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이 왕세제를 살해하려 하매 왕세제가 사위하려 하다
왕세제(王世弟)가 밤에 입직(入直)한 궁관(宮官) 김동필(金東弼)·권익관(權益寬)과 익위사(翊衞司)와 관원을 불러서 인접(引接)하였다. 왕세제가 궁관에게 이르기를,
"한두 환관이 작용(作俑)636) 하여 나를 제거하려 하자, 자성(慈聖)께서 나로 하여금 대조(大朝)637) 께 들어가 고하게 하시므로 내가 울면서 대조께 청하였는데, 처음에는 나추(拿推)하라 명하셨다가 돌아서서 또 도로 거두셨다. 이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만이지만, 이미 발생한 뒤에는 임금 곁에 있는 악한 자를 없애지 않을 수 없어서 다시 진달하였더니, 갑자기 감히 듣지 못할 하교를 내리셨다. 내가 장차 합문(閤門)을 나가 거적을 깔고 죄를 기다리며 사위(辭位)하려 하므로 강관(講官)에게 나의 거취(去就)를 알리려는 것이다."
하니, 김동필과 권익관이 말하기를,
"저하(邸下)께서는 대조께 군신(君臣)의 분의(分義)와 부자(父子)의 의리가 있으니, 비록 한때 미안한 하교가 있다 하더라도 오직 마땅히 더욱 공경하고 더욱 효성을 다해야 할 뿐입니다. 환관에 이르러서는 옛사람이 가노(家奴)라고 일컬었고 죄악이 이처럼 드러났으니, 궁내에서 명백히 진청(陳請)하여 전형(典刑)을 바로잡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외정(外廷)에서도 마땅히 곧 징토(懲討)를 행해야 할 것인데, 어찌 족히 저하의 불안한 단서가 되겠습니까? 대조께 저사(儲嗣)가 없어 저하를 국본(國本)으로 미리 정하셨고, 양궁(兩宮)의 사랑과 효성에 사이가 없으신데, 어찌 여우와 쥐 같은 무리의 작용(作用)으로 인해 갑자기 사위(辭位)하고 죄를 기다리는 일을 하십니까? 또 저하의 지위는 바로 ‘저사’의 지위로서 국본이 매인 바이므로, 원래 사피할 길이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혹 동요된다면 나라가 따라서 망할 것입니다. 저하께서는 어찌하여 생각이 이에 미치지 아니합니까? 신 등이 죽음이 있을 뿐이며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왕세제가 말하기를,
"이는 일조 일석(一朝一夕)의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랫동안 점점 쌓여온 것이다. 내가 성상 앞에 이미 고한 뒤에 비록 나추(拿推)의 명을 거두었을지라도 저희들은 마땅히 움츠리고 엎드려 죄를 기다려야 할 것인데, 도리어 조금도 꺼리는 바가 없이 의기 양양하게 금중(禁中)에 출입하며, 오늘날 와서는 문안과 시선(視膳)638) 도 이 무리로 인하여 막혔다. 내가 만약 이 지위를 피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저 무리의 독수(毒手)에 해를 입을 것이니, 지위를 사양하고 죄를 기다리는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내가 혼전(魂殿)에 곡(哭)하고 하직해야 함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대로 사제(私第)로 나왔으니, 이는 성상의 하교를 아직 받지 못하였으므로 감히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니, 김동필 등이 힘써 다투고, 이에 사부(師傅)와 빈객(賓客)을 불러 내일 천천히 의논할 것을 청하였으나, 왕세제가 듣지 아니하고 사위소(辭位疏)의 초본(草本)을 내어 보이자, 김동필과 권익관이 말하기를,
"환관이 국가에 화(禍)를 일으킨 것은 전대의 역사를 상고해도 뚜렷이 볼 수가 있습니다. 더욱이 이 무리는 하늘까지 이른 악이 이처럼 환히 드러났으니, 진청(陳請)하여 법을 바르게 하는 것은 진실로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합문(閤門)을 나가 자리를 깔고 대죄(待罪)하며 지위를 사양하는 것은 신 등이 죽어도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전하께서 한 번 합문에 나가시면 국본이 흔들릴 것이니,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고도 망하지 않은 나라는 없었습니다."
하였다. 왕세제가 말하기를,
"오늘날의 일은 이 무리와 내가 양립(兩立)할 수 없는 형세이다. 차라리 이 지위를 놓아 버리고 선조(先朝)로부터 받은 봉작(封爵)으로 내 본분을 지키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하였는데, 김동필이 대답하기를,
"저 무리는 바로 저하의 가노(家奴)이니, 곧 여우나 쥐와 같을 뿐입니다. 죽이거나 없애거나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하께서 ‘양립할 수 없는 형세이다.’고 하시면서 대비(對比)하는 것처럼 하시니, 저하께서 참으로 실언(失言)하신 것입니다."
하자, 왕세제가 말하기를,
"내가 과연 실언하였다. 그러나 지금 종사(宗社)가 장차 망하려고 하는데, 내가 능히 구제하지 못하여 위로는 조종(祖宗)과 선대왕(先大王) 및 자지(慈旨)를 저버렸고, 그 가운데 성명(聖明)을 저버렸으니, 내 죄가 더할 수 없이 크다. 지위를 내어 놓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하니, 김동필과 권익관이 반복하여 수천 마디 말로 개진(開陳)하고, 또 말하기를,
"신 등이 마땅히 물러가서 사부(師傅)·빈객(賓客)과 외정(外廷)의 여러 신하에게 말하여 토죄(討罪)를 청할 것입니다. 죄인이 복법(伏法)된 뒤에 저하께 어찌 불안한 단서가 있겠습니까?"
하자, 왕세제가 비로소 다음날 사부와 여러 요관(僚官)을 만나보고 자기 뜻을 행할 것을 허락하였다. 김동필 등이 물러가서 대신과 여러 재상에게 보고하니, 병조 참판 이태좌(李台佐)·부총관(副摠管) 조태억(趙泰億)이 금직(禁直)에 있다가 좌부승지(左副承旨) 이인복(李仁復), 동부승지 심탱(沈樘), 수찬(修撰) 심공(沈珙)과 더불어 맨 먼저 임금에게 청대(請對)하였고, 영의정 조태구(趙泰耉) 등은 다 궐문 밖에 나아가서 유문 입대(留門入對)를 청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19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註 636]작용(作俑) : 악례(惡例)를 만듦.
- [註 637]
대조(大朝) : 왕세자(王世子)가 섭정(攝政)하고 있을 때 임금을 부르는 말. 여기에서는 왕세제(王世弟)가 임금을 지칭하는 말임.- [註 638]
시선(視膳) : 왕세자(王世子)가 아침 저녁으로 임금의 수라상을 몸소 살피는 일. 여기에서는 왕세제의 경우임.○王世弟, 夜召入直宮官金東弼、權益寬及翊衛司官引接。 世弟謂宮官曰: "一二閹竪作俑, 欲除去吾身, 慈聖令余入告大朝, 余涕泣請於大朝, 始命拿推, 旋又收還。 玆事未發則已, 旣發之後, 不可不除君側之惡, 更爲陳達, 遽下不敢聞之敎。 余將出閤, 席藁俟罪辭位, 欲使講官, 知余去就耳。" 東弼、益寬言: "邸下之於大朝, 有君臣之分, 父子之義, 雖有一時未安之敎, 唯當起敬起孝而已。 至於閹竪, 古人稱爲家奴。 罪惡如是彰著, 不惟自內明白陳請, 以正典刑, 外廷亦當卽行懲討。 何足爲邸下難安之端乎? 大朝無儲嗣, 預定邸下爲國本, 兩宮慈孝無間, 豈可因狐鼠輩作俑, 遽爲辭位俟罪之擧? 且邸下之位, 卽儲副之位, 國本所繫, 元無辭避之道。 一或動搖, 國隨以亡。 邸下何不念及於此? 臣等有死而已, 不敢奉承。" 世弟曰: "此非一朝一夕之故, 積漸旣久。 吾旣告上前之後, 雖收拿推之命, 渠輩當縮伏俟罪, 而乃反略無忌憚, 揚揚出入於禁中, 至於今日, 問安、視膳, 亦因此輩而隔塞。 余若不避此位, 必遭渠輩毒手, 避位俟罪之外, 無他道理。 余非不知哭辭魂殿, 仍出私第, 此則未承聖敎, 不敢擅便耳。" 東弼等力爭之, 仍請招師傅、賓客, 明日徐議, 世弟不聽, 出示辭位疏草本, 東弼、益寬曰: "閹竪之禍人家國, 考之前史, 班班可見。 況此輩通天之惡, 如是彰露, 陳請正法, 固不可已, 而出閤席藁待罪辭位, 臣等死不敢奉承。 邸下一出閤, 則國本搖矣。 國本搖, 而未有不亡之國也。" 世弟曰: "今日之事, 此輩與余, 勢不兩立。 無寧釋去此位, 以先朝受封之爵, 守吾本分, 是吾願也。" 東弼對曰: "彼輩, 卽邸下家奴, 直是狐鼠耳。 殛之去之, 何難之有, 而邸下謂勢不兩立, 若比對然, 邸下誠失言矣。" 世弟曰: "余果失言。 然今宗社將亡, 余不能救, 上負祖宗、先大王曁慈旨, 中負聖明, 余罪莫大。 釋位之外, 無他道也。" 東弼與益寬, 反復開陳屢千言, 且言: "臣等當退言於師傅、賓客、外廷諸臣而請討。 罪人伏法之後, 邸下豈有不安之端乎?" 世弟始許。 明日與師傅諸僚相見, 乃行己志。 東弼等退而報大臣、諸宰, 兵曹參判李台佐、副摠管趙泰億在禁直, 與左副承旨李仁復、同副承旨沈樘、修撰沈珙, 首先請對于上, 領議政趙泰耉等, 咸詣闕外, 請留門入對。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19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註 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