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의 징수의 연기·세제 익위사의 소임을 독촉하게 하는 것 등을 의논하다
대신과 비변사의 여러 재신(宰臣)이 입대(入對)하였다. 병조 판서 이조(李肇)가 말하기를,
"기병(騎兵)·보병(步兵)의 군포(軍布)를 경자년093) 이후 아직까지 바치지 않고 있는 것은 필시 색리(色吏)·두목(頭目)·등패(等牌)094) 등이 중간에 덮어 두었던 소치일 것이므로, 신이 일찍이 모두 조사하여 다 독촉해 받을 것을 청하여 과연 몇몇 고을은 수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농사철이 되었다며 수령들간에는 그 수납을 정지하고자 하는데, 지금 만약 이를 허락한다면 마침내는 포흠(逋欠)이 쌓이게 될 것이니, 독촉하여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는데, 우의정 이광좌(李光佐)가 말하기를,
"공자(孔子)가 치국(治國)의 대도(大道) 세 조항을 논하였는데, ‘백성을 부리되 시기에 맞추어 하라.’는 말이 그 한 조항에 들어 있으니,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마땅히 농사철을 빼앗지 않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야 합니다. 이제 경자년095) ·신축년096) 을 지난 지가 4, 5년이나 되었는데, 이 농사철을 당하여 4, 5년의 포흠(逋欠)을 바치라고 독촉한다면 백성이 장차 어떻게 견디어 내겠습니까? 9, 10월까지는 기다려야 비로소 징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색리(色吏)가 훔쳐 먹은 자는 농사철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이조(李肇)가 말하기를,
"세제(世弟)께서 날마다 서연(書筵)을 여는데도 익위사(翊衞司) 관원 민윤창(閔允昌)·박추(朴樞) 같은 자는 모두 밖에 나가 있어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윤동원(尹東源)은 말미를 받아 고향으로 가서 이미 시한이 지났습니다. 청컨대 속히 소임을 살피도록 독촉하게 하소서."
하고, 대제학 조태억(趙泰億)이 청하기를,
"조종(祖宗)의 고사(故事)에 의거하여 나이 젊은 문관 중에서 문장에 능한 자를 선발하여 호당(湖堂)에서 글을 읽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지평 김시형(金始炯)이 논계(論啓)하기를,
"문(文)·무(武)·음(蔭)의 벼슬길이 분간이 없어서 사적(仕籍)에 오른 지 10년이 채 못되어 출륙(出六)097) 을 의비(衣緋)098) 하게 하고 두어 달이 못되어 품계를 올리는가 하면, 무신(武臣)이 곧장 병사(兵使)에 제배되고, 대관(臺官)이 곧장 아장(亞長)에 제배되고, 음관(蔭官)이 곧장 군수로 뛰어 올라도 전혀 괴이쩍어하지 않으며, 근래 승문원(承文院) 관원 30여 명을 변통하여 승륙(陞六)099) 하게 한 일은 더욱 조급하게 승진하는 풍습만 열어 놓았습니다. 청컨대 묘당(廟堂)과 전조(銓曹)로 하여금 이제부터는 서차(序次)와 격례(格例)를 건너뛰어 승진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관방(官方)100) 을 중히 여기에 하소서."
하였으나, 임금이 따르지 않았다. 또 논하기를,
"제택(第宅)이 법제를 넘는 것을 일찍이 선조(先朝)에서도 칙려(飭勵)한 하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세의 풍속이 사치만 좋아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점차 느슨해져서 토목(土木) 일에 정교함을 다하는데, 이는 여항(閭巷)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컨대 해조(該曹)로 하여금 옛 금령을 거듭 밝혀서 법제를 넘지 못하도록 하소서. 북평사(北評事)는 유달리 싫어하고 회피하여 왔는데, 이미 곧장 돌아오는 길을 열어놓고 또 자주 체직되는 관직으로 삼아서, 한결같이 명관(名官)이 스스로 편리하게 하는 데에만 맡겨 두었으니, 유달리 사람을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청컨대 묘당으로 하여금 구례(舊例)에 의거하여 임기가 차기 전에는 마음대로 왕래하지 못하도록 법식을 정하여 시행토록 하소서. 황해 도사(黃海都事) 김명형(金命衡)은 이력도 이미 모자라는데다 또 성적(聲績)이 없고, 곽산 군수(郭山郡守) 윤이신(尹以莘)은 늙고 혼미하여 관사(官事)가 제대로 닦아지지 않습니다. 청컨대 김명형은 체직하고 윤이신은 파직하소서."
하니, 모두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7책 14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316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역(軍役) / 왕실-경연(經筵)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주생활-가옥(家屋)
- [註 093]경자년 : 1720 숙종 46년.
- [註 094]
등패(等牌) : 역사(役事)를 할 때에 일꾼들 중에서 영솔(領率)의 책임을 맡은 사람.- [註 095]
경자년 : 1720 경종 즉위년.- [註 096]
신축년 : 1721 경종 원년.- [註 097]
출륙(出六) : 6품으로 승진됨.- [註 098]
의비(衣緋) : 4, 5품(品) 관원이 입는 옷으로 4, 5품을 지칭함.- [註 099]
승륙(陞六) : 7품 이하에서 6품에 오름.- [註 100]
관방(官方) : 관리가 지켜야 하는 규율.○大臣備局諸宰入對。 兵曹判書李肇言: "騎、步布, 庚子以後未捧者, 必是色吏、頭目、等牌等從中掩置者。 臣曾請査出督捧, 果有數邑收納, 而今西疇有事, 守令或欲停捧。 今若許之, 終爲積逋, 不可不督捧。" 右議政李光佐曰: "孔子論治國大道三條, 使民以時, 居其一。 治國, 當以不奪農時爲急務。 今去庚子、辛丑, 爲四五年, 當此農節, 督捧四五年逋欠, 民將奚堪? 待九十月, 方可徵捧。 其色吏偸食者, 宜不拘農時捧之。" 上可之。 肇言: "世弟日開筵, 翊衛司官, 如閔允昌、朴樞, 皆在外不至, 尹東源受由歸鄕, 已過限。 請促令察任。" 大提學趙泰億, 請依祖宗故事, 抄選年少文官能文者, 讀書湖堂, 上從之。 持平金始烱啓論: "文、武、蔭, 仕途混淆, 通籍未十年, 衣緋出六, 不數月陞品, 武臣之直拜兵使, 臺官之直拜亞長, 蔭路之直超郡守, 恬不爲怪, 向來槐院官三十餘人, 變通升六, 尤啓躁進之習。 請令廟堂、銓曹, 自今無得躐次越格, 以重官方。" 上不從。 又論: "第宅踰制, 曾有先朝飭勵之敎, 而末俗好侈, 戒心漸弛, 土木窮巧, 閭巷同然。 請令該曹, 申明舊禁, 毋得踰制。 北評事厭避特甚, 旣開徑還之路, 又爲數遞之官, 一任名官自便, 殊失北人顒望。 請令廟堂, 依舊例準瓜限, 不得擅便往來, 定式施行。 黃海都事金命衡, 旣乏履歷, 且無聲稱, 郭山郡守尹以莘, 衰老昏謬, 官事不修。 請遞命衡, 罷以莘。" 俱從之。
- 【태백산사고본】 7책 14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316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역(軍役) / 왕실-경연(經筵)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주생활-가옥(家屋)
- [註 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