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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3권, 영조 3년 9월 25일 무인 8번째기사 1727년 청 옹정(雍正) 5년

등과한 자는 분관되기 전에는 청직을 허용하지 못하게 하다

전조(銓曹)에 명하여 등과(登科)한 자는 분관(分館)되기 전에는 청직(淸職)을 허통(許通)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에 앞서 이종성(李宗城)이 분관되기 전에 설서(說書)에 제배(除拜)되었기 때문에 소장을 올려 진달하고 인혐(引嫌)하면서 행공(行公)하지 않았었다. 이때에 이르러 좌의정(左議政) 조태억(趙泰億)이 아뢰기를,

"분관되기 전에 한림(翰林)721) 이 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예문관의 분관인 것입니다. 이미 천주(薦主)가 있고 또 대신(大臣)과 의정부(議政府)·관각(館閣)의 당상관(堂上官)이 모두 모여 강론해서 비로소 이 직(職)에 임명한 것이니, 이것도 또한 분관인 것입니다. 그러나 설서는 이와 달라서 승문원의 권점(圈點)722) 을 이조로 이송(移送)한 후에야 의망(擬望)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 이판(吏判) 오명항(吳命恒)이방언(李邦彦)의 일을 전례로 인용했습니다만, 이방언이 설서가 된 것은 분관된 뒤에 있었던 것으로 미처 간택(揀擇)하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을사년723) 이후에는 분관을 기다리지 않고 창방(唱榜)한 지 3일 만에 바로 설서에 임명했었으니, 이런 등류의 잘못된 습관은 그대로 따라 시행해서는 안됩니다."

하니, 임금이 마침내 이 명령이 있게 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3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667면
  • 【분류】
    인사(人事)

  • [註 721]
    한림(翰林) : 예문관 검열의 별칭.
  • [註 722]
    권점(圈點) :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 등의 관원을 뽑을 적에 후보자들의 성명을 적어놓고 전선관(銓選官)이 각기 뽑고자 하는 사람의 성명 아래에 찍는 둥근 점. 이 점이 많은 사람이 뽑히게 됨.
  • [註 723]
    을사년 : 1725 영조 원년.

○命銓曹, 登科者分館前, 勿許通淸。 先是, 李宗城除拜說書於分館之前, 故陳章引嫌, 不爲行公。 至是, 左議政趙泰億奏曰: "分館前翰林, 是乃藝文館分館也。 旣有薦主, 且大臣及政府、館閣堂上, 齊會受講, 始許付職, 此亦分館也。 說書異於此, 承文院圈點, 移送吏曹然後可以擬望。 頃日吏判吳命恒, 以李邦彦事援例, 而邦彦之爲說書, 在於分館後未及揀擇之時也。 乙巳以後, 不待分館, 唱榜三日, 直拜說書。 此等謬習, 不可因循也。" 上遂有是命。


  • 【태백산사고본】 12책 13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667면
  • 【분류】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