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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4권, 영조 3년 12월 21일 임인 3번째기사 1727년 청 옹정(雍正) 5년

헌부에서 홍성보·경성회 등과 경상 좌수사 강욱의 삭직 등을 청하다

양사(兩司)에서 전번의 합계(合啓)를 거듭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헌부(憲府) 【장령(掌令) 주형리(朱炯离)이다.】 에서 전번의 계사를 거듭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홍성보(洪性輔)·경성회(慶聖會)는 모두 경화(京華)의 세족(世族)으로서 몸가짐이 추잡하고 마음씀이 간사하며 부귀(富貴)를 탐내어 시세(時勢)에 따라 반복(反覆)했으니, 그 전후(前後)의 변덕스러운 태도는 차마 바로 볼 수 없습니다. 홍성보와 경성희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영외(嶺外)의 변변찮은 나학천(羅學川)이 시세(時勢)를 노려 얼굴을 바꾸고 오로지 유리(有利)한 데로 추종(趨從)하는 것을 어찌 족히 논할 것이 있겠습니까? 사대부(士大夫)의 염의(廉義)를 이런 무리들에게 바랄수 없으니, 일후에 임금을 배반하고 나라를 저버릴 것을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청컨대 홍성보·경성희·나학천을 모두 사판(仕版)에서 삭거(削去)토록 하소서."

하였고, 또 아뢰기를,

"경상 좌수사(慶尙左水使) 강욱(姜頊)은 용렬하고 추잡한 사람인데, 웅대한 곤수(閫帥)에 제수됨에 미쳐 오로지 탐학(貪虐)만을 일삼아 백성의 재물을 박탈(剝奪)하여 사복(私腹)을 채운 일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파직시키소서."

하니,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간원(諫院) 【헌납(獻納) 임광필(林光弼)이다.】 에서 전번의 계사를 거듭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 허인(許繗)은 윗사람을 잘 섬김으로써 발신(發身)하여 현직에 제수된 후에 물의(物議)가 시끄러움을 저도 또한 아는지라, 움츠리고 나오지 않다가 정치가 바뀜에 미쳐 조정이 거의 비자 그 틈을 타서 조정에 하직(下直)하고 서울에 있는 대관(臺官)들에게도 또한 두루 찾아보지 않은 채 황망히 달려갔으니, 그 거조(擧措)가 해괴합니다. 청컨대 파직시키소서."

하니, 아뢴 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4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689면
  •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兩司申前合啓, 不允。 憲府 【掌令朱絅离。】 申前啓, 不允。 又啓曰: "洪聖輔慶聖會, 俱以京華世冑, 行已麤鄙, 處心邪侫。 貪戀富貴, 隨時反覆, 前後變易之態, 不忍正視。 聖輔聖會, 猶尙如此, 嶺外微瑣之羅學川, 乘時換面, 惟利是趨, 固何足論也? 士夫廉恥, 不可責之於此輩, 而他日忘君負國, 從可知矣。 請洪聖輔慶聖會羅學川, 竝削去仕版。" 又啓曰: "慶尙左水使姜頊, 庸陋賤夫, 及授雄閫, 專事貪虐, 剝民利己, 不一而足。 請罷職。" 竝不允。 諫院 【獻納林光弼。】 申前啓, 不允。 又啓曰: "全羅左水使許繗, 以善事發身, 除拜之後, 物議譁然, 渠亦自知, 縮伏不出, 及至改紀, 朝著殆空, 乘隙辭朝, 在京之臺, 亦不歷辭, 慌忙馳去, 擧措駭悖。 請罷職。" 依啓。


  • 【태백산사고본】 12책 14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689면
  •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