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수가 권구를 붙잡아 서울로 보내다
영남 안무사(嶺南安撫使) 박사수(朴師洙)가 안동(安東)에 이르니, 영남에서는 청주의 변란이 있으면서부터 인심이 환산(渙散)되어 수습할 수 없었는데, 뜻밖에 박사수가 재를 넘어오는 것을 보고는 비로소 조정이 있는 줄을 알게 되어 백성들의 의지가 이에 힘입어 점차 진정되었다. 박사수가 이미 이르러 청주의 적이 비록 패했으나 정희량(鄭希亮)과 이웅보(李熊輔)가 또 안음(安陰)에서 일어남을 듣고 즉시 글을 지어 역시 역순(逆順)의 구분을 진술해서 도내에 효유(曉諭)하고, 문경(聞慶)사람 전 찰방(察訪) 신필정(申弼貞)과 상주(尙州) 사람 전(前) 부수(副率) 성이홍(成爾鴻), 영천(永川) 사람 전 참봉(參奉) 정규양(鄭葵陽)에게 치서(馳書)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두 사민(士民)을 인도해 거느리고 의기를 분발해 적을 토벌하게 하고, 안동(安東)의 사민(士民)으로 명망(名望)이 있는 자 이재(李栽) 등 수십 명을 다 불러 성안에 거처하게 하였다. 본부(本府) 협현(峽縣)에 별포수(別砲手) 5백 명이 있는데, 평소 포를 잘 쏘아 정졸(精卒)이라고 일컬어 왔다. 그래서 박사수가 친신(親信)하는 장교에서 위임하여 그들을 거느리고 진을 쳐서 자위(自衛)하여 뜻밖의 변을 방비하게 하였다. 이때 종사관(從事官) 강규환(姜奎煥)으로 하여금 성밖에서 조련(操鍊)하게 하고 감사 황선(黃璿)과 왕복해 상의하고는 먼저 영장 김정상(金鼎相)을 보내어 속읍(屬邑)의 군사를 거느리고 전진해 적을 토벌하게 하였다. 처음에 박사수가 사민을 불러 모으는데 권구(權榘)가 유독 늦게 이르렀다. 마침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가 와서 권구를 붙잡았는데, 국청(鞫廳)의 문서에는 권후(權煦)라고 이름이 쓰여 있었다. 박사수가 말하기를,
"안동에는 단지 권구 한 사람만이 명망이 가장 중하니, 만약 역모에 가담했다면 반드시 이 사람일 것이다."
하여 드디어 권구를 붙잡아 도사에게 붙여 서울로 보냈다. 예천(醴泉)의 술사(術士) 이윤행(李允幸)이 일찍이 적과 서로 왕래해 통하면서 길흉(吉凶)을 점쳐 주었는데, 박사수가 정탐해서 붙잡아 서울로 보냈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31면
- 【분류】사법(司法) / 변란(變亂)
○嶺南安撫使朴師洙, 至安東, 自淸州有變, 嶺南人心渙散, 莫可收拾, 不意見師洙踰嶺, 始知有朝廷, 民志賴以稍定。 師洙旣至, 聞淸州賊雖敗, 希亮、熊輔, 又起安陰, 卽作書陳逆順之辨, 曉諭於道內, 馳書於聞慶人前察訪申弼貞、尙州人前副率成爾鴻、永川人前參奉鄭葵陽, 使皆倡率士民, 奮義討賊, 悉招安東士民有名望者李栽等數十人, 處於城內。 本府有峽縣別砲手五百名, 素善放砲, 稱精卒。 師洙委親信將校, 領之陣而自衛, 以防不虞。 時, 使從事姜奎煥, 操鍊於城外, 與監司黃璿, 往復相議, 先遣營將金鼎相, 領屬邑兵, 前進討賊。 初, 師洙招集士民, 權榘獨後至。 會, 義禁府都事來拿榘, 鞫廳文書, 以照書名。 師洙謂: "安東只一權榘, 聲望最重, 若預逆謀, 必是此人。" 遂執榘, 付都事送京。 醴川術士李允幸嘗與賊交通, 爲卜吉凶, 師洙亦詗察, 執送于京。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31면
- 【분류】사법(司法)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