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11권, 영조 3년 5월 25일 경진 4번째기사
1727년 청 옹정(雍正) 5년
도성민들의 상언에 따라 도성의 금표를 개정할 것을 명하다
도성(都城)의 금표(禁標)를 개정할 것을 명하니 도민(都民)들의 상언(上言)을 따른 것이다. 당초 서울의 금표는 십 리를 한정으로 하여 동·서·남 세 도(道)는 모두 하천(河川)으로 경계를 삼고 북쪽은 산등성이를 경계로 삼아 저서령(猪噬嶺)에서부터 연서(延曙)의 돌곶이고개[石串峴]에 이르기까지 두 내가 합류하는 곳으로 경계를 정했는데, 이때에 이르러 도성의 백성들이 옹암(瓮巖)의 서쪽 모래내[沙川]로 경계를 삼아 달라는 청을 하였으니, 대개 그곳에 잇대어 장사지내기[繼葬] 위함이었다. 임금이 묘당에 품처토록 하니, 대신과 여러 신하들이 모두 그것의 불가함을 아뢰었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근래 인구가 많이 불어나 서울 근교에는 한 조각의 노는 빈 땅이 없다. 지금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나라의 은택이 백골(白骨)에게도 당연히 미치는 것이니, 모래내를 경계로 삼도록 허락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1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635면
- 【분류】군사-관방(關防)
○命改定都城禁標。 從都民等上言也。 初京城禁標, 限以十里, 而東西南三道, 則皆以水川爲限, 北則以山脊爲限, 自猪噬嶺, 至延曙 石串峴, 兩川合流處, 定其界。 至是都民等, 請以瓮巖之西沙川爲界, 蓋爲其繼葬也。 上令廟堂稟處。 大臣諸臣, 皆言其不可, 上曰: "近來生齒蕃盛, 郊外無一片空閑之地。 今從民願, 則朝家恩澤, 當及於白骨, 許令沙川爲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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