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병이 위급해지다
임금의 병환이 계속 여러 날 동안 낫지 않아 수라(水剌) 올리는 것마저 싫어하였는데, 이에 이르러서는 또 한열(寒熱)의 징후가 있어 약방(藥房)에서 입진(入診)하고 약(藥)을 의논하여 시진탕(柴陳湯)을 지어 올렸다. 임금이 동궁(東宮)에 있을 때부터 걱정과 두려움이 쌓여 마침내 형용하기 어려운 병을 이루었고, 해를 지낼수록 깊은 고질이 되었으며, 더운 열기가 위로 올라와서 때로는 혼미(昏迷)한 증상도 있었다. 그래서 계속 국방(局方)에서 올린 우황 육일산(牛黃六一散)과 곤담환(滾痰丸) 등 하리(下利)의 약제(藥劑)를 복용하였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그런데 사인(士人) 이공윤(李公胤)은 성질이 광망(狂妄)하였으나 의업(醫業)으로 명성이 있었는데, 그의 의술은 대체로 준리(峻利)224) 를 위주로 하였다. 임인년225) 이후로 천거(薦擧)되어 약방(藥房)에 들어가 임금의 병환을 모시었는데, 이공윤이 스스로 말하기를 ‘도인승기탕(桃仁升氣湯)을 자주 복용하여 크게 탕척(蕩滌)해 내면 임금의 병환이 금방 나을 수 있다.’고 하여 그것을 시험해 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공윤은 오히려 방자하게 노기 띤 눈으로 보면서 스스로 의술을 자랑하며, 다시 시평탕(柴平湯)을 의논하면서 대황(大黃)·지실(枳實) 등 추탕(推盪)226) 하는 재료로 군약(君藥)227) 을 삼아 계묘년228) 에 시작하여 올봄에 이르도록 계속하여 1백 수십 첩(帖)을 올렸다. 그러자 비록 임금의 체부(體膚)의 외형(外形)은 왕성하나 비위(脾胃) 등 내장이 허하였고, 음식을 싫어하는 날수가 오래 되어 마침내 한열(寒熱)의 증세가 발생하였다. 그런데도 이광좌(李光佐)는 이공윤의 망령됨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대비(大妃)의 병이 나은 것도 그 의약(議藥)의 공을 이공윤에게 돌리고 논상(論賞)을 청하기까지 하였으니, 식자(識者)가 이를 애석하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7책 15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325면
- 【분류】왕실(王室) / 인물(人物)
- [註 224]준리(峻利) : 강력하게 통리(通利)시킴.
- [註 225]
임인년 : 1722 경종 2년.- [註 226]
○上疾連日彌留, 厭進水剌, 至是, 又有寒熱候, 藥房入診議藥, 進柴陳湯。 上自在東宮, 積憂畏, 遂成難狀之疾, 歷歲沈痼, 火熱上升, 有時昏迷。 連服局方所進牛黃六一散、滾痰丸等下利之劑, 猶未效。 士人李公胤, 性狂妄, 業醫有名, 而其術大抵以峻利爲主。 壬寅後, 薦入藥房侍疾, 公胤自言, 以桃仁升氣湯數服, 大蕩滌之, 上疾可立愈, 試之無驗。 公胤猶恣睢自衒, 更議柴平湯, 以大黃、枳實推盪之材爲君藥, 自癸卯以後, 至今春連進百數十貼。 上雖體膚外旺, 而脾胃內虛, 厭膳日久, 遂發寒熱之症。 李光佐不能覺公胤之妄, 反以大妃疾愈, 歸議藥功於公胤, 至請論賞, 識者惜之。
- 【태백산사고본】 7책 15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325면
- 【분류】왕실(王室) / 인물(人物)
- [註 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