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의정 이건명이 수성의 방도를 진달하고 경연을 자주 열 것을 청하다
임금이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여러 재신(宰臣)들을 인견(引見)하였다. 좌의정(左議政) 이건명(李健命)이 아뢰기를,
"단천(端川)으로 진(鎭)을 옮긴 뒤로 부사(府使)는 ‘본부(本府)에 새로 군제(軍制)를 설치하여 각양(各樣)의 군정(軍丁)을 마땅히 3천 6백 명을 얻어야만 모양을 이룰 수 있는데, 군정이 부족하므로 유품(儒品) 【유생(儒生)인 품관(品官)이다.】 으로 충정(充定)하여 수를 채우려고 하니, 떠들썩하게 호소하여 이산(離散)할 것이 염려스럽습니다. 감사(監司) 윤헌주(尹憲柱)는 마땅히 한결같이 함흥(咸興)의 예에 의하여 규식(規式)을 정하여야 한다고 하는데, 남병영(南兵營) 소속인 친기위(親騎衞)의 호보(戶保) 외의 가솔(假率) 등 제반 색목(色目)은 본디 편오(偏伍)의 군사가 아니고 미포(米布)를 조금 거두어 병영(兵營)의 수용(需用)에 보충하는 데 지나지 않으니, 이제 만약 제반 색목을 수대로 본부에 환급(還給)하여 군액(軍額)에 충당한다면 민정(民丁)이 지탱하여 보전할 길이 있을 듯하고 본부(本府)도 독진(獨鎭)의 체제(體制)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청컨대 그 장계(狀啓)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하니, 임금이 허락하였다. 이건명이 또 지진(地震)·홍관(虹貫)의 재변(災變) 때문에 수성(修省)의 방도(方道)를 진달하고 자주 강연(講筵)을 열어서 유신(儒臣)을 인접(引接)하기를 청하였다. 병조 판서(兵曹判書) 최석항(崔錫恒)이 잇따라 조종조(祖宗朝)의 좋은 제도를 따라 혹은 연석(筵席)을 열고 혹은 소대(召對)하여 강론(講論)하고 자방(咨訪)105) 하며 더욱 경성(警省)을 더해 하늘의 견책(譴責)에 답할 것을 진달하니, 임금이 모두 받아들였다. 장령(掌令) 채응복(蔡膺福)이 전계(前啓)를 거듭 아뢰고 또 폐지한 제언(堤堰)에 경작(耕作)을 허락한 잘못을 논하여 그 명령을 정지하고 다시 신칙을 더하기를 청하였으나, 임금이 모두 따르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15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과학-지학(地學) / 농업(農業)
- [註 105]자방(咨訪) : 일을 물음.
○上引見大臣、備局諸宰。 左議政李健命奏曰: "端川移鎭之後, 府使則以爲: ‘本府新設軍制, 各樣軍丁, 當得三千六百名, 可成貌樣, 而軍丁不足, 欲以儒品, 【儒生品官。】 充定成數, 則紛紜呼訴, 離散可慮, 而監司尹憲柱則謂當一依咸興例定式。 南兵營所屬親騎衛戶保外, 假率等諸般色目, 元非編伍之軍, 不過略收米布, 以補營需。 今若以諸般色目, 沒數還給本府, 以充軍額, 則民丁似有支保之道, 本府可成獨鎭之制。’ 請依其狀施行。" 上許之。 健命又以地震、虹貫之災, 陳達修省之道, 請頻開講筵, 引接儒臣。 兵曹判書崔錫恒, 繼陳遵祖宗美制, 或開筵或召對, 講論咨訪, 益加警省, 以答天譴, 上皆納之。 掌令蔡膺福申前啓, 且論廢堰許耕之失, 請還寢其命, 更加申飭, 上竝不從。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15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과학-지학(地學) / 농업(農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