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강이 끝난 후 김시혁이 해서의 황당선의 일을 아뢰다
석강(夕講)을 행하였다. 진강(進講)이 끝나자, 참찬관 김시혁(金始㷜)이 아뢰기를,
"해서(海西)의 황당선(荒唐船)은 우려(憂慮)할 만한 것입니다. 경인년697) 무렵에 조가(朝家)에서 장연부(長淵府) 금사사(金沙寺)의 중들을 시켜 요망(暸望)하여 살피다가 쫓아가 잡도록 하고, 또 승대장(僧大將)을 정하여 전방선(戰防船)을 만들어 주었으며, 감영(監營)에서 돈을 빌려주어 절 앞의 포구(浦口)에 진보(鎭堡)의 모양과 같이 둑을 쌓게 하여 길이가 40리나 되었는데, 1천 섬지기 가량이나 됩니다. 절의 근처는 중들로 하여금 지어먹게 하고, 그 나머지는 민간을 모집하여 지어 먹게 하되, 세곡(稅穀)을 본사(本寺)에 받아 두고서 군향(軍餉)으로 하면 공사(公私)가 편리하게 될 것이니,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낭관(郞官)을 보내어 간심(看審)하게 한 다음에 절목(節目)을 만들어 시행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듣건대, 북도(北道)에는 중이 많다는데, 혹시라도 피인(彼人)들이 와서 섞이게 된다면 이는 또한 안될 일이다. 모승(募僧)은 도신(道臣)의 장계(狀啓)를 기다려 본 다음에 처결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24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165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건설(建設) / 사상-불교(佛敎) / 재정(財政) / 군사-병참(兵站)
- [註 697]경인년 : 1710 숙종 36년.
○丙申/行夕講。 講訖, 參贊官金始㷜奏: "海西荒唐船可憂。 庚寅間, 朝家使長淵府 金沙寺僧徒, 瞭察追捕, 又定僧大將, 造給戰防船。 如鎭堡模樣, 寺前浦口, 自監營貸錢築堰, 長可四十里, 可爲千石落。 寺近處令僧耕食, 其餘募民耕食, 稅穀捧貿本寺, 作軍餉, 則公私便利, 請令廟堂, 遣郞看審後, 成節目施行。" 上曰: "聞北道多僧, 彼人或來混雜, 此亦不可。 募僧待道臣狀聞後處之。"
- 【태백산사고본】 19책 24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165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건설(建設) / 사상-불교(佛敎) / 재정(財政) / 군사-병참(兵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