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실록4권, 경종 1년 9월 29일 정사 1번째기사
1721년 청 강희(康熙) 60년
무과에 사서와 무경을 강하게 하다
예조에서 왕세제의 책례(冊禮)를 경축(慶祝)하여 별시(別試)를 열어 사람을 뽑을 것을 청하니,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이 차자(箚子)를 올려 흉년이 든 이유로써 정시(庭試)로 바꿀 것을 청하고, 또 말하기를,
"무과(武科)의 규식에 육량(六兩)438) 의 보수(步數)는 너무 멀므로 먼 데까지 쏘지 못한 자는 대부분 기회를 엿보아 차사(借射)를 하니, 과장(科場)을 엄중히 다스리는 방도가 못됩니다. 마땅히 보수(步數)는 줄이고 겸하여 사서(四書)와 무경(武經)을 강(講)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무과 시험에서 대사(代射)하는 폐단은 참으로 김창집의 말과 같았으나, 사서(四書)와 무경(武經)의 강(講)인들 유독 시관(試官)과 거자(擧子)가 서로 짜고 수작하는 버릇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다만 경중(京中)의 세력있는 자제(子弟)들의 요행(僥倖)한 계제만 만들어 줄 뿐이요, 먼 시골의 무력(武力)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낙방을 안겨주어 억울함을 일컫게 할 뿐이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173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註 438]육량(六兩) : 무과(武科)의 시취 과목 중에 무게 6냥이 되는 쇠화살을 발사하여 그 도달 거리로 서적을 정하는 시험. 80보를 표준으로 하고 1발이 목표에 미칠 때마다 7점을 주고 80보를 넘으면 매 5보에 1점씩 가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