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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1권, 영조 3년 6월 13일 무술 6번째기사 1727년 청 옹정(雍正) 5년

재자관 이추를 파견하여 바다에 표류한 사람들과 자문을 부쳐 청나라로 들여보내다

재자관(䝴咨官) 이추(李樞)를 특별히 파견하여 바다에 표류한 사람들을 거느리고 청나라로 들여보내며, 그와 더불어 빚진 은과 국경을 침범한 것에 대한 두 건의 자문(咨文)을 함께 부쳐 보냈다. 이에 앞서 청나라 사람 수백 명이 강도(江島)에 와 주둔하고 있었는데, 모두 국경을 침범한 자들이다. 의주 부윤(義州府尹)이 급히 봉황성(鳳凰城)의 장수에게 통보하고 관병(官兵)을 보내어 쫓아가 체포하게 하면서 의주부에서 배를 출발시켜 접응(接應)하게 하였더니, 국경을 침범한 자들이 관병에게 반격을 가하였으므로 우리 나라 뱃사람이 상처를 입고 물에 빠져 죽은 자가 5명이나 되었다. 조정에서야 바야흐로 자문(咨文)을 보내어 변방의 금령(禁令)을 엄중하게 해 달라고 청하려 하였는데 저들의 장계(狀啓)가 먼저 왔고, 그 뒤 봉황성 장수가 길을 막고 빚진 은을 갚으라는 자문을 보냈는데 조정에서는 조사하고 징수하기가 어려워 장차 사실에 의거하여 회답하는 자문을 보내기로 하였으나, 두 건의 자문을 미처 발송하기도 전에 절강(浙江)의 상인이 표류하여 제주도에 이르렀으므로, 장차 청나라로 돌아가도록 출발시킴에 있어서 이추가 청나라의 사정을 익힌 아는 까닭에 특별히 보낸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1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638면
  • 【분류】
    호구(戶口) / 무역(貿易) / 외교(外交)

○特遣齎咨官李樞, 領率漂海人, 入送淸國, 仍以債銀犯越兩咨文, 同付以送。 先是淸國人數百名, 來屯江島, 蓋犯越者也。 尹急通于鳳凰城將, 遣官兵逐捕, 而令府發船接應, 犯越人等反擊官兵, 我國船人, 被傷溺死者, 至於五名。 朝廷方擬移咨, 請嚴邊禁, 而彼啓先至, 又其後鳳凰城將, 以攔道債銀, 移咨督償, 而朝廷難於査徵, 將據實回咨, 而兩咨文未及發送, 浙江商人, 漂到于濟州, 故將發還淸國, 而李樞習知淸國事, 故特遣之。


  • 【태백산사고본】 10책 11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638면
  • 【분류】
    호구(戶口) / 무역(貿易) / 외교(外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