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경종실록4권, 경종 1년 8월 23일 신사 4번째기사 1721년 청 강희(康熙) 60년

유봉휘의 상소로 인해 왕세제가 상소하여 세제 임명을 철회할 것을 청하다

왕세제(王世弟)가 상소하기를,

"신의 충정(衷情)은 전일의 상소에서 다 말하였지만 아직도 마음속에 쌓인 바가 있으니, 어떻게 주광(黈纊)376) 아래에 아뢰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 신은 불초(不肖)하고 무상(無狀)하여 붕천(崩天)377) 의 슬픔을 당하고서도 구차하게 시식(視息)을 이어오고 있으니 이미 매우 완명(頑冥)한 일인데, 세월은 흘러서 연제(練祭)도 벌써 지났으니 추모하고 호절(號絶)하면서 영영 세상에 살고 있을 생각마저 없는 터에 천만 몽상(夢想) 밖에 갑자기 신자(臣子)로선 감히 들을 수도 없는 전교가 내릴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신은 놀랍고 황공하여 어쩔 줄을 몰라서 차라리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지만 될 수가 없었습니다. 신의 타고난 성품은 용렬(庸劣)하여 백 가지에 한 가지도 잘한 일이 없으며, 저사(儲嗣)의 자리가 얼마나 중대한 것인데 갑자기 절대로 근사하지 않은 신의 몸에 내리게 되니, 이것이 어찌 다만 신의 마음만 조심스럽고 두려울 일이겠습니까? 아마 우리 성상께서도 적당하지 못한 사람에게 부탁함으로써 선대왕께서 간대(艱大)한 일을 물려주신 성의(盛意)를 저버릴까 두려워하실 뿐일 것입니다. 삼가 자성(慈聖)의 하교하신 바를 보건대 효종 대왕의 혈맥(血脈)과 선대왕의 골육이란 말씀이 계셨으니, 신은 실성 장호(失聲長號)하고 피눈물이 함께 쏟아짐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아! 비록 신이 몸을 선왕에게 받았다는 이유로써 특별히 조종조(祖宗朝)에서 이미 행했던 전례(典禮)를 시행하시려 하나, 생각해 보면 신 같은 부재(不才)로 어떻게 감히 본분(本分)에 어긋난 소임을 함부로 차지하겠습니까? 신의 질긴 목숨이 일찍이 선왕을 지하(地下)에 따라가지 못하고 오늘 도리어 이러한 교서를 받들게 되므로 하늘을 쳐다보고 통곡함이 밤낮이 없으니, 어찌 감히 말로만 꾸미고 거짓으로 사양하면서 이토록 번거롭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소원은 산과 들로 도망하여 여생을 마치고 싶습니다마는 이것도 또한 될 수가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신의 지극한 정성을 살피시어 빨리 성명(成命)을 거두어 주소서."

하였다. 상소가 들어간 이튿날에 답하기를,

"이미 전후의 비지(批旨) 속에 상세히 말했는데 무엇을 다시 더 타이르겠는가? 자성(慈聖)의 하교가 지극히 간절하시고, 일찍이 행했던 영전(令典)도 있으니, 공경스럽게 받들고 모름지기 연장(連章)을 올리지 말라."

하고, 승지로 하여금 가서 선교(宣敎)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170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註 376]
    주광(黈纊) : 갓에 매어 달아서 두 귀 옆에 늘어뜨린 노란 솜으로 만든 물건. 임금에게 함부로 아무 말이나 듣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니, 임금의 귀를 이른 말임.
  • [註 377]
    붕천(崩天) : 임금이 세상을 떠남.

○王世弟上疏曰:

臣之衷悃, 罄盡於前疏之中, 猶有所蘊於心者, 何不一陳於紸纊之下哉? 嗚呼! 以臣不肖無狀, 忍見崩天之慟, 苟延視息, 已極冥頑, 而歲月荏苒, 練事奄過, 追慕號絶, 永無生世之念, 不料千萬夢想之外, 遽下臣子所不敢聞之敎。 臣驚惶罔措, 寧欲鑽地以入而不可得也。 臣之賦性庸魯, 百無一能, 儲嗣之位, 是何等重大, 而忽加於萬萬不近之臣身? 奚但爲臣心之兢惕悚懍也? 抑恐我聖上付托匪人, 以孤先大王遺大投艱之盛意耳。 卽伏見慈聖所敎, 孝宗大王血脈、先大王骨肉之語, 臣不覺其失聲長號, 涕血交逬。 噫! 雖以臣托體先王, 特加以祖宗朝已行之典, 而顧臣不才, 何敢以冒叨匪分之任乎? 臣之頑喘, 旣不能從先王於地下, 今日反承此敎, 瞻天痛哭, 日以繼夜。 何敢飾辭虛讓, 而有此煩瀆乎? 唯願逃遁山野, 以終餘年, 而又不可得。 伏願察臣至懇, 亟收成命。

疏入翌日, 答曰: "已悉於前後批旨中矣, 夫復何喩? 慈聖下敎, 至切至懇, 曾有已行之令典, 欽承敬奉, 須勿連章焉。" 令承旨往宣。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170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