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상을 명하여 유봉희를 우의정으로 이광좌를 좌의정으로 삼다
복상(卜相)048) 을 명하여 유봉휘(柳鳳輝)를 우의정(右議政)으로 삼았다. 옛 관례에 공제(公除) 이튿날에는 반드시 개정(開政)049) 하여 관직(官職)을 제수(除授)했는데, 이날이 마침 국기 재계(國忌齋戒)와 상치(相値)되므로 임금이 국기(國忌)가 지난 다음에 개정하라고 명하고, 이어 우의정(右議政) 이광좌(李光佐)를 불러 복상(卜相)하게 하니, 이광좌가 혼자 복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두 번이나 사양했으나 윤허(允許)하지 아니하였다. 이광좌가 마침내 청대(請對)하고 말하기를,
"숙종(肅宗)갑술년050) 에 좌의정(左議政)·우의정(右議政)이 모두 결원(缺員)이 되었을 때 수상(首相) 남구만(南九萬)이, ‘두 사람만을 새로 선발하는 것은 단부(單付)051) 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니, 마침내 세 사람을 매복(枚卜)하게 하였습니다. 선왕조(先王朝) 계묘년052) 에 신(臣)이 복상(卜相)에 참여했을 적에도 좌의정 최석항(崔錫恒)이, ‘한 사람만을 새로 뽑는 것은 단부(單付)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고, 청대(請對)하여 품지(稟旨)한 다음에 비로소 두 사람을 매복하게 했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한 사람을 더 추천하여 갑술년과 계묘년의 전례와 같게 하소서."
하니, 그렇게 하라고 윤허하였다. 이광좌가 또 말하기를,
"왕비(王妃)의 부모를 봉작(封爵)하는 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비록 공제(公除) 전에 거행한다고 하더라도 불가(不可)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삼가 듣건대, 개정(開政)하기를 기다려서 거행하겠다는 하교(下敎)가 있었다고 하니, 그것은 너무 늦습니다. 청컨대, 복상(卜相)을 할 때에 증작(贈爵)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난 역사를 두루 상고해 보건대, 누구로 사도(司徒)나 사공(司空)을 삼았다고 한다면 그 다스려짐을 볼 수 있겠지만, 국구(國舅)에게 봉작하는 것을 복상하는 일과 함께 거행한다면 이는 후세 사람에게 본보기가 될 수 없다. 약간 선후(先後)의 차이가 있다고 하여 무슨 손상될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이광좌가 물러나와 유봉휘(柳鳳輝)·이조(李肇)를 매복(枚卜)하였는데, 유봉휘가 우의정이 되고 이광좌는 좌의정으로 승진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406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註 048]복상(卜相) : 정승(政丞)이 될 사람을 가려 뽑음. 정승은 국가의 중임(重任)을 맡은 사람이므로, 옛날에는 자리에 앉을 사람의 길흉(吉凶)을 점쳐서 뽑았다는 고사(故事)에서 유래(由來)함.
- [註 049]
개정(開政) : 정사(政事)를 시작함. 즉 인사 행정(人事行政)에 관한 업무를 집행하기 위하여 해당 관원들이 모여 사무를 보는 일.- [註 050]
○命卜相, 柳鳳輝爲右議政。 舊例, 公除翌日, 必開政除職, 是日, 適値國忌齊戒, 上命過國忌開政, 乃召右議政李光佐卜相, 光佐以不可獨自枚卜, 再辭, 不許。 光佐遂請對言: "肅宗甲戌, 左、右相皆缺, 首相南九萬以爲, 兩人新卜, 無異單付, 乃以三人枚卜。 先朝癸卯, 臣之參卜也, 左相崔錫恒, 亦以爲, 一人新卜, 無異單付, 請對稟旨, 然後始卜二人。 今請加卜一人, 如甲戌、癸卯例。" 許之。 光佐又曰: "王妃父母封爵重矣。 雖公除前擧行, 未爲不可, 而伏聞有待開政擧行之敎, 亦太遲也。 請於枚卜時, 封贈焉。" 上曰: "歷考前史, 有以某爲司徒、爲司空, 則可以觀其治也, 國舅封爵, 竝擧於枚卜, 非足爲後人觀也。 差有先後, 庸何傷乎?" 光佐退, 以柳鳳輝、李肇枚卜, 而鳳輝入相, 光佐陞左議政。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406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註 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