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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실록12권, 경종 3년 4월 27일 병자 1번째기사 1723년 청 옹정(雍正) 1년

칙사를 맞이하다

임금이 칙사(勅使)를 서교(西郊)에서 맞이하였다. 청사(淸使) 내각 학사 예부 시랑(內閣學士禮部侍郞) 상보(常保)와 부사(副使) 두등 시위 이도(頭等侍衞伊都) 액진명(額眞明)이 입경(入京)하였다. 임금이 환궁(還宮)하여 칙서(勅書)를 받으니, 곧바로 강희제(康熙帝)의 시조(諡詔)였다. 이어 칙사(勅使)를 접견(接見)하였는데, 칙사가 임금이 황제(皇帝)의 안부를 서서 묻는 것은 잘못이라 하자. 병조 판서(兵曹判書) 이광좌(李光佐)가 나아가 말하기를,

"꿇어앉아 묻는 것을 아낄 바가 아니나, 나라를 세운 이래 규례가 그러하였습니다. 지금 성교(盛敎)를 받으니 매우 불안하다는 뜻으로 답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 말에 의해 하라고 명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91면
  • 【분류】
    외교-야(野) / 왕실-의식(儀式)

    ○丙子/上迎勑于西郊使內閣學士禮部侍郞常保、副使頭等侍衛伊都額眞明入京。 上還宮受勑, 乃頒康熙帝謚詔也。 仍接見勑使, 勑使以上立問皇帝安否爲非, 兵曹判書李光佐進曰: "跪問, 非所惜也, 立國以來, 規例如許矣。 今承盛敎, 深用不安之意, 答之似好矣。" 上命依其言爲之。


    •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91면
    • 【분류】
      외교-야(野)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