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영조실록 18권, 영조 4년 5월 5일 을묘 3번째기사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국안 중 긴요한 것으로써 한 책으로 만들도록 하다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서 대신(大臣)·제신(諸臣)을 인견(引見)하였다. 호조 참판(戶曹參判) 정석삼(鄭錫三)이 말하기를,

"정희량(鄭希亮)심유현(沈維賢)이 지어낸 흉언(凶言)을 듣고 화답하고 창도(唱導)하여 인심을 의혹시켜 한 나라의 반쯤 되는 사람이 흉역(凶逆)으로 빠져 들었는데, 역적 임환(任環)·이사로(李師魯) 등이 승복한 뒤로 국가에 대한 무혹(誣惑)이 비로소 시원하게 씻어졌으니, 그 죄인이 공초한 것을 팔방에 반포하여 보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고, 예조 판서(禮曹判書) 이집(李㙫)이 말하기를,

"대고(大誥)를 지어 팔도에 효유(曉諭)하면 더욱 마땅하겠습니다."

하고, 영의정(領議政) 이광좌(李光佐)가 말하기를,

"영남(嶺南) 사람을 보면 죄다 속지는 않았으므로 온 도(道)의 사람이 호응하지 않았습니다마는, 죄인의 긴요한 공초를 초록(抄錄)하여 명백히 반포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고, 풍릉군(豐陵君) 조문명(趙文命)이 말하기를,

"역적 김일경(金一鏡)갑진년415) 에 한 흉언을 심유현이 받아서 갑진년 이후의 흉언을 만들었고, 이천해(李天海)가 임금을 헐뜯은 일도 다 심유현이 꾀어 시킨 탓인데, 두 역적의 공초가 나온 뒤로 흉언의 근저(根柢)가 남김없이 드러났습니다."

하고, 이광좌가 또 말하기를,

"역적의 지극히 흉악한 정상은 다만 한때 반포하여 보이기만 하고 말 수 없으니, 전후의 국안(鞫案)을 죄다 가져다가 한 통(通)을 초록하여 한 책으로 만들어 인쇄하여 널리 전파하여 천만세(千萬世)에 명백하게 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겠습니다."

하고, 좌의정(左議政) 조태억(趙泰億)이 말하기를,

"국안(鞫案) 중에서 긴요한 것을 베껴 내어 예전 이괄(李适)의 변란 때의 《서정록(西征錄)》처럼 한 책을 만드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고, 이광좌가 말하기를,

"요상(僚相)과 송인명(宋寅明)이 전말(顚末)을 잘 아니, 이 사람들에게 맡겨서 반포하되 《무신감란록(戊申勘亂錄)》이라 이름을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조문명이 말하기를,

"당초에 역도(逆徒)가 반드시 갑진년416) 이전의 패역(悖逆)한 말을 이어받아 펴려고 심유현을 꾀어 흉언을 지어낸 정상이 이제 이미 마디마디 드러났으니, 팔도에 고유(告諭)할 뿐더러 책자를 만들면 만세에 전하는 것이 더욱 완비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고유(告諭)는 한때에 보일 뿐이고 책자는 만세에 전할 수 있으니, 좌상(左相)이 그 일을 주관하고 송인명이 찬술하고 제신(諸臣)이 참증(參證)하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 사간(司諫) 이춘제(李春躋) 등이 아뢰기를,

"예전부터 역란(逆亂)하여 군사를 일으켜 대궐을 범한 자는 있으나, 갖가지 흉언을 지어내어 방자하게 임금을 무함하고 인심을 어지럽힌 것으로 말하면 어찌 오늘날 역변(逆變) 같은 것이 있겠습니까? 대개 그 흉악한 꾀와 반역한 정상은 참으로 역적 김일경이 지은 교문(敎文) 가운데에서 나왔고, 이천해(李天海)·이순관(李順觀)·정탁(鄭倬) 등 여러 역적의 변란도 다 심유현이 몰래 부추긴 데에서 말미암았는데, 역적 이사로·임환의 공초가 나와서 흉언의 근저가 여기에서 더욱 남김없이 드러났습니다. 더구나 그 집이 가난하다는 말로 보면 그가 몰래 반역할 뜻을 일으켜 부귀하려고 꾀한 것은 일조일석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역란이 일어난 것은 김일경에게서 비롯하여 심유현에게서 마쳤으므로 그 흉역의 속마음이 일관하여 왔으니, 그 죄악을 논하면 참으로 모든 역적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그는 이미 완악하여 신장(訊杖)을 맞다가 지레 죽었으므로, 왕법(王法)이 시행될 것은 집을 부수고 그 자리에 못을 파는 일뿐이니, 청컨대 역적의 괴수 심유현의 집에 부수고 못을 파는 율(律)을 빨리 왕부(王府)417) 에서 거행하게 하소서."

하고, 장령(掌令) 홍중징(洪重徵) 등이 아뢰기를,

"역적 김일경이 교문을 지은 뒤로부터 또 이천해가 임금을 헐뜯는 흉언이 있었는데, 그 차마 들을 수 없고 차마 말할 수 없는 지극히 흉악한 죄는 참으로 임금과 신하가 있은 이래로 없던 변고이니, 오늘날의 신하로서 누구나 다 속을 썩이고 뼈가 아파 피눈물을 흘리며 한 번 임금이 몹시 무함당한 것을 씻으려 생각한지 이제 몇 해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하늘이 굽어보고 귀신이 옆에 벌여 있어 몰래 행한 역모(逆謀)가 자연히 드러나서 이번 국옥(鞫獄)에서 비로소 흉언을 지어낸 것이 본래 심유현에게 비롯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역적 김일경을 이어받고 이천해를 꾀어 비밀히 퍼뜨리고 몰래 선동하여 인심을 어지럽혀 서로 전하고 이어받은 것이 일관하여 온 정상이 역적 임환의 공초에 이르러 남김없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와서 보면 이유익(李有翼)·민관효(閔觀孝)·박필현(朴弼顯)·박필몽(朴弼夢)·한세홍(韓世弘)·이하(李河)와 여러 나가(羅哥) 등 역적이 모두 이 역적의 우익(羽翼)이고 폐고(廢錮)된 족속으로서 나라를 원망하는 무리와 먼 지방의 어리석고 사나운 무리가 휩쓸려 붙어서 서로 창화(唱和)하여, 처음에는 글을 내어 걸어 중외(中外)에 퍼뜨리고 나중에는 군사를 일으켜 호서(湖西)·영남(嶺南)에서 설친 것도 모두 이 역적이 주장한 것이니, 역적의 공초 가운데에 이른바 그 집이 적막(寂寞)하다는 말은 참으로 흉역(凶逆)의 속마음을 다 드러낸 것입니다. 그 죄악을 논하면 베어서 만 토막을 만들어도 족히 신명과 사람의 분노를 풀만하지 못한데 형장을 맞다가 지레 죽어서 그 목을 보전하였으니, 이미 크게 실형(失刑)한 것이며, 역적을 토죄(討罪)하여 으레 시행해야 할 율이 아직 시원히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말하면 이것이 성의(聖意)를 두신 것이 있는 데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왕법이 무너지는 것이 이보다 심할 수 없으므로 여정(輿情)의 울분이 갈수록 더욱 심해집니다. 오늘날 신들이 임금을 위하여 분을 풀 것은 집을 부수고 못을 파는 한 가지 일뿐이니, 청컨대 역적의 괴수 심유현의 집을 부수고 못을 파는 율을 빨리 시행하소서."

하였다. 양사(兩司)에서 연계(連啓)하여 한 해를 넘기며 쟁집(爭執)하였으나, 임금이 부부인(府夫人)이 있기 때문에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임금이 하교(下敎)하기를,

"역적들이 흉언을 지어낸 것이 어디에서 말미암아 나왔는가? 역적 김일경과 역적 목호룡(睦虎龍)이 마음에 다른 뜻을 품고 바야흐로 모반을 꾀할 때에 서덕수(徐德秀)의 아주 패악하여 차마 들을 수 없는 공초가 나왔으므로 그들이 마치 기화(奇貨)를 얻은 듯하여 더욱 흉악한 마음을 싹틔우고 흉악한 말을 내게했는데, 흉악한 말을 낸 자는 심유현이고 뒤미처 김일경·목호룡을 이어받아 악역(惡逆)을 방자하게 행한 자는 역적 박필몽과 여러 역적들이다. 이것을 미루어 보면 일이 어찌 앞뒤가 없겠는가? 역적의 변란이 있은 뒤에 번번이 한 마디 말하려 하였으나, 이 일에 언급하면 마음과 창자가 모두 아팠고, 이미 버려두어 논하지 말게 한 뒤에는 너무 심함을 면할 수 없으므로 미처 하교하지 못하였다. 역적을 토죄하고 거짓을 밝히는 이때를 당하여 흉악한 말을 처음 내고 흉악한 마음을 일으킨 사람을 버려두고 묻지 않으면 내 처분이 뇌뢰낙락(磊磊落落)하다 하겠는가? 서덕수를 그대로 역안(逆案)에 두라고 해부(該府)에 분부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8권 5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4면
  • 【분류】
    변란(變亂)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출판-서책(書冊)

○上引見大臣、諸臣於熙政堂。 戶曹參判鄭鍚三言: "希亮維賢做出之凶言, 和而唱之, 傾惑人心, 半國之人, 陷爲凶逆, 自賊師魯等承款之後, 國誣始得快雪, 以其罪人之招, 頒示八方, 似好矣。" 禮曹判書李㙫言: "作爲大誥, 曉諭八路, 尤爲得宜。" 領議政李光佐言: "以嶺南人觀之, 不至於盡爲見欺, 故一道人, 不爲相應, 而抄罪人緊招, 明白頒布似好矣。" 豐陵君 趙文命言: "逆鏡之甲辰凶言, 維賢取以爲甲辰後凶言, 天海詬天之擧, 皆維賢敎誘之致, 自兩賊招出之後, 凶言根柢, 彰露無餘。" 光佐又言: "逆賊窮凶情節, 不可但爲一時頒示而止, 悉取前後鞫案, 抄錄一通, 作爲冊子, 廣印傳布, 使千萬世曉然, 不可已也。" 左議政趙泰億言: "抄出鞫案之緊要者, 作爲一冊, 如古變時《西征錄》宜矣。" 光佐言: "僚相與宋寅明, 詳知顚末, 委之此人, 纂述, 以活字印出頒布, 以《戊申勘亂錄》, 定名好矣。" 文命言: "當初逆徒之必欲祖述甲辰前悖逆之言, 敎誘維賢, 做出凶言之狀, 今已節節綻露, 告諭八路之外, 作爲冊子, 則可傳萬世, 尤爲完備矣。" 上曰: "告諭則只示一時, 冊子則可傳萬世, 左相呈管其事, 宋寅明纂之, 諸臣參證可也。" 司諫李春躋等奏曰: "自古逆亂, 稱兵犯闕者則有之, 至如做出百岐之凶言, 肆然誣上, 煽惑人心, 豈有如今日逆變者耶? 蓋其凶圖逆節, 實自賊所撰敎文中出來, 而諸賊之變, 又皆由於維賢之陰嗾, 逆、賊之招出, 而凶言根柢, 於斯益彰露無餘矣。 況以渠家草草之說觀之, 其潛出異志, 圖爲富貴者, 非一朝一夕之故也。 今日逆亂之作, 蓋始於一鏡, 而終於維賢, 其凶肚逆腸, 一串貫來, 論其罪惡, 實爲諸賊之首。 渠旣凶頑, 徑斃杖下, 王法所施, 只在於破家潴澤, 請逆魁維賢破家瀦澤之律, 亟令王府擧行。" 掌令洪重徵等奏曰: "自賊撰敎文之後, 又有天海詬天之凶, 其不忍聞、不忍言窮凶極惡之罪, 實是自有君臣以來所未有之變, 爲今日臣子者, 莫不腐心痛骨, 沫血飮泣, 思欲一洗君父之厚誣者, 今幾年矣。 何幸蒼天下臨, 鬼神傍列, 暗地逆謀, 自然敗露於, 今番鞫獄, 始知凶言做出, 本自維賢。 其祖述賊, 敎誘天海, 密布潛煽, 誑惑人心, 互相傳襲, 一串貫來之狀, 至于賊之招而彰露無餘。 到今觀之, 、諸等賊, 莫非此賊之羽翼, 而廢族怨國之徒, 遐土愚悍之輩, 靡然附麗, 傳相唱和, 初則掛書而流布中外, 終則稱兵而猖獗湖、嶺, 亦無非此賊之所主張, 逆招中所謂渠家寂寞之說, 實是逆腸凶肚之畢露處也。 論其罪惡, 雖斬作萬段, 不足以泄神人之憤, 而徑斃杖下, 保其首領, 已是失刑之大者。 至於討逆應施之律, 尙不快施, 此雖出於聖意之有在, 而王章之廢壞, 莫此爲甚, 輿情之憤鬱, 愈久愈甚。 今日臣等爲君父洩憤者, 只在於破瀦一款, 請逆魁維賢, 亟施破家瀦澤之律。" 兩司連啓, 閱歲爭執, 而上以有府夫人, 終不聽。 上敎曰: "諸賊之做出凶言, 何由而發? 賊、逆, 中懷異志, 方圖不軌之際, 徐德修絶悖不忍聞之招出, 故渠等若得奇貨, 益萠凶心, 而出凶言, 發凶說者, 維賢也, 追述, 肆行惡逆者, 逆與諸賊也。 推此觀之, 事豈無先後也? 賊變之後, 每欲一言, 而提及此事, 心腸俱痛, 旣置勿論之後, 未免已甚, 故未及下敎。 當此討逆辨誣之時, 初發凶說, 打起凶心之人, 置諸勿問, 則予之處分, 豈曰磊磊落落乎? 德修仍置逆案事, 分付該府。"


  • 【태백산사고본】 15책 18권 5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4면
  • 【분류】
    변란(變亂)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