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7권, 영조 1년 9월 12일 병오 2번째기사
1725년 청 옹정(雍正) 3년
주청사 김상명을 위하여 비석을 세우는 것에 관해 민진원이 아뢰다
좌의정(左議政) 민진원(閔鎭遠)이 아뢰기를,
"주청사(奏請使)가 돌아온다는 보고가 있으니, 경사스럽고 다행함이 큽니다. 기청(祈請)하는 일이 많이 있으므로 방물(方物)도 또한 많이 감제(減濟)하였으니, 앞으로 사은(謝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옳다고 하였다. 민진원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 일에 김상명(金常明)이 매양 힘을 다하여 주선(周旋)하였는데, 김상명의 선묘(先墓)가 우리 나라 지역에 있습니다. 때문에 듣건대, 비석(碑石)을 세우려고 하는데 청나라[他國]에서는 광록 대부(光祿大夫)를 추증(追贈)하였고 또 우리 나라에서는 절충 장군(折衝將軍)의 자급(資級)을 얻었으므로 반드시 나란히 쓰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가 어떤 연유로 우리 나라의 관자(官資)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나라에서 마땅히 그를 위하여 비석을 세우고 또한 마땅히 그가 원하는 바에 의하여 써야 하는데, 대청 광록 대부 조선국 절충 장군(大淸光祿大夫朝鮮國折衝將軍)으로 쓰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비록 몹시 우스운 일이긴 하나, 마땅히 이렇게 써야 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552면
- 【분류】외교(外交)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