 비록 날마다 상을 내리면서 나오기를 바라도 이 또한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참다운 염퇴(恬退)와 거짓 염퇴를 논할 것 없이 이들은 상층에 속한 사람들이니, 나약한 사람을 분기(奮起)시키고 욕심이 많은 사람을 청렴케 하는 도리로써 마땅히 이들을 부기(扶起)시켜야 하는데, 이름을 구하여 스스로 잘난 체하는 무리들은 쉽사리 높은 벼슬을 얻고 물러나서 조용히 자기 본분을 지키는 선비는 조그만 봉록(俸祿)도 얻지 못하니, 이는 전하께서 반드시 탐연(貪戀)하고 분조(奔躁)하는 것을 권면하지 아니했다 할 수 없습니다. 신하로서 본받는 도리는 오직 임금의 호오(好惡)에 달려 있으니, 전하께서 왕자(王者)의 탕평(蕩平)에 힘쓰려 하시기에 여러 신하들도 탕평에 힘쓰다 보니 그 폐단이 가식과 허위에 병폐가 있게 되었고, 전하께서 조정의 영정(寧靖)을 바라셨기에 그 폐단이 함묵(含默)과 천연(遷延)이 병폐가 생겼으며, 전하께서 신하들의 직무 충실을 바랐기에 그 폐단이 골몰(汨沒)과 구차(苟且)의 병폐가 따르게 된 것입니다.
은(殷)나라의 실질(實質)을 숭상하던 기풍도 주(周)나라 말엽의 문식(文飾)에 지나친 폐단이 되었으니, 가식과 허위의 병폐는 무엇으로 구해야 하고 함묵 천연의 걱정은 무엇으로 고쳐야 하며 구차 골몰의 폐습은 무엇으로 바로잡으려 하십니까? 가만히 살펴보건대, 전하께서는 지나치게 총찰(聰察)하시다 보니 응중(凝重)하고 침잠(沈潛)하는 공력이 혹시 모자라게 되고, 정신만 믿다 보니 홍대(弘大) 관용의 도량이 조금 부족합니다. 총명이 부족하지 아니하시어 은밀한 것을 들추어내시기도 하고 과단이 부족하심은 아니신데 가차(假借)와 고식(姑息)을 일삼고 있으십니다. 경연에서의 전교는 너무 지번(支繁)에 관계되고 조정의 체통은 전연 간엄(簡嚴)한 면이 없습니다. 위에서는 지중(持重)할 뜻이 없고 아래에는 친압하는 폐단이 있어서 기강(紀綱)은 날로 해이해지고 체통은 날로 문란해지며, 규모는 날로 좁아지고 기상은 날로 위축되어 갑니다. 세상에서는 색부(嗇夫)의 구변(口辯)431) 에만 힘쓰고 장상여(張相如)432) 의 중후(重厚)한 인품으로써 부끄럽게 여기며, 사람들은 가의(賈誼)433) 의 젊음을 취하고 안사(顔駟)434) 의 늙은 것을 수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조종조(祖宗朝)의 독후(篤厚)한 기풍을 지금은 볼 수가 없으니, 견식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매우 걱정하고 깊이 한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극기 복례(克己復禮)의 공부에 있어서도 이는 바로 성학(聖學)의 대요(大要)에 관계되는 일인데 여러 가지 흠집이 모두 사의(私意)로부터 나오게 되어 일이 궁례(宮隷)에 관계되면 반드시 막아주고 두호하려는 뜻이 있으며, 말이 궁방(宮房)에 관계되면 바로 호되게 꾸짖고 싫어하시는 빛을 보이십니다. 얼마 전 이희태(李熙泰)를 잡아들였다가 바로 풀어 준 일에 있어서도 거조(擧措)의 전착(顚錯)을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혈기의 사의(私意)가 항상 의리의 함양(涵養)을 이겨 듣기에 거스른 말씀이 저절로 사령(辭令) 사이에 폭로된 것이겠습니까? 생각건대, 조용한 밤 정신이 맑을 때에 전하께서는 반궁 자성(反躬自省)하시지도 않으셔서 오늘이 겨우 지났는가 하면 내일은 또 그러하십니다.
신(臣) 등이 깊이 아쉬워하는 바는 무엇보다도 전하의 심학(心學)이 순수치 못하신 점입니다. 대저 일에 접하고 사람을 대하는 도리가 중정(中正)에 맞도록 힘써야 함에도 전하께서는 모든 희로(喜怒)가 발로할 즈음에 절도에 맞지 않을 때가 많아 신하로서 견책을 당한 자는 반드시 말하기를, ‘지금은 비록 죄를 얻었지만 내일이면 풀려날 것이다.’하면서 두려워할 줄을 모르고, 포상을 받은 자도 말하기를, ‘내가 비록 이를 받았지만 남들도 많이 받았었다.’하면서 영예롭게 여기지 아니하며, 우레 같은 위엄이 땅을 흔들어도 예사로 보고 거룩한 포상은 햇빛처럼 빛나도 등한하게 여기니, 전하께서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은 어찌 크게 경성(警省)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근래에는 모든 기무(機務)의 정체됨이 많고 조석(朝夕)의 소대(召對)를 모두 폐해 버려 은대(銀臺)435) 의 사소한 문서를 더러는 밤이 지나도록 내려보내지 않으시고 옥서(玉署)436) 의 많은 강관(講官)들은 한갓 번갈아 수직(守直)하기에만 번거로울 뿐입니다. 이런 일들은 대개 빈소(殯所)에서 애훼(哀毁)하시는 가운데 다른 일에 생각이 미칠 겨를이 없겠으나, 진실로 일성(日省)의 공력을 처음처럼 부지런히 하시려거나 시민(時敏)의 공부를 전처럼 서둘러 하시려고 하셨다면, 전번 인산(因山)437) 이 촉박하기 전에라도 어찌 한두 번 독례(讀禮)할 겨를이야 없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얼마 전부터 여러 차례 애척(哀慽)을 겪으셔서 의지도 꺾이시고 정신도 소멸(消滅)되시니, 매양 천안(天顔)438) 을 우러러보면 이전과 같지 않으시다는 느낌이 항상 들었습니다만, 분발하고 진작하는 방도는 오직 성심(聖心)의 자려(自勵)에 있으니, 신 등의 경경(耿耿)한 마음이 어찌 더욱 비격(悲激)치 않겠습니까? 대소(大小)의 직무를 게을리 하고 중외(中外)가 태만하니, 모유(謨猷)와 주획(籌畫)은 정히 민우(民憂)를 강구하기에 시급한데도 매년 왕언(王言)을 내리신 바는 지상(紙上)의 공담(空談)을 면치 못하고, 1년 동안 묘당(廟堂)에서 연구한 바는 옥하(屋下)의 한담(閒談)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 궁방(宮房)에서 절수(折受)439) 한 것이 아직까지 산택(山澤)을 점거하고 있는데도 그대로 두라는 판부(判付)440) 를 혹 위복(違覆)할 즈음에 내리시고 각 아문(衙門)의 장토(庄土)가 민간에 널려 있는데도 제외시키라는 영갑(令甲)441) 이 법으로 정한 뒤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논의해야 할 일들이 어찌 이것뿐이겠습니까만, 신 등이 정성들여 진계(陳戒)한 바는 성상께서 유루(遺漏)하신 것을 지적함에 그쳤습니다. 참으로 군주의 마음만 한번 바로잡히면 모든 일이 다 잘 되어질 것이니, 재앙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아들일 방책이 오로지 ‘성(誠)’자의 바탕위에서 착공(着工)을 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성명(聖明)께서는 밝게 살피소서."
하니, 임금이 우비(優批)를 내리고 원차(原箚)는 궁궐 안에 머물러 두게 하라고 명하였다. 이때에 옥당(玉堂)의 김상성(金尙星)·이종백(李宗白) 등은 강경한 소론(少論)으로써 송인명(宋寅明)·유엄(柳儼) 등의 조정(調停)하려는 의논에 불만이 있었기에 차사(箚辭) 가운데 약간의 비방함을 보였으나, 군덕(君德)을 논한 대목에는 절실한 말들이 많았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8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28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상-유학(儒學) / 윤리-강상(綱常) / 사법(司法) / 농업-전제(田制) / 왕실(王室)
- [註 429]황발자(黃髮者) : 노인.
- [註 430]
명절(名節) : 명예와 절개.- [註 431]
색부(嗇夫)의 구변(口辯) : 한 문제(漢文帝)가 상림(上林)의 호권(虎圈)에 몰라 여러 금수(禽獸)의 장부[簿]를 물을 때 하리(下吏)가 말이 막힘이 없이 수다스럽게 설명을 잘하자, 문제가 말을 잘한다며 상림령(上林令)을 삼으려 했다는 고사(故事).- [註 432]
장상여(張相如) : 한 문제(漢文帝) 때 사람.- [註 433]
가의(賈誼) : 한 문제(漢文帝) 때 문신(文臣). 나이 20세에 발탁(拔擢)되어 박사(博士)·태중 대부(太中大夫)가 되었음.- [註 434]
안사(顔駟) : 한(漢)나라의 문제(文帝)·경제(景帝)·무제(武帝) 3대를 걸쳐 낭서(郞署)의 낭관(郞官) 자리에 있었는데, 문제가 낭서를 지나다가 "왜 그리 늙었느냐?"고 묻자, "때를 만나지 못하여 낭서에서 늙게 되었다."하니, 그 말에 감동하여 회계 도위(會稽都尉)에 탁배(擢拜)했음.- [註 435]
은대(銀臺) : 승정원.- [註 436]
옥서(玉署) : 홍문관.- [註 437]
인산(因山) : 국장(國葬).- [註 438]
천안(天顔) : 임금의 얼굴.- [註 439]
절수(折受) : 임금에게서 봉록으로 토지 또는 어전(魚箭)·염장(鹽場) 등을 자기 몫으로 떼어 받던 일.- [註 440]
판부(判付) : 《숙종실록(肅宗實錄)》 제 63권을 보면, "무릇 공사(公事)에서 글을 내려 상교(上敎)를 낸 것을 판부(判付)라 한다." 하였음. 판하(判下).- [註 441]
영갑(令甲) : 정령(政令).○玉堂上箚, 略曰:
殿下平日自期, 非不欲淩駕漢、唐, 而賁飾文具之意, 常勝, 篤踐實地之工, 常少。 以昨日聖敎言之, 尊儒敬老, 何待遇災之日? 而敦召數臣之擧, 恐不免爲虛文之言。 何者使殿下之心, 果有至誠必致之意, 則未有視以棟樑, 而棄諸山澤之理。 曷嘗不平日敦誠, 以體夫無遺壽耉之意, 而命近侍諭召之命, 始在於今日耶? 至於山林讀書之類, 宜令慇懃別諭云者, 辭旨禮貌之間, 恐未免爲簡慢之歸。 彼巖穴自好者, 雖未知眞有幾箇賢, 士而稱之曰: "讀書之類。" 而欲其于于自至者, 不亦難乎? 是則殿下有尊儒敬老之名, 而無尊儒敬老之實, 宜其黃髮者遯于野, 而讀書者藏于穴也。 殿下, 每以爲去文具, 而文具彌增。 殿下, 每以爲務實德, 而實德未固, 今日廷臣之事殿下者, 其弊終未免虛僞而止耳。 避嫌於伐異護同之際, 而惟事計較, 沽名於祛私務公之間, 而專出假飾。 釁累, 有妨於進取, 則必倡過分數之論議, 或換頭角, 事端有涉於顧畏, 則專委在上者處分, 苟冀彌縫, 其故無他。 今日殿下之導駕一世者, 必欲偕底於大同之域, 聖意所在, 非不至公至正, 而惟其求治太急, 望效太速, 言涉時事, 則責之以不祛舊習, 語關朝象, 則疑之以未滌腔子, 故今日之進一言論一事者, 輒必百般揣摩, 文之以必祛舊習, 飾之以必滌腔子。 殿下之必欲公正者, 雖出至誠, 而只緣群臣無狀, 專欠誠實, 馴致於氣節日益消沮, 言議日益模糊, 世道之憂, 寧不痛心? 且殿下之輕視群下, 實爲聖躬之一大累。 惟以爵祿羈縻看, 作驅使之第一策, 而優禮大臣之意, 不見於筵奏之間, 蔑視臺閣之風, 輒形於批諭之際。 殿下發一言措一辭, 自以爲是, 則大臣雖爭之, 臺諫雖言之, 全無翕受敷施之美, 徒有文過遂非之病。 群下亦以爲我輩誠淺, 豈有回天之望, 而專以循默含容, 自以爲家計憂歎之言, 徒聞於私室, 而匡救之說, 不及於廈氈, 臣實痛之。 臣等竊伏聞, 日昨筵中, 有以奬恬退爲請者, 而殿下以崇用此等人, 必將紛紜告退爲敎, 惜乎。’ 殿下之言, 何爲及此也? 苟其志在於得失, 則殿下雖日當而求其退, 必不可得, 苟其志在於名節, 則殿下雖日賞而求其進, 亦不可得。 勿論眞恬退、假恬退, 是上一着人, 則立頑勵廉之道, 政當扶起此等, 而干求自衒之徒, 輒得高官, 退靖自守之士, 未霑寸祿, 是則殿下未必不以貪戀奔躁勸之也。 人臣慕效之道, 惟在君上之好惡, 殿下務皇王之蕩平, 故群下亦務蕩平, 而其弊也有矯飾虛僞之病, 殿下喜朝廷之寧靖, 故其弊也有容默媕婀之病, 殿下欲臣僚之恪職, 故其弊也有淟涊苟且之病。 殷之尙質, 爲周末文勝之弊, 則抑未知矯飾虛僞之病, 何以救之, 容默媕婀之憂, 何以革之, 苟且淟涊之習, 何以矯之耶? 竊觀殿下, 過用聰察, 而或欠堅凝沈潛之工, 獨任精神, 而稍遜弘大寬容之量。 明非不足, 而甚至於摘抉懲隱, 斷非不足, 而惟務於假借姑息。 筵敎太涉於支繁, 朝體全欠於簡嚴。 上無持重之意, 下有褻威之弊, 紀綱日損, 體統日紊, 規模日隘, 氣像日迫。 世務嗇夫之辯, 而必以相如爲恥, 人取賈誼之少, 而必以顔駟爲愧。 祖宗篤厚之風, 今不可見。 則有識之士, 安得不深憂永歎乎? 至於克復之工, 係是聖學之大要, 而種種疪纇, 皆從私意中出來, 事關掖屬, 必有周遮曲護之意, 言涉宮房, 輒示呵責厭薄之色。 如向來李熙泰之旣拿旋放, 亦可見擧措之顚倒, 則是何血氣之私, 常勝於義理之涵養, 而遜逆之言, 自致於辭令之暴露歟? 仰惟靜夜淸明之際, 殿下旣不能反躬自省, 而今日纔了, 明日又然。 臣等之所可深惜者, 特殿下心學之未粹耳。 大抵應事接物之道, 務歸中正, 而殿下凡於喜怒之際, 多不中節, 群下之被譴責者, 必曰: "今雖得罪, 明可蒙放。" 而不知懼, 群下之得褒嘉者, 亦曰: "我雖得此, 人亦多獲。" 而不知榮, 雷威撼地, 而視若尋常, 袞褒光日, 而看作等閒, 殿下之使群下至此者, 豈非大可警省處乎? 近來萬機多滯, 兩對俱廢, 銀臺之些少文書, 或至經夜不下, 玉署之許多講官, 徒煩輪直空守。 此蓋嚴廬哀疚之中, 不遑及他, 而誠使日省之功, 孜孜如初, 時敏之工, 汲汲猶前, 則向於因山未迫之前, 豈無一二讀禮之暇耶? 殿下自頃以來, 屢經悲慼, 志意摧沮, 神思消減, 每瞻大顔, 常有非昔時之感。 而奮發振刷之方, 惟在聖心之自勵, 則臣等之耿耿愚忱, 安得不益自悲激也? 若其大小恬嬉, 中外怠慢, 訏謨籌畫, 政急於講磨民憂, 而每歲德音之所頒降者, 未免紙上空談, 終歲廟謨之所講究者, 不過屋下游談。 諸宮房折受, 猶占山澤, 而仍存之判付, 或下於違覆之際, 各衙門屯庄, 殆遍田閭, 而還免之令甲, 多在於定式之後。 今日可論之事, 豈宜止此? 而臣等眷眷陳戒, 不出於聖躬闕遺者。 誠以君心一正, 萬事可做, 弭災迓休之方, 專在誠字上着工之如何。 惟聖明, 澄省焉。
上優批, 命原箚留中。 時, 玉堂金尙星、李宗白等, 以峻少, 不滿於宋寅明、柳儼輩, 調停之論, 故箚辭略示譏姍, 而論君德處, 語多切中。
- 【태백산사고본】 21책 28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28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상-유학(儒學) / 윤리-강상(綱常) / 사법(司法) / 농업-전제(田制) / 왕실(王室)
- [註 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