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치중 부자와 흉년 규휼책에 관한 사간 이의천의 상소문
사간(司諫) 이의천(李倚天)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말하기를,
"지금 이 5적(五賊)은 실로 천고(千古)에 서적(書籍)이 있은 이후로 없었던 흉역(凶逆)입니다. 접때는 대신이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대정(大庭)을 지키셨을 때에 위로 경재(卿宰)로부터 미관(微官)에 이르기까지 피를 뿜으면서 분발(奮發)하고 앞뒤를 다투면서 분주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유독 병조 판서 홍치중(洪致中) 만이 전후(前後)의 정반(庭班)에 한 번도 나와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신하로서 역신(逆臣)을 토죄(討罪)하는 데에 어리석고 지혜로운 자가 같이하는 바라면 그 참여하지 않은 자는 반드시 병고(病故)에 연유한 것으로 알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유독 괴이하게도 그는 먼저도 아니고 뒤에도 아니게 정청(庭請)의 의논이 나올 무렵에 병이 발작되었다가 호소하는 반열(班列)이 이미 거두어졌던 날에 곧 나았으니, 이 어찌 질병(疾病)의 오는 것이 마침 이때를 맞추어 발생하는 것입니까? 더구나 그의 아들 홍진유(洪晉猷)는 현재 관직(官職)을 가지고 있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지 않았으니, 신은 모르겠습니다만, 홍진유도 역시 버티기 어려운 병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아비의 병을 간호하느라 이에 미칠 겨를이 없는 것입니까? 신은 가만히 중신(重臣)을 위하여 분개하고 있습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올 여름에 대단한 가뭄으로 큰 흉년이 이미 판정되었습니다. 매년 기근(飢饉)이든 나머지 남아 있는 피폐한 백성들이 모두 장차 가난하여 의자할 곳이 없게 되었는데, 만약 또 그 여러 해 동안 포흠(逋欠)진 것을 독책(督責)한다면 이것이 어찌 인인(仁人)·군자(君子)의 할 일이겠습니까? 유사(有司)가 빈민(貧民)을 구휼(救恤)하는 방도(方途)에 있어서 비록 일체 견감(蠲減)시키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보다 앞서 진휼(賑恤)할 때에 여러 고을에서 이전(移轉)할 미조(米租) 중에 가장 오래된 것 1년 조(條)를 탕감(蕩減)하여 준다면 크게 백성의 혜택이 될 것입니다. 진실로 원하건대, 묘당(廟堂)에 하문(下問)하여 획일적으로 즉시 시행하게 하고, 빈민(貧民)이 공채(公債)나 사채(私債)를 지고 자신이 죽은 자에 대해서는 청컨대 그 자손(子孫)에게 침범하여 징수(徵收)하는 것을 금하게 하소서. 지난번 법사(法司)에서 출금(出禁)1110) 할 때에 금리(禁吏)가 도시(都市)에서 소란을 피우면서 함부로 속전(贖錢)을 징수하는 것을 금지시키지 않았으므로 백성이 지탱하여 견딜 수가 없었으니, 마땅히 여러 관사에 특별히 단속하여 한결같이 법조(法條)에 의거하여 과죄(科罪)하고 다시는 속전을 징수하지 말게 하며, 금리의 무리가 함부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별도로 엄중하게 추구(追究)하여 도민(都民)의 폐단을 제거하소서."
하고, 또 말하기를,
"제주 목사(濟州牧使) 신유익(愼惟益)의 패란(悖亂)한 거조(擧措)와 장회(贓賄)의 정치에 온 섬[島]의 인민(人民)이 물이나 불 속에 있는 것과 같았으니, 이미 교체(交遞)하였다고 해서 그대로 놓아 둘 수는 없습니다. 마땅히 잡아다 조사하여 과죄(科罪)하여야 하고, 임천 군수(林川郡守) 박필우(朴弼禹)는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으로서 씻기 어려운 누(累)가 있는데도 요급(料給)을 파는 것으로 힘을 써서 정령(政令)이 어긋나게 되니, 마땅히 그 직임(職任)을 파면시켜야 하며, 창성 부사(昌城府使) 홍하석(洪夏錫)은 만상(灣商)1111) 과 체결(締結)하여 지칙(支勅)1112) 으로 내어 준다고 하면서 쌓아 놓았던 전화(錢貨)·은금(銀錦)을 모두 사탁(私槖)으로 돌리고는 칙사(勅使)의 수용(需用)이라고 핑계를 대고는 또다시 더 거두었으니, 파직하는 것으로 그칠 수는 없습니다. 마땅히 사판(仕版)에서 이름을 삭제시키는 형률(刑律)을 시행하여야겠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질병(疾病)은 사람이 면하기 어려운 바이며 아비의 병을 구호(救護)하는 것은 이치에 당연한 일이다. 이전(移轉)하는 쌀을 적당히 감하는 일은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고, 채무(債務)를 보상하는 일은 별도로 경사(京司)나 외방(外方)에 신칙(申飭)할 것이며, 민간(民間)에서 함부로 소란을 피우는 자는 중률(重律)로써 다스려 백성의 피해를 제거시키고, 신유익(愼惟益)을 나문(拿問)하는 것과 두 수령(守令)에 관한 일은 아뢴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537면
- 【분류】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재정(財政) / 금융(金融) / 인사(人事) / 구휼(救恤)
- [註 1110]출금(出禁) : 일정한 지역 내에 하리(下吏)들을 내보내어 범법행위(犯法行爲)를 단속하게 하는 것.
- [註 1111]
만상(灣商) : 의주(義州) 사람으로서 중국인과 교역(交易)하던 큰 장사치.- [註 1112]
지칙(支勅) : 칙사(勅使)를 지대(支待)함.○司諫李倚天上疏, 略曰:
今此五賊, 實千古載籍以來所未有之凶逆也。 乃者大臣, 率百僚而守大庭, 上自卿宰, 以至微官, 無不沫血奮氣, 奔走先後, 而獨兵曹判書洪致中, 前後庭班, 一不進參。 人臣討逆, 愚智所同, 則知其不參者, 必由於病故, 而獨怪夫不先不後, 病作於庭請議發之際, 旋愈於籲班旣撤之日, 是何疾病之來, 適會此時耶? 況其子晋猷, 見方帶職, 而終始不參, 臣未知晋猷, 亦且有難强之病耶? 抑扶護父病, 未暇及此者耶? 臣竊爲重臣慨然也。
又曰:
今夏亢旱, 已判大歉。 連歲飢饉之餘, 孑遺殘氓, 擧將顚連, 而若又責其積歲逋負, 則是豈仁人君子之所爲者哉? 在有司恤費之道, 雖不可一幷蠲除, 而前此賑恤時, 列邑移轉米租最久者, 一年條蕩減, 大爲民惠。 誠願俯咨廟堂, 劃卽施行, 貧民之負公私債而身死者, 請禁侵徵其子孫。 向時法司之出禁也, 不戢禁吏, 作挐都市, 濫徵贖錢, 民不支堪。 宜另飭諸司, 一依法條科罪, 而勿復徵贖, 禁吏輩橫挐者, 別樣重究, 以除都民之弊。
又曰:
濟州牧使愼宜益, 悖亂之擧, 贓賄之政, 一島人民, 如在水火。 不可以已遞而置之, 宜拿覈科罪。 林川郡守朴弼禹, 以奸猾之人, 有難洗之累, 料販是務, 政令乖舛, 宜罷其職。 昌城府使洪夏錫, 締結灣商, 出給支勑, 所儲錢貨、銀錦, 盡歸私橐, 稱以勑需, 又復加斂。 不可罷職而止, 宜施削版之律。
批曰: "疾病, 人所難免, 救護父病, 於理當然。 轉米量減事, 令廟堂稟處, 償債事, 另飭京司及外方, 橫挐民間者, 繩以重律, 以除民弊。 愼惟益拿問, 兩守令事, 依施。"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537면
- 【분류】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재정(財政) / 금융(金融) / 인사(人事) / 구휼(救恤)
- [註 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