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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1권, 영조 3년 4월 21일 정미 3번째기사 1727년 청 옹정(雍正) 5년

전조에 명하여 성삼문·박팽년의 후손을 수습하여 임용하게 하다

전조(銓曹)에 명하여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의 후손을 수습하여 임용(任用)하게 하고, 이어 분부하기를,

"만일 후손이 없으면 비록 방손(傍孫)이나 외손이라도 일체로 탐문(探問)하여 녹용(錄用)하라."

하였다. 이때 승지 경성회(慶聖會)가 아뢰기를,

"박팽년은 후손 박경여(朴慶餘)가 있고 성삼문은 단지 외손 박중귀(朴重龜)만 있으므로 숙종(肅宗)께서 임용하여 수령(守令)을 삼았었는데, 이 두 사람이 벼슬에 있을 적에는 육신(六臣)들의 제사를 일체로 차렸었으나, 지금은 이 두 사람이 모두 죽고 그 가문이 매우 빈한하므로 제사를 받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런 명을 내리게 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1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632면
  • 【분류】
    인사(人事) / 윤리(倫理)

○命銓曹, 收用成三問朴彭年之後孫。 仍敎曰: "若無姓孫, 則雖傍孫及外孫, 一體訪問錄用。" 時, 承旨慶聖會奏言: "朴彭年有孫慶餘, 成三問只有外孫朴重龜, 肅廟錄用爲守令, 而此兩人在官之時, 則六臣祭祀, 一體設行, 而今兩人皆死, 其家貧寒, 不克奉祀云", 故上有是命。


  • 【태백산사고본】 10책 11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632면
  • 【분류】
    인사(人事) / 윤리(倫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