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부에서 이경지를 국문할 것·김재로를 양이하여 방송하지 말 것 등을 청하다
헌부(憲府) 【지평(持平) 심준(沈埈)이다.】 에서 전계(前啓)를 거듭 아뢰고, 또 논하기를,
"이경지(李慶祉)는 엄하게 핵실(覈實)하여 정죄(正罪)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잡아다가 엄하게 국문(鞫問)하소서. 김재로(金在魯) 등은 죄명(罪名)이 지극히 무거워 가벼이 의논할 수 없는데, 억지로 피차(彼此)를 구분하여 처분이 전도되었습니다. 청컨대 양이(量移)하여 방송(放送)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양주(楊州)의 석실 서원(石室書院)은 곧 문정공(文正公) 김상헌(金尙憲)을 제향하는 곳인데, 지난번에 흉당(凶黨)들이 김수항(金壽恒)과 그 아들 김창협(金昌協)을 외람되게도 추배(追配)하는 열(列)에 끼이게 하였으므로, 사림(士林)들의 놀라움과 통분이 지금까지도 그치지 않습니다. 만일 역적 김창집(金昌集)의 아비와 그 아우가 지금 살아 있다면 마땅히 연좌(連坐)의 율(律)을 베풀었을 것인데, 현사(賢祀)에 종향(從享)하기까지 하여 나라의 법을 무너뜨리고 유궁(儒宮)을 욕되게 하였으니, 이것이 대계(臺啓)가 일어나게 된 까닭입니다. 김수항 부자는 말할 만한 명절(名節)이나 학술(學術)이 없으며, 역적 김창집이 처벌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청컨대 해조(該曹)로 하여금 빨리 배향에서 내쫓는 법을 거행하게 하소서. 서원(書院)을 설치하는 것은 대개 후학(後學)들이 선현(先賢)을 존모(尊慕)하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정호(鄭澔)가 이에 괴산(槐山) 땅에 한 채의 원우(院宇)를 지었는데, 길거리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정 판서(鄭判書)의 생서원(生書院)이라고 하며, 동향(同鄕)의 무뢰배들과 이웃 고을의 피역(避役)하는 무리들이 모두 거기로 달려와 빌붙으니, 죄진 자가 숨는 하나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전후로 선정(先正)을 무함하는 상소를 하는 무리에게 식량을 도와주었으니, 그 용심(用心)과 행사(行事)가 진실로 간특합니다. 청컨대 본도(本道)로 하여금 속히 허물어 버리게 하소서."
하였으니, 임금이 모두 따르지 않았다. 김수항 부자가 석실 서원에 잇따라 제향(祭享)되자 사람들이 김씨(金氏) 사우(祠宇)라 일렀는데, 대개 비웃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창협의 문장과 학식 역시 원향(院享)을 따로 세움직한 것인즉, 어찌 역적의 족속이라고 하여 배향(配享)에서 내치라고 추론(追論)할 수 있겠는가? 정호의 생서원에 대한 말은 반드시 그를 미워하고 질투하는 자에게서 나왔을 것인데, 대각(臺閣)의 언의(言議)가 너무 심하게 하는 것만 힘쓰고 사실의 본질은 궁구(窮究)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한 시대를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95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司法)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憲府 【持平沈埈。】 申前啓, 且論: "李慶祉不可不嚴覈正罪, 請拿鞫嚴問。 金在魯等罪名至重, 不可輕議, 强分彼此, 處分顚倒。 請還收量移放送之命。 楊州之石室書院, 卽文正公 金尙憲俎豆之地, 而向者凶黨, 乃以金壽恒及其子昌協, 濫廁追配之列。 士林之駭憤, 尙今未已。 若使逆集之父與弟, 尙今生存, 當施隨坐之律, 至於從享賢祀, 壞邦憲而辱儒宮。 此臺啓所以發也。 壽恒父子, 非有名節、學術之可言, 到今逆集伏法之後, 尤不可仍置。 請令該曹, 亟擧黜配之典。 書院之設, 蓋出後學尊慕先賢, 而鄭澔, 乃於槐山地, 營建一院宇, 道路相傳以爲, 鄭判書生書院。 同鄕無賴之輩, 隣邑避役之徒, 無不趨附, 作一逋逃藪。 前後醜正疏軍, 除穀助糧, 設心行事, 實爲巧慝。 請令本道, 卽速毁(掇)〔撤〕 。" 上竝不從。 金壽恒父子, 繼享石室, 人謂之金氏祠宇, 蓋譏之也。 然昌協文章學識, 亦足以別立院享, 則何可追論其逆屬而黜配乎? 鄭澔生書院之云, 必出於憎嫉者, 而臺閣之言議, 務爲已甚, 不究本實, 何以服一世哉?"
-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95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司法)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