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 조명교가 상소하여 아홉 가지 조항을 진달하다
정언(正言) 조명교(曺命敎)가 상소하여 아홉 가지 조항을 진달했는데,
1. 성효(聖孝)를 돈독히 하고,
2. 성학(聖學)에 힘쓰고,
3. 기질(氣質)을 바로잡고,
4. 신하들을 예우하고,
5. 치체(治體)를 살피고,
6. 무너진 기강을 진작시키고,
7. 인재(人材)를 수습하고,
8. 민심(民心)을 얻고,
9. 쓸데없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질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말하기를,
"주자(朱子)가 장식(張栻)에게 보낸 편지에 이르기를, ‘장중(莊重)하고 침착(沈着)한 기상에 부족한 바가 있으므로 드러나는 것에 과격함이 많고 함축성이 적은데 이는 본원(本源)을 함양(涵養)하는 공부가 지극하지 못해서 그러할 따름이다. 이로써 일을 생각하면, 나는 아마도 보고 듣는 것을 살피지 못하고 사려(思慮)가 자세하지 못한 듯하다. 아침저녁으로 점검해서 그러한 싹을 끊는다면 뜻이 정해지고 생각이 안정되어 위아래가 모두 신복(信服)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전하(殿下)께서는 영기(英氣)가 너무 지나치시어 혹 그와 같이 치우친 점을 면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최규서(崔奎瑞)가 말씀드린 것 중에, ‘무게가 없으면 위엄이 서지 않는다.’고 한 것은 바로 증세(症勢)에 적합한 처방이었습니다. 원컨대, 몸가짐을 침착하고 온후하게 가지셔서 사물을 대함에 있어 너그럽게 하소서."
하고, 그 신하들을 예우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이르기를,
"대사헌(大司憲)의 말이 경솔함은 면할 수가 없으나, 임금에게 성실하지 않게 고하였다고 하신 하교(下敎)는 아마도 지나친 듯합니다. 금오(金吾)의 장관이 사직한 것과 관서백(關西伯)108) 이 인혐(引嫌)한 것은 부득이한 형편이었는데, 바로 ‘조금만 기강이 있었다면 어찌 감히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교하셨습니다. 중신(重臣)과 재상들은 서관(庶官)에 비해 더욱 다르니, 이들을 속박하며 얽어매는 것은 염치를 길러주고 체면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못됩니다."
하고 치체(治體)를 살펴야 한다는 데 대해 이르기를,
"요숭(姚崇)이 낭리(郞吏)를 제수하자고 청하자 현종(玄宗)은 전우(殿宇)를 쳐다보고 대답하지 아니하였는데, 의논하는 자가 체통(體統)을 얻었다고 일컬었습니다. 대개 일마다 살피려고 하면 정신이 먼저 피곤해지고, 물건마다 구하려고 하면 생각이 두루 미치기 어려운 것인데, 그로 인한 폐단은 점차로 작은 것은 살피고 큰 것은 버려두며 말단적인 것을 먼저하고 근본적인 것은 뒤로 미루는 근심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고, 인재를 수습(收拾)해야 한다는 데 대해 이르기를,
"오늘날 사람을 등용함에 있어 사의(私意)가 횡행(橫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관직을 제수하고 한 계급의 품질을 올려 줄 때마다 외인(外人)이 미리 손가락을 꼽으며 말하기를, ‘누구와 누구가 친한 사이다.’ 하고, 심할 경우에는, ‘누가 누구를 잘 섬긴다.’고 하는데, 제목(除目)109) 이 내려지면 그 말에 어긋남이 거의 없습니다. 어사(御史)가 장계하고 대간이 탄핵하는 글을 올리면, 탐장(貪贓)이 많은데도 조사하여 의언(議讞)110) 할 적에는 공공연하게 벗어나며, 한번 사령(赦令)을 거치면 거리낌없이 녹용(錄用)하고 있습니다. 탐관 오리(貪官汚吏)들은 비록 엄중한 법으로 다스려도 오히려 두려워하여 그치지 않을 것인데, 더구나 벼슬을 주기를 마치 포장(褒奬)하는 것처럼 하고 있으니, 무엇을 꺼려하여 하지 않겠습니까? 권세(權勢) 있는 사람에게 뇌물을 주는 것은 진실로 고질적인 폐단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매진(媒進)할 수가 없으니, 역시 부득이한 처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후백(李後白)이 전형(銓衡)을 잡고 있을 적에 친족(親族) 가운데 벼슬을 구하는 자에게 책자(冊子)를 내보이며 말하기를, ‘나는 그대의 이름을 기록해 두었었다. 아깝구나! 그대가 아예 말을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벼슬을 얻었을 것인데.’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상헌(金尙憲)이 정승으로 있을 적에 어떤 병사(兵使)가 부채 40 자루를 보내왔는데, 10 자루만 남겨 놓고 돌려 주었습니다. 그런 일을 후세 사람들이 미담(美談)으로 전해 오고 있습니다."
하고, 쓸데없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데 대해 이르기를,
"대상(大喪) 때에 궁인(宮人)에게 내린 상포(喪布)는 경자년111) 에 비해 3백 필이나 더 많았습니다. 만약 명목(名目)을 헛되게 벌여 놓은 것이 아니면 반드시 궁인의 액수(額數)를 늘린 것입니다. 무릇 궁인을 내보내는 것은 새 정치에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는 곧 울적한 심기(心氣)를 배설시키는 것이고, 자급(資給)하는 비용을 줄이는 것도 됩니다. 적당하게 내보내서 첫 정치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비어 있는 궁궐의 각문을 수직하는 고군(雇軍)이 모두 1백 20명으로, 해마다 주는 베[布]가 2천 4백 40필입니다. 그리고 시어소(時御所)112) 의 각 차비인(差備人)과 전원문(殿院門)을 순직하는 고용군은 모두 2백 40명으로, 해마다 주는 베는 5천 7백 60필입니다. 후원(後苑)의 자주 열지 않는 문은 굳이 지켜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창차비(窓差備)·내차비(內差備) 따위는 이중으로 정해진 것이니 더욱 의의가 없습니다. 빈 궁궐과 시어소는 차이가 있는 것이니, 그 긴요하고 긴요하지 않은 것을 참작하여 알맞게 줄이시면, 이는 비용을 절약하는 데 진실로 합당할 뿐만 아니라 양역(良役)을 변통하는 데에도 도움되는 것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한기(韓琦)가 말하기를, ‘비용을 줄이는 것은 궁궐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습니다. 무릇 쓸데없는 경비에 관계되는 것을 일체 혁파(革罷)하소서."
하니, 임금이 가납(嘉納)하고, 묘당(廟堂)에 내려 품처(稟處)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412면
- 【분류】정론(政論) / 인사(人事) / 재정(財政)
- [註 108]관서백(關西伯) : 평안 감사.
- [註 109]
제목(除目) : 관리를 제수한 후 만드는 목록.- [註 110]
○正言曺命敎上疏陳九條, 一曰敦聖孝, 二曰懋聖學, 三曰矯氣質, 四曰禮臣隣, 五曰審治體, 六曰振頹綱, 七曰收人才, 八曰得民心, 九曰省冗費。 其言矯氣質有曰: "朱子遺張栻書曰: ‘莊重沈密, 氣像有所不足, 故所發多暴露而少含蓄。 此殆涵養本源之工, 未至而然耳。 以此慮事, 吾恐視聽不能審, 思慮不能詳也。 朝夕點檢, 絶其萠芽, 則志定慮靜, 上下信服。 殿下英氣太過, 或不免此等偏處。 崔奎瑞所陳, 不重則不威, 正對症之劑。 願沈厚以持之, 寬裕以濟之。" 禮臣隣有曰: "憲長之言, 不免率爾, 而告君不實之敎, 或似過重。 金吾長巽讓, 關西伯引嫌, 勢不可已, 而直以小有紀綱, 安敢乃爾爲敎。 重臣、宰臣, 視庶官尤別, 束縛維縶, 非所以養廉恥重體貌也。" 審治體有曰: "姚崇請除郞吏, 玄宗視殿宇不答, 論者稱其得體。 槪事事而察之, 則精神先疲, 物物而求之, 則思慮難周, 其流之弊, 馴致審小遺大, 先末後本之患。" 收人才有曰: "今日用人, 私意橫流。 每授一官晉一秩, 外人預屈指而論曰: ‘某與某親。’ 甚則曰: ‘某善事某。’ 除目之下, (不)〔差〕 爽無幾。 繡啓、白簡, 貪贓狼藉, 而行査議讞, 公然白脫, 一經赦令, 錄用無礙。 貪官汚吏, 雖重法以繩, 猶懼不戢, 況又從以爵之, 若崇奬者然, 則何憚而不爲乎? 關節饋遺, 實爲痼弊, 而不如是, 則無以媒進, 亦出於不獲已也。 李後白之秉銓也, 族人有求官者, 乃出示冊子曰: ‘吾錄子名。 惜乎! 子若不言, 可以得官。’ 金尙憲之爲相也, 有閫帥遺四十扇, 只留十柄而還之, 後人傳爲美談。" 省冗費有曰: "大喪時, 宮人喪布, 加庚子三百匹。 若非虛張名目, 必是宮人增額。 夫放出宮人, 新服美政, 乃所以洩幽鬱之氣, 蠲資給之費。 量宜散遣, 以爲初政之一助焉。 空闕各門守直雇軍, 通爲一百二十名, 歲給布二千四百四十匹。 時御所各差備及殿院門守直雇軍, 通爲二百四十名, 歲給布五千七百六十匹。 後苑罕開之門, 無所事於典守。 且如窓差備、內差備之類疊定, 尤涉無謂。 空闕與時御有間, 量其緊歇, 爲之裁減, 不但允合於節用之道, 其有補於良役變通, 亦不細矣。 韓琦曰: ‘省費自宮禁始。’ 凡係冗費, 一切革罷。" 上嘉納之, 下廟堂稟處。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412면
- 【분류】정론(政論) / 인사(人事) / 재정(財政)
- [註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