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항이 돌아와 노포문을 올리고 헌괵례를 거행하다
사도 도순무사(四道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이 군대를 정돈하여 조정으로 돌아와 남쪽 성 밖에 진을 쳤는데, 임금이 숭례문(崇禮門)의 문루(門樓)에 올라가서 영접하였다. 승지 조명신(趙命臣)·조현명(趙顯命)을 시켜 마군(馬軍)과 보군(步軍)을 위로하여 이르기를,
"내가 덕이 없는 소치로 그대들이 출정(出征)하여 외지(外地)에서 노숙(露宿)하게 한 것이 거의 1개월 남짓이나 되었다. 내가 이를 생각하면 금의(錦衣)·옥식(玉食)도 마음에 편안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그대들이 서로 힘을 합친 것에 힘입어 흉적(凶賊)을 깨끗이 쓸어 내고 왕사(王師)가 빨리 돌아왔으니, 나의 기쁘고도 다행스런 마음 어찌 끝이 있겠는가? 먼 길을 바삐 달리는 즈음에 반드시 손상된 것이 없지 않을 것이므로 내가 매우 염려하고 있다. 궐문(闕門) 밖에 이르러 호궤(犒饋)를 받은 뒤에는 마땅히 즉시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와 처자(妻子)들을 만나 보도록 하라."
하였다. 또 도승지 김취로(金取魯)를 시켜 오명항을 위로하기를,
"어제 승지를 보내어 위문했지만, 이제 또 문루(門樓)에 나가서 경(卿)이 반사(班師)하여 궐문 밖에 주둔한 것을 보니, 기쁘고 흐뭇한 마음 견딜 수 없다."
하니, 오명항이 대답하기를,
"하늘의 신령함을 힘입어 흉적(凶賊)을 섬멸하였고 군사들도 한 명의 손상자가 없는데, 이러한 위문을 받드니 황공스럽고 감격스런 눈물이 흘러 진달한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오명항이 노포문(露布文)324) 을 올렸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큰 교화로 중생(衆生)들을 훈도하여도 효경(梟獍)325) 같이 사나운 성품은 변혁시킬 수 없고 하늘이 인후(仁厚)함으로 만물을 배양하여도 상설(霜雪)의 위엄은 없앨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虞)나라와 주(周)나라 때 삼묘(三苗)326) 와 서국(徐國)327) 이 왕명에 항거했고 당(唐)나라와 진(晉)나라 때 주자(朱泚)328) 와 왕돈(王敦)이 난리를 일으켰으며, 가까이는 이괄(李适)이 서곤(西閫)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인거(李仁居)329) 가 동관(東關)에서 변란을 일으켰는데, 이들은 모두 타고난 흉추(凶醜)들로 스스로 왕장(王章)을 범하였으므로 승리를 다짐하는 군대를 출동시켜 천토(天討)를 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전하의 예산(睿筭)에 힘입어 감히 역적인 포로들을 바칩니다. 삼가 주상 전하께서는 항상 딱하게 여기는 마음을 지니시어 그토록 신무(神武)스러웠음에도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영성(盈盛)된 왕업을 안존(安存)시킴에 있어서는 깊은 연못에 가서 엷은 얼음을 밟듯이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지켰으며, 화락한 인덕(仁德)에 근본하여 광대한 산수(山藪)에 작은 해독(害毒)을 감추어 주었습니다. 도거(刀鋸)330) 를 오랫동안 폐지시켜 죄가 있든 죄가 없든간에 한결같이 생성(生成)의 은택을 베풀어 주었고, 낭유(稂莠)331) 를 제거하지 않고서 죄가 있는 자는 오형(五刑)332) 에 의거 죄주고 덕이 있는 이는 오복(五服)333) 에 의거하여 상을 주어 오직 관대함을 숭상했습니다. 따뜻한 봄기운이 널리 펴지니 꿈틀거리는 갈거미까지도 모두 화기(和氣)에 흠씬 젖었습니다. 밝은 태양이 높이 솟아 있는데도 아직 도깨비 같은 자들이 은밀히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니, 간활(奸猾)들에게 살길을 열어 주고 있는 이때에 강기(綱紀)를 간범하는 무리가 있을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흉악한 말이 비등하여 먼저 궁벽한 산골의 광포(狂暴)한 자들을 꾀었고, 폐기된 족속들이 화응하여 일어나 연곡(輦轂)334) 아래서 오랑캐 같은 자들이 은신하게 되었습니다. 화기(禍機)가 은밀한 가운데 자라났으니, 종사(宗社)의 위태로움이 털끝과 같았음을 차마 말을 할수가 있었겠습니까? 외로운 성(城)이 갑자기 함몰되니 가련하게도 장군(將軍)이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섬으로 밤중에 도망간 자들이 있었는데 성상께서 그들을 저버린 것이 무엇이며 하북(河北)에 하나도 강개한 의사(義士)가 없었으니, 어찌 원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성상께서 걱정하는 때를 당하여 외람되이 ‘그대가 가서 정벌하라’는 명을 받들었습니다. 아침에 한강(漢江)을 건너니 군사들의 기개가 백배나 왕성하였고 저물녘에 수원(隋原)335) 을 가리키니 역적들의 간담이 이미 떨렸습니다. 승리의 바람이 큰 깃발에 불어오니 안성(安城)에 개미떼처럼 주둔하고 있는 적도들이 먼저 무너졌고, 요란한 천둥소리가 신봉(神鋒)에서 걷히니 죽산(竹山)에서 저항하던 무리들이 저절로 무너졌습니다. 가마솥 속의 물고기와 불길에 휩싸인 제비집의 제비 같은 놀란 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형벌을 받았으며, 까마귀처럼 모이고 쥐처럼 달아나는 무리들이 차례로 사로 잡혔습니다. 나쁜 기운이 없어지고 나니 절도(節度)의 옛 진영(鎭營)이 아무 탈이 없게 되었고, 산하(山河)가 바뀌어지지 않았으니 백성들이 편안히 사는 것이 전과 같게 되었습니다. 영남(嶺南)의 적도들을 소탕하는 데 이르러서는 실로 도신(道臣)의 계획에 도움을 받았으니, 대병(大兵)이 천천히 진군하면서 그저 고라니나 거북을 사냥하였을 뿐이고, 여러 고을이 숙청(肅淸)되었는데도 반마(班馬)336) 가 놀라지 않게 되었습니다. 활을 활집에 넣고 화살을 화살통에 담은 뒤에 정휘(征麾)337) 를 정돈하여 부상당한 사람들을 위문하였고, 고삐를 거머잡고 수레를 정지시킨 뒤에 부로(父老)들을 불러서 덕의(德意)를 선포했습니다. 하찮은 적도들은 본디 성상의 걱정을 번거롭게 할 것도 없었는데, 선성(先聲)이 지나쳐서 조정을 놀라게 하기까지 했습니다. 순역(順逆)이 이미 나누어지자 천지 귀신이 은밀히 도와주었고, 또한 위령(威靈)이 멀리 파급된 탓으로 기전(畿甸)·호남(湖南)·영남(嶺南)이 즉시 평정되었습니다. 은혜와 위엄이 아울러 시행되었으니, 남인(南人)이 다시 배반하지 않을 것이며, 경계하고 면려할 것이 여기에 있으니 우리 나라가 이로부터 흥왕해질 것입니다. 지금 신은 본디 호신(虎臣)338) 이 아닌데 우연히 역적의 소굴을 소탕한 것입니다. 신은 각곡(卻穀)339) 같은 시서(詩書)의 공부가 모자라고 길보(吉甫)340) 같은 문무(文武)의 재능도 부족하므로, 장재(長才)에는 부끄러운 점이 있었는데, 성주(聖主)의 위덕(威德)에 의지하고 군수(群帥)들의 충심(忠心)에 힘입게 되었으니, 감히 하찮은 공로를 말하겠습니까? 단지 경축하고 기뻐하는 정성만 간절할 뿐입니다. 삼가 노포(露布)를 받들어 아룁니다."
하였는데, 이는 교리(校理) 정우량(鄭羽良)이 지은 것이다. 이어 헌괵례(獻馘禮)341) 를 거행했는데, 오명항이 황금 투구에 붉은 갑옷을 입고 꿇어앉아서 적괴(賊魁) 이웅보(李熊輔)·정희량(鄭希亮)·나숭곤(羅崇坤)의 세 수급(首級)을 단하(壇下)에서 올렸다. 판의금(判議禁) 김흥경(金興慶)이 이를 받아 단상(壇上)에다 진열하였고 영병조사(領兵曹事) 영의정(領議政) 이광좌(李光佐)가 수급을 받은 뒤 문루(門樓)로 올라가 복명(復命)하니, 임금이 모두 장대에 매어달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수가(隨鴐)한 군중(軍中)과 순무영(巡撫營)의 마보(馬步) 진중(陣中)으로 하여금 함께 승리를 얻게 된 군악(軍樂)을 연주하게 하였다. 이어 오명항을 명하여 입시(入侍)하게 하고 앞으로 나오게 한 다음 그의 손을 잡고 이르기를,
"경(卿)이 비분 강개하여 출행(出行)하기를 청할 적에 내가 매우 가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병력(兵力)이 어떠한지를 몰랐었는데 경이 과연 호남과 영남의 흉추(凶醜)들을 깨끗이 소탕하였으니 중임(重任)을 부탁한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종사(宗社)가 다시 편안해지고 두 분 동조(東朝)께서 칭찬하며 기뻐하시게 된 것은 모두 경의 공이다. 오늘 남문(南門)에 나가서 역적의 수급을 받은 것은 실로 세상에 드문 일이니, 내 기쁜 마음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하니, 오명항이 아뢰기를,
"하늘의 신령이 도와주시어 흉적(凶賊)들이 머리를 바친 것이니, 이는 성상의 위덕(威德)에 연유한 것이며 국운이 영장(靈長)했던 소치인 것입니다. 신이 무슨 공이 있기에 이처럼 세상에 드문 특별한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황공하고 감격스러운 나머지 눈물이 흘러 진달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자, 임금이 이르기를,
"무사히 돌아왔고 군병들도 사상자(死傷者)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더욱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였다. 오명항이 인죄(引罪)하면서 퇴척(退斥)시켜 시종 한결같은 은총을 보전하게 해 줄 것을 청하니, 임금이 누누이 위유(慰諭)하였다. 임금이 환궁(還宮)하여 도순무사(都巡撫使)와 출정(出征)했던 중군 별장(中軍別將)에게 모두 선정전(宣政殿)으로 입시(入侍)하게 하라고 명하고, 출정했던 군졸들은 대궐 문 밖에서 호궤(犒饋)하라 명하였다. 임금이 궁궐을 나올 적에 광통교(廣通橋) 위에서 말을 정지시키고 두 승지(承旨)를 시켜 도성의 백성들을 위유(慰諭)하라고 명했는데, 만세 소리가 우렁차게 올리자 임금이 눈물을 흘렸다. 난리를 평정한 뒤 이제 처음으로 백성들을 대했기 때문이었다. 임금이 안성(安城)과 영남의 적변(賊變)이 발생했을 때의 사상(事狀)에 대해 하문하니, 오명항이 매우 상세하게 대답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안성·죽산 전투에서 참획(斬獲)한 것이 매우 많았는데, 경이 장계(狀啓)로 아뢴 데에는 그 수효가 매우 적었다. 이는 공을 자랑하지 않으려는 마음인 것이므로 내가 매우 가상하게 여기고 있다. 대체로 나라에 역적이 나면 토벌해야 하고, 토벌하여 평정시켰으면 녹훈(錄勳)하는 것은 사리(事理)에 매우 분명하다."
하니, 오명항이 말하기를,
"신은 삼군(三軍)의 원수(元帥)로서 오래도록 머뭇거리면서 군대를 가지고 자신을 호위하게 하였을 뿐이니, 죄만 있고 공은 없습니다. 어떻게 무훈(茂勳)342) 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항상 장좌(將佐)들에게 ‘조정에서 기필코 강박하려 한다면 나는 마땅히 중이 되겠다.’고 했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선온(宣醞)343) 하라고 명하고 스스로 한 개의 큰 술잔에다 술을 따루어 친히 내려 주며 이르기를,
"경의 공을 가상하게 여겨 친히 한 잔을 내리는 것이니, 경은 중군 별장(中軍別將)과 함께 나누어 마시라."
하니, 오명항이 말하기를,
"성은(聖恩)이 이에 이르니, 황공스럽고 감격스러워 진달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늘의 신령이 돌보아준 바로서 군졸에 사상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모두가 성상의 인덕과 은혜가 미친 소치입니다. 신이 두 종사관(從事官)과 함께 이런 내용으로 군중에 효유(曉諭)했는데, 그때 군사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국가를 위하여 목숨바칠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은택이 사람들의 뼛골에까지 흡족하게 젖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자, 임금이 이르기를,
"이것은 조종(祖宗)의 덕택이 사람들에게 깊이 배어들어간 소치이다. 나에게 어찌 그런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46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변란(變亂) / 사법(司法) / 인사-관리(管理) / 군사-휼병(恤兵)
- [註 324]노포문(露布文) : 전승(戰勝)한 보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 포백(布帛)에 써서 장대 위에 걸어 누구나 볼 수 있게 한 글.
- [註 325]
효경(梟獍) : 효는 어미를 잡아 먹는 올빼미, 경은 아비를 잡아 먹는 파경(破獍)이라는 짐승. 흉악하고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임.- [註 326]
삼묘(三苗) : 순(舜)임금 때의 네 사람의 악인(惡人), 즉 공공(共工)·환도(驩兜)·삼묘(三苗)·곤(鯀) 중의 하나.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보면, ‘공공(共工)을 유주(幽州)로 귀양보내고 환도(驩兜)를 숭산(崇山)에 내치며, 삼묘(三苗)를 삼위(三危)로 쫓아내고, 곤(鯀)은 우산(羽山)에서 죽을 때까지 있게 하였다. 이 네 가지 형벌로 천하가 다 복종하게 되었다.’고 하였음.- [註 327]
서국(徐國) : 백익(伯益)의 후손으로 주(周)나라 초기에 왕(王)을 참칭(僭稱)했으므로 목왕(穆王)에 의해 멸망되었음.- [註 328]
주자(朱泚) :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의 반신(叛臣). 덕종 때 태위(太尉)가 되었는데, 경원 절도사(涇原節度使) 요영언(姚令言)이 반란을 일으키자, 난병(亂兵)에 의해 추대되어 제위(帝位)에 오르고, 국호(國號)를 대진(大秦)이라 하였음. 뒤에 이성(李晟)이 서울로 수복하자 도망치다가 그 부하 장수하게 살해되었음.- [註 329]
이인거(李仁居) : 반란자. 강원도 횡성(橫城)에서 거주하다가 1627년 정사 공신(靖社功臣)들이 나라를 그르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킨 인물.- [註 330]
도거(刀鋸) : 형구(刑具).- [註 331]
낭유(稂莠) : 잡초(雜草).- [註 332]
오형(五刑) : 주대(周代) 이래 사용한 죄인을 벌하는 다섯 종류의 형벌. 즉 얼굴에 먹물을 넣는[刺字] 묵형(墨刑), 코를 베는 의형(劓刑), 발꿈치를 잘라내는 월형(刖刑), 생식기를 거세하는 궁형(宮刑), 사형(死刑)을 시키는 대벽(大辟)을 말함.- [註 333]
오복(五服) : 다섯 등급의 상복(喪服). 참최(斬衰:3년)·자최(齋衰:1년)·대공(大功:9개월)·소공(小功:5개월)·시마(緦麻:3개월)를 말함.- [註 334]
연곡(輦轂) : 임금이 타는 수레 곧 임금이 있는 곳.- [註 335]
수원(隋原) : 수원(水原).- [註 336]
반마(班馬) : 대열(隊列)에서 떨어진 말.- [註 337]
정휘(征麾) : 깃발.- [註 338]
호신(虎臣) : 무신(武臣).- [註 339]
각곡(卻穀) : 춘추(春秋) 시대 진(晉)나라 사람으로 예악(禮樂)에 대한 해설(解說)이 있고 시서(詩書)에 조예가 깊어 진 문공(晉文公)에게 발탁되어 대장(大將)이 되었음.- [註 340]
길보(吉甫) : 주 선왕(周宣王) 때의 명장(名將)으로 문무(文武)를 겸비했는데, 오랑캐를 정벌하여 큰 공을 세웠음.- [註 341]
○己亥/四道都巡撫使吳命恒振旅還朝, 軍南城外, 上出御崇禮門樓迎之。 使承旨趙命臣、趙顯命, 勞問馬、步軍曰: "因予否德, 使汝等出征, 暴露于外, 殆至月餘。 予思之, 錦玉靡安, 幸賴汝等戮力, 掃平凶賊, 王師遄返, 予心喜幸, 曷有其極? 遠路驅馳之際, 必不無所傷, 予甚念之。 到闕門外, 受犒饋後, 宜卽歸家, 尋見父母妻子。" 又使都承旨金取魯, 勞問命恒曰: "昨遣承宣慰問, 而今又臨門, 見卿旋師, 札駐於門外, 不勝欣喜。" 命恒對曰: "賴天之靈, 殲滅凶賊, 軍士無一缺傷, 承此下問, 惶恐感泣, 不知所達。" 命恒進露布文曰:
大化甄陶衆生, 而不能變梟獍之性, 上天仁養萬物, 而不能廢霜雪之威。 苗徐阻命於虞、周, 敦泚稱亂於唐、晋, 近則适叛吠於西閫, 居盜弄於東關。 斯皆命凶夙醜, 自干王章, 所以鞫旅陳師, 用致天討。 玆憑睿算, 敢獻逆俘。 恭惟主上殿下, 舒慘以時, 神武不殺。 撫盈成之業, 而守之以淵氷, 本愷悌之仁, 而藏之以山藪, 刀鋸久廢, 有罪無罪而一施生成, 稂莠不鋤, 刑五服五而惟上寬大。 陽春旣布, 竝蛸蠕而咸濡。 白日高懸, 尙魍魎之暗伺, 那知祝網之日, 遽有干紀之徒? 凶言胥騰, 先誘草間之狂狡, 廢族和起, 仍藏轂下之羗胡。 禍機潛滋, 忍言宗主之如髮? 孤城遽陷, 可憐將軍之喪元。 島中有半夜之逃, 何負汝也, 河北無一介之士, 寧不痛耶? 肆當主夏之辰, 猥膺汝往之命。 朝濟漢水, 而士氣百倍, 暮指隋原, 而賊膽已寒。 召勝風於大旆, 安城之蟻屯先潰, 捲疾雷於神鋒, 竹山之螗臂自摧。 魚游燕巢之魂, 後先膏鑕, 烏合鼠竄之類, 次第就擒。 氛祲已消, 無恙節度之故鎭, 湖山不改, 依舊生民之奠居。 至於嶺寇之掃除, 實藉道臣之區畫, 大兵徐進而但射麋龜, 列邑肅淸, 而不驚班馬。 櫜弓戢矢, 按征麾, 而問瘡痍, 攬轡停車, 召父老而布德意。 小寇本不足以煩宵旰, 先聲過而至於驚朝廷。 惟其逆順之旣分, 天地鬼神之所陰贊, 抑亦威靈之遠曁, 畿甸、湖、嶺之不日平。 恩威竝施, 南人不復叛矣, 警勵斯在, 吾國自此庶乎。 今臣本非虎臣, 偶掃蜂壘。 缺卻縠之詩書, 乏吉甫之文武, 有愧長才, 憑聖主之威德, 賴群帥之心肝, 敢言微績徒切? 慶忭之悃。 謹奉露布以聞。
校理鄭羽良之製也。 仍行獻馘禮, 命恒以金冑紅甲, 跪進賊魁熊輔、希亮、崇坤三首級於壇下。 判義禁金興慶受而陳於壇上, 領兵曹事領議政李光佐受馘後, 上樓復命, 上命竝懸竿。 令隨駕軍中, 與巡撫營馬步陣中, 竝奏得勝吹打。 仍命命恒入侍, 使前來, 執其手曰: "卿之慷慨請行也, 予甚嘉之。 但未知兵力之如何, 卿果掃蕩湖、嶺凶醜, 不負托重之意。 使宗社再安, 而兩東朝嘉悅, 此莫非卿之功也。 今日臨門受馘, 此實曠世之事, 予心之喜, 何以勝言?" 命恒曰: "天靈所及, 凶孽授首, 此由聖上威德, 國祚靈長之致。 臣何力之有, 蒙此不世之殊渥? 惶感涕泣, 不知所達。" 上曰: "無事入來, 軍兵無一死傷, 此尤多幸矣。" 命恒引罪請斥退以全終始之恩, 上慰諭縷縷。 上還宮, 命都巡撫使及出征中軍別將, 竝入侍宣政殿, 出征軍卒, 犒饋於闕門外。 上之出宮也, 駐馬廣通橋上, 命兩承宣慰諭都民, 聽山呼之聲, 上爲之泣下。 平亂後, 今始臨民故也。 上問安城及嶺南賊變時事狀, 命恒對甚悉。 上曰: "安、竹之戰, 斬獲甚多, 而卿之狀聞, 其數甚少。 不伐之心, 予甚嘉尙。 大抵國有逆則討之, 討平則錄勳, 事理明甚。" 命恒曰: "臣以三軍之帥, 許久逗遛, 擁兵自衛而已, 有罪無功。 豈膺茂勳? 臣常語將佐曰: ‘朝家必欲强迫, 吾當爲僧。’ 云矣。" 上命宣醞, 自酌一大盃, 親授之曰: "嘉卿之功, 親賜一酌, 卿與中軍別將, 分飮。" 命恒曰: "聖恩至此, 惶感不知所達矣。 天靈所曁, 軍卒無一死傷, 此莫非聖上仁恩所及。 臣與兩從事, 曉諭軍中, 時, 軍人輩, 無不涕泣, 願死國家, 恩澤浹人肌骨, 可知矣。" 上曰: "此由於祖宗德澤, 入人者深。 予何有焉?"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46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변란(變亂) / 사법(司法) / 인사-관리(管理) / 군사-휼병(恤兵)
- [註 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