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서의 본가에다 어서를 봉안하게 하다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기를,
"오늘의 연석(筵席)에서 이미 유시한 바 있는데, 이번의 녹훈(錄勳)을 봉조하(奉朝賀)가 설마 사양하겠는가마는, 훈명(勳名)을 치사(致仕)한 원로(元老)에게 가하는 것은 경례(敬禮)하는 뜻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30년 동안 굳게 지켜온 뜻으로 여든이란 늙은 나이에 하루에 백리길을 달려 적변(賊變)을 고했으니, 이는 진실로 천고(千古)에 드문 일이었다. 수십 년 동안 굳은 뜻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득실(得失)에 대해 계구(戒懼)하는 사람의 뜻인 것이다. 그리고 노쇠한 나이에 적변(賊變)을 아뢴 것은 곧 평일의 단충(丹忠)에서 발현된 것이다. 이 두 가지 일이 어찌 말세(末世)에 크게 이익됨이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제 만약 훈명(勳名)을 갑자기 원로에서 더한다면, 이는 갑진년372) 겨울에 특별히 지극한 간청을 따른 뜻이 아닌 것이다.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가 엄자릉(嚴子陵)의 뜻을 이루어 준 것373) 을 선유(先儒)들이 훌륭하게 여겼다. 그러나 나는 엄자릉의 뜻을 이루어 준 것은 지극한 것이지만 정성을 기울여 낭묘(廊廟)에 머무르게 하지 못한 것은 미진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원로(元老)의 거취(去就)가 여기에 관계된 경우가 아니면 예(禮)로써 대우하고 성심으로 만류하는 것이 아름다울 것 같다. 더구나 그의 뜻을 드러내고 그의 충성을 포장(褒奬)하는 방법은 전례에 따라 훈명(勳名)을 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끝내 그의 소원을 이루어 주되 마땅히 별례(別例)에 의거 포상하겠다는 내용으로 하교(下敎)하겠다. 원로가 이미 지난해 비지(批旨)에 있었던 ‘일사(一絲)’라는 두 글자를 일생의 좌우명(左右銘)으로 삼겠다고 했으니, ‘일사’라는 두 글자에다가 또 ‘부정(扶鼎)’이라는 두 글자를 보태어 특별히 수필(手筆)로 써서 내려 주겠다. 해조(該曹)로 하여금 이것을 전각(鐫刻)하여 정문(旌門)하는 방법을 본떠서 즉시 봉조하(奉朝賀)의 서울 집 앞에 세우게 하여 내가 기풍을 세워 세상을 면려시키는 뜻을 보이게 하라."
하였다. 해조(該曹)에서 최규서(最奎瑞)의 본가(本家)에다 한 칸의 집을 지어 어서(御書)을 봉안(奉安)하게 하고 ‘어서각(御書閣)’이라고 이름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49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변란(變亂)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備忘記曰:
今日筵席已諭, 而今番之勳, 奉朝賀豈辭也? 而第以勳名, 加之於致仕元老, 非敬禮之意。 且三十年固守之志, 八十歲篤老之齒, 日馳百里之程, 以告賊變, 此誠千古稀有之事。 屢十載固志, 蓋戒懼得失者之意也。 衰年奏變, 卽平日忠赤之所發也。 於此二事, 豈不大有益於末世乎? 今若以勳名, 忽加於元老, 此非甲辰冬特從至懇之意。 光武遂子陵志, 先儒大之。 予則以爲遂子陵之志則至矣, 未能誠留乎廊廟, 爲未盡矣。 今則不然, 元老之去就, 非關係於此, 則以禮待之, 以誠留之, 似乎美也。 而況彰其志褒其忠, 非在乎有例勳名矣。 終遂其願, 當以別例褒嘉之意, 下敎矣。 元老旣以上年批旨中, 一絲二字, 爲一生之銘云, 一絲二字, 又加扶鼎二字, 特以手筆書下。 其令該曹, 以此鐫刻, 倣旌門卽樹奉朝賀京邸, 以示予樹風勵世之意。
該曹建一間屋於崔奎瑞本第, 奉安御書, 名以御書閣。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49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변란(變亂)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