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의 흉관·흉격은 모두 불태우게 하다
충청도 감사(忠淸道監司)와 병사(兵使)·수사(水使)가 적들이 흉관(凶關)176) ·흉격(凶檄)177) 을 여러 고을에 투입한 것을 올리니, 모두 불태우라 명하고, 그것을 지니거나 전하는 자는 참하라고 유시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흉격(凶檄)의 조어(措語)는 본디 마땅히 곧바로 쓰고 숨기지 말아서 흉적이 천일(天日)을 욕한 죄를 드러냈어야 한다. 아! 유봉휘(柳鳳輝)·김일경(金一鏡)의 무리는 우리 성상께 신하 노릇을 하지 않은 지 오래이다. 유봉휘의 흉악한 상소로 건저(建儲) 초에 창도하고, 역적 김일경은 종무(鍾巫)178) 의 상소를 뒤이어 올렸는데, 안으로는 환첩(宦妾)과 체결하여 양궁(兩宮)을 교대로 얽고, 겉으로는 목호룡(睦虎龍)을 꾸며내어 저위(儲位)를 위태롭게 핍박하였다. 경종(景宗)께서 인성(仁聖)하시어 그 계략이 이루어지지 않자 역적 김일경이 또 ‘접혈금정(蹀血禁庭)179) ’ 등의 말을 위훈(僞勳)의 교문(敎門)에 써서 온갖 계책으로 위동(危動)하였다. 갑진년180) 겨울에 임금이 단지 김일경과 목호룡만 죽이고 나머지 일당은 불문에 붙였으니, 이는 실로 산림(山林)·수택(藪澤)에 악한 자를 숨겨주는 성의(聖意)에서 나온 것인데, 흉적들이 스스로 하늘에 닿는 죄를 알고는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반역을 모의하여 역적 김일경의 종무(鍾巫)에게 제사한다는 말을 조술(祖述)하여 온 세상을 기만하고, 유혹하고도 오히려 흉악한 말이 전파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심유현(沈維賢)을 종용하여 차마 들을 수도 없고 차마 말할 수도 없는 말을 만들어 내게 하여 은밀한 곳에서 말을 퍼뜨려 중외를 의혹(疑惑)할 계책으로 삼았으니, 대개 심유현은 궁액(宮掖)의 척속(戚屬)으로 성품이 본시 간특하여 항상 분에 넘치는 바람을 품었는데, 박필현(朴弼顯)과 이유익(李有翼)이 그의 사특한 마음을 알고 이익으로 꾀어 마침내 이인좌(李麟佐)·정희량(鄭希亮) 등 여러 적으로 하여금 군사를 일으켜 대궐로 향하게 했던 것이다. 흉한 격문이 도로 위에 교체(交替)해 나돌았는데, 심지어 ‘납일초주 사왕숙대(臘日椒酒思王叔帶)’ 등의 말을 함부로 쓰기도 했다. 이는 실로 천고에 없는 흉역(凶逆)이며, 그 원두(源頭)를 추구해 보면 모두가 당론(黨論) 속에서 나온 것인데, 유봉휘와 김일경이 그 괴수가 되고, 박필현과 심유현이 다음이 되며, 이인좌·정희량 등 여러 적에 이르러서는 호서(狐鼠)의 무리에 불과했으니, 족히 말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3면
- 【분류】정론(政論) / 변란(變亂) / 역사-사학(史學)
- [註 176]흉관(凶關) : 역적의 관문(關文).
- [註 177]
흉격(凶檄) : 역적의 격문(檄文).- [註 178]
종무(鍾巫) : 종무는 옛날의 신령스런 무당[神巫]. 노(魯)나라의 은공(隱公)이 일찍이 공자(公子)로 있을 때 정(鄭)나라 사람과 싸우다가 포로가 되어 정 대부(鄭大夫) 윤씨(尹氏) 집에 갇히자 윤씨에게 뇌물을 주어 그의 가신(家神)인 ‘종무’에 기도를 드렸다. 마침내 윤씨와 함께 노나라로 돌아와서 ‘종무’의 사당을 지었다. 은공 11년 우보(羽父)가 태재(太宰)를 탐하여 은공의 이복제(異腹弟)인 환공(桓公)을 죽이자고 청하였는데, 은공이 듣지 않자 우보가 도리어 환공을 충동질하여 은공이 ‘종무’에 제사지내려고 대부(大夫) 위씨(寪氏)의 집에 유숙할 때 악당(惡黨)을 시켜 살해한 고사(故事). 곧 아우가 왕위를 노려 형을 살해했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음.- [註 179]
접혈금정(蹀血禁庭) : 대궐의 뜰에 유혈(流血)이 낭자하여 그것을 밟고 건널 정도였다는 뜻. 당(唐)나라 초기 고조(高祖)가 장자(長子) 이건성(李建成)을 태자(太子)로 세웠는데, 이건성이 당(唐)의 건국(建國)에 공(功)이 많았던 아우 이세민(李世民)이 자기 자리를 넘볼까 염려하여 미리 제거하고자 하니, 이세민이 군사를 동원하여 현무문(玄武門)으로 들어가 이건성을 죽였음. 이때의 처참했던 상황을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이렇게 ‘접혈 금정’이란 말로 묘사했는데, 아우가 형을 잔인하게 죽이고 왕위를 차지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음.- [註 180]
갑진년 : 1724 영조 즉위년.○忠淸道監司、兵ㆍ水使, 連上賊中凶關凶檄之投列邑者, 命皆火之, 諭令斬其持傳者。
【史臣曰: "凶檄措語, 固宜直書不諱, 以彰凶賊詬天罵日之罪。 噫! 輝、鏡之黨, 不臣於我聖上者久矣。 鳳輝之凶疏, 倡之於建儲之初, 逆鏡鍾巫之疏, 繼之於後, 內而締結宦妾, 交構兩宮, 外而粧出虎龍, 危逼儲位。 景廟仁聖, 其計莫售, 逆鏡又以喋血禁庭等語, 書之於僞勳敎文, 百計危動。 甲辰冬, 上只誅鏡、虎, 不問黨與, 寔出於山藪藏疾之聖意, 而凶賊輩自知通天之罪, 擧懷疑懼, 謀爲不軌, 祖述逆鏡鍾巫之語, 誑誘一世, 猶恐凶言之不播, 慫慂維賢, 做出不忍聞不忍道之言, 密地飛語, 以爲疑惑中外之計, 蓋維賢戚聯宮掖, 性本奸慝, 恒懷匪分之望, 弼顯、有翼知其邪心, 啗之以利, 終使麟、亮諸賊, 稱兵向闕。 凶檄交馳乎道路, 至以臘日椒酒思王叔帶等語, 肆然書之。 此實千古所無之凶逆, 究厥源頭, 莫非黨論中出來, 而輝、鏡兩賊爲魁, 弼顯、維賢次之, 至於麟、亮諸賊, 不過狐鼠之輩, 何足道哉?"】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3면
- 【분류】정론(政論) / 변란(變亂) / 역사-사학(史學)
- [註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