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영조실록 5권, 영조 1년 4월 10일 정축 2번째기사 1725년 청 옹정(雍正) 3년

전교하여 시비를 분명히 알고 있음을 말하고 탕평을 논하다

전교하기를,

"지난날의 일을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대행조(大行朝)의 지인(至人)·성덕(盛德)은 선조(先朝)의 유의(遺意)를 본받아 정령(政令)을 시행할 때에는 한결같이 선조의 구장(舊章)을 따랐었는데, 간사한 무리들이 중간에서 막아 가리며 정병(政柄)을 몰래 환롱(幻弄)해서 선조의 구장을 바꾸어 정신(廷臣)들을 장살(戕殺)하였으니, 만약 대행조의 지인(至人)·지덕(至德)이 아니었으면 그 끼친 해독이 어찌 여기에 그쳤겠는가? 교문(敎文) 중에 첨가해 넣은 두 글자는 오늘날 정신(廷臣)들이 어찌 강제로 시켜서 그렇게 했겠으며, 내가 어찌 차마 하지 못할 일을 했겠는가? 요사이 처분은 한결같이 선조(先朝)의 유의(遺意)를 따랐고, 한결같이 대행조께서 계술(繼述)한 성덕(聖德)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두 글자를 첨가해 넣지 않는다면, 우리 임금의 성명(聖明)으로 뭇 간신들이 어떻게 멋대로 농간을 부릴 수 있었겠으며 어떻게 속여 가릴 수가 있었겠는가? 이것은 성덕(盛德)을 밝히려고 하다가 도리어 의혹스러운 데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니, 지극히 밝으신 대덕(大德)을 어떻게 후세에 전할 수 있겠으며, 군소(群小)들이 속여 가린 것을 장차 어떻게 분명히 알 수 있게 하겠는가? 한때 차마 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바로 소절(小節)이므로 성명(成命)을 도로 거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송인명(宋寅明)의 소어(疏語)를 살펴보건대, 서명균(徐命均)의 상소가 비록 등철(登徹)되지는 않았으나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으니, 두 사람이 당여(黨與)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이미 환히 알고 있는 것이다. 소어(疏語) 가운데, ‘만약 일을 좋아하는 무리들이 이로 인하여 잇따라 일어난다면 엄중한 말로 물리치고 준절하게 막아 버려야 한다.’는 등의 말은 그들의 성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당파가 습성을 이룬 뒤부터 말이 조금이라도 시의(時議)와 다르면 비록 중도를 얻은 말이라 해도 곧장 경알(傾軋)하는 데로 돌려 버리니, 이는 당파 없는 탕평(蕩平)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아, 처분하는 권한은 위에 있는 법이고, 내가 이미 시비(是非)를 분명히 알고 있으니, 그 사이에 무슨 의혹됨이 있겠는가? 처분이 정해진 후에 불량한 무리들이 혹시라도 다시 일어날 것 같으면 중률(重律)로 다스린들 무엇이 불가할 바가 있겠는가?

아! 지난 가을 간곡한 옥음(玉音)을 병세가 위중하신 날에 친히 받들었으니, 이제 와서 추모하면 마음을 도려내는 것 같다. 내가 비록 덕이 적지만, 어찌 대행조(大行朝)의 성덕(盛德)을 드러내어 군소배(群小輩)들의 속여 가린 실상을 밝히지 않겠는가? 우리 조정에도 일컬을 만한 것이 있으니, 인종조(仁宗朝)에 선정신(先正臣) 조광조(趙光祖)의 관작을 회복시켜 주었을 때와 선묘조(宣廟朝)에 남곤(南袞) 등의 관작을 추삭(追削)하였을 때 단지 그 일만 논했는데도 중묘(中廟)의 성덕(盛德)은 후세에 더욱 드러났고, 군소배들의 죄는 사책(史冊)에서 도피할 수 없었다. 사신(詞臣)들로 하여금 인묘조에 제신(諸臣)을 추복(追復)시켰을 때와 선묘조에 군흉(群凶)을 추삭(追削)하였을 때의 하교(下敎)를 참고하여 고문(告文)과 교문(敎文)을 찬진(撰進)하게 하라. 이와 같이 처분한 후에도 이 일을 다시 제기하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마땅히 멀리 정배(定配)하는 법을 시행할 것이다. 아! 근밀한 신하들은 나의 이 분부를 중외(中外)로 하여금 모두 분명히 알게 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5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501면
  • 【분류】
    정론(政論) / 왕실(王室)

○敎曰:

向日之事, 尙忍言哉? 大行朝至仁盛德, 體先朝之遺意, 政令施措, 一遵先朝舊章, 而奸壬輩, 從中掩翳, 潛弄政柄, 變易先朝舊章, 戕殺廷臣。 若非大行朝至仁至德, 則其流之害, 豈止此哉? 敎文中添入二字, 今日廷臣, 豈强爲而然哉, 予豈非不忍而爲哉? 近日處分, 一以遵先朝之遺意, 一以彰大行朝繼述之聖德, 而若不添入二字, 則吾王聖明, 群奸何以爲擅弄, 何以爲欺蔽? 是欲明盛德, 而反歸於疑惑之科, 則至明大德, 何以垂後世, 群小欺蔽, 將何以明知乎? 一時之不忍, 乃小節, 故收還成命矣。 今觀宋寅明疏語, 徐命均疏, 雖未徹, 同然可想兩人之不爲甘心黨與, 予已洞知。 疏語中, 若有喜事輩, 因此繼起, 則嚴辭退斥, 峻立防限等說, 可見其誠。 一自黨習之後, 言非時議, 則言雖得中, 直歸傾軋, 此非無黨蕩平之意也。 嗚呼! 處分在上, 予已明知是非, 則有何疑晦於其間? 處分旣定之後, 不逞之徒, 若或更起, 則繩以重律, 何所不可? 噫嘻! 昨秋丁寧之玉音, 親承於大漸之日, 追惟此時, 心焉如割。 予雖涼德, 豈不彰大行朝盛德, 以明群小之欺蔽哉? 我朝亦有可言者。 仁宗朝復官先正臣趙光祖時, 宣廟朝追削南袞等時, 只論其事, 而中廟盛德, 益彰於後世, 群小之罪, 無所逃於史冊。 其令詞臣, 參互仁廟朝追復諸臣時, 宣廟朝追削群凶時下敎, 撰進告文與敎文。 如是處分之後, 若有更提此事者, 則當施屛裔之典。 咨爾! 近密之臣, 將予此敎, 咸使中外, 明知處分。


  • 【태백산사고본】 4책 5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501면
  • 【분류】
    정론(政論) /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