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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65권, 숙종 46년 6월 8일 계묘 1번째기사 1720년 청 강희(康熙) 59년

임금이 승하하다

임금이 승하(昇遐)하였다. 시약청(侍藥廳)의 세 제조(提調)와 사관(史官) 등이 어제 저녁부터 입시(入侍)하여 밤을 새우고 기둥 밖으로 물러나왔는데, 조금 후에 날이 밝았다. 도제조(都提調) 이이명(李頤命)이 환시(宦侍)로 하여금 중궁(中宮)께 아뢰기를,

"날이 이미 밝았으니, 신 등이 잠시 물러갔다가 문안(問安)드릴까 합니다."

하였다. 이윽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오자 사관(史官)이 뒤따라 나왔는데, 막 시약청에 이르자 환관(宦官)이 급히 나와 내교(內敎)를 전하기를,

"우선 문안드리지 말고 빨리 들어오라."

하였다. 이이명 등이 사관과 함께 황급히 달려들어가니, 연잉군(延礽君)이이명을 맞으며 말하기를,

"드셨던 약물(藥物)을 모조리 토해 내셨습니다."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와내(臥內)097) 로 들어가니, 임금이 목구멍 속에 담(痰) 끓는 소리가 크게 났다. 환시(宦侍)가 큰소리로 조정(朝廷)·승정원(承政院)·옥당(玉堂)이 문안드린다고 아뢰었으나, 임금이 알아듣지 못하였다. 도승지 윤헌주(尹憲柱)가 세자에게 고하기를,

"감군(監軍)098) 의 단자(單子)는 성상의 환후가 이와 같으시니 낙점(落點)할 수가 없겠습니다. 어제 낙점한 것으로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세자가 허락하였다. 연잉군이 내전(內殿)으로부터 나와 말하기를,

"다만 부원군(府院君)만 남아 있고 도제조 이하의 관원들은 조금 물러가 있으라."

하였다. 세 제조와 사관이 물러나 기둥 밖에 엎드려 있었는데, 이때 궁녀(宮女)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고 환시들도 눈물을 흘리며 몹시 바쁘게 다녔다. 조금 후에 부원군 김주신(金柱臣)이 나와 기둥 밖에 이르러 이이명에게 말하기를,

"내전(內殿)께서 그래도 만에 하나 성상의 병세가 회복되기를 기대하시므로, 방금 다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뜻으로 주달(奏達)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윽고 내시(內侍)가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도로 들어가니, 중궁(中宮)이 연잉군으로 하여금 전교(傳敎)하게 하기를,

"일찍이 듣건대 ‘명성 왕후(明聖王后)께서 병환이 나셨을 때는 단지 가슴 앞에 한 점(點)의 미지근한 온기(溫氣)가 있을 뿐이었는데도 능히 회복을 하셨다.’ 한다. 성상의 병환이 비록 위중하기는 하지만 가슴과 배에 모두 온기(溫氣)가 있으니, 약물(藥物)을 신중히 써서 기필코 회복을 기약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이명이 대답하기를,

"만일 할 수 있는 방도만 있다면 감히 정성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중궁이 또 연잉군으로 하여금 나와 전교하게 하기를,

"금평위(錦平尉) 박필성(朴弼成)·동평위(東平尉) 정재륜(鄭載崙)·임창군(臨昌君) 이혼(李焜)·어영 대장(御營大將) 김석연(金錫衍) 【바로 주상의 내구(內舅)이다.】 과 시임(時任)·원임(原任) 대신(大臣)들을 모두 동궁(東宮)에게 품하여 입시(入侍)하게 하라."

하고, 또 연잉군을 시켜서 이이명에게 묻기를,

"원명귀(元命龜) 【숙경 공주(淑敬公主)의 아들이다.】 ·정건일(鄭健一) 【숙휘 공주(淑徽公主)의 아들이다.】 ·김도협(金道浹) 【김석연(金錫衍)의 아들이다.】 등을 모조리 같이 불러 들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이이명이 대답하기를,

"너무 광범위합니다."

하였다. 연잉군이 들어가 아뢰고, 다시 나와 심정보(沈廷輔) 【숙명 공주(淑明公主)의 아들이다.】 를 부르라고 명하였다. 또 어유귀(魚有龜)·김동필(金東弼) 두 사람을 불러 들이라고 명하니, 이이명이 말하기를,

"이런 때에 어찌하여 반드시 인척을 다 불러들이겠습니까? 부디 이런 뜻으로 품주(稟奏)하소서."

하였다. 연잉군이 들어가 아뢰고 나와 내교(內敎)를 전하기를,

"진달한 바가 옳다."

하였다. 이에 시임·원임의 여러 대신이 다 같이 와내(臥內)로 들어왔는데, 이이명이 어탑(御榻) 아래로 나아가 큰 소리로 아뢰기를,

"시임·원임 대신이 들어왔습니다."

하고, 영의정(領議政) 김창집(金昌集)이 또 큰소리로 아뢰기를,

"소신(小臣) 창집 등이 들어왔습니다.

하였으나, 임금이 알아듣지 못하였다. 연잉군이 어수(御手)를 붙들고 울면서 말하기를,

"손가락이 이미 다 푸른 색으로 변했습니다."

하였다. 의관(醫官)이 나아가 콧마루를 살피고, 이어서 진맥(診脈)을 한 뒤 물러나와 말하기를,

"오른쪽 맥(脈)이 먼저 끊어졌고, 왼쪽의 맥은 바야흐로 들떠 흔들리며 안정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였다. 중궁이 환시를 시켜서 전교하기를,

"종전에 약(藥)을 쓰는 길이 잘못되었기에 이미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런 때에 약을 쓰기란 더욱 어려우니, 반드시 상세히 살펴서 쓰라."

하니, 이이명이 울면서 대답하기를,

"신 등이 보호(保護)하는 처지에 있으니, 비록 하교(下敎)가 없으시더라도 어찌 십분 상세히 살피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본래 약리(藥理)에 어두운 까닭으로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죽어도 여죄(餘罪)가 있습니다. 지금 약을 쓰는 길이 여러 가지가 있기에 바야흐로 세심하고 신중히 골라쓰고는 있으나 그것이 합당한지 합당하지 않은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조금 후에 임창군(臨昌君) 혼(焜)·동평위(東平尉) 정재륜(鄭載崙)·금평위(錦平尉) 박필성(朴弼成)·어영 대장(御營大將) 김석연(金錫衍)·원주 목사(原州牧使) 심정보(沈廷輔)가 들어왔다. 이이명연잉군에게 묻기를,

"지난번 시약청을 설치할 때 빈전(嬪殿)의 일로 하교한 바가 있었는데, 선정전(宣政殿)창덕궁(昌德宮)에 있어서 불편하여 시행하기 어려운 단서가 있습니다. 그때 진달하고자 하였으나 차마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연잉군이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유교(遺敎)이니, 어찌 차마 어기겠는가?"

하였다. 이때 여러 신하들이 모두 조용히 탑전(榻前)에 엎드려 있었는데, 임금이 기식(氣息)과 담향(痰響)이 점차 가늘어지다가 갑자기 크게 토한 뒤 드디어 승하(昇遐)하였다. 이때가 바로 진정(辰正)099) 2각(二刻)100) 이었는데, 북쪽 협실(夾室) 안에서 일시에 울부짖고 곡(哭)하며 문을 밀치고 나오려 하다가 연잉군이 문을 막고 금하자 환시가 수족(手足)을 정돈하였다. 중궁(中宮)이 연잉군을 시켜 전교(傳敎)하기를,

"초상(初喪)에 있어서의 모든 일들을 중궁이 주관하라는 뜻으로 직접 성상의 하교를 받았다. 이제 마땅히 이것에 의거하여 시행할 것이니, 대신(大臣)은 모름지기 이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니, 김창집이 부복(俯伏)하여 말하기를,

"삼가 마땅히 전교를 받들겠습니다."

하였다. 이때 밖에 있던 여러 승지와 종척(宗戚)들이 모두 들어왔다. 대신(大臣) 이하가 흐느껴 울면서 허둥지둥 어쩔 줄을 몰랐다. 《오례의(五禮儀)》와 등록(謄錄)을 들추어 열람하면서 임금이 승하하신 시각이 꽤 오래 되었는데도 곧바로 속광(屬纊)101) 을 하지 않았다. 승지 한중희(韓重熙)갑인년102) 의 일기(日記)를 예조 판서(禮曹判書) 이관명(李觀命)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그때는 장선징(張善瀓)이 예조 판서로서 속광을 행하였으니, 오늘은 그대가 마땅히 속광하여야 합니다."

하니, 이관명이 말하기를,

"장선징은 바로 척속(戚屬)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불가하다."

하였다. 여러 의론이 박필성(朴弼成)혼(焜)으로 하여금 하게 하려고 하였는데, 결정이 나지 않았다. 우의정(右議政) 이건명(李健命)이 손에 의주(儀註)를 들고 방(房)으로 들어와 말하기를,

"속광의 절차는 내척(內戚)이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이니, 심정보(沈廷輔)로 하여금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이때 심정보가 대궐 밖으로 나가서 곧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찾느라고 어수선한 사이에 내시(內侍)가 이미 속광하였다. 중궁이 연잉군을 시켜 전교하기를,

"성상께서 평일에 매양 습렴(襲殮)103) 등의 여러 가지 절차를 기필코 정제(整齊)하게 하라는 뜻으로 누누이 하교하셨다. 대신(大臣)들은 부디 이 뜻을 깊이 체념하여 큰 일은 내간(內間)에 품하고 세세한 절차는 짐작하여 시행하되, 반드시 꼭 정성을 쏟도록 하라."

하니, 김창집이건명이 대답하기를,

"감히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대신(大臣)이 내시 두 사람으로 하여금 호복(呼復)104) 을 하게 하니, 내시 두 사람이 함(函)에다 강사 곤룡포(絳紗袞龍袍)105) 를 담아 대궐 지붕으로 올라가 세 번 주상의 존호(尊號)를 불렀다. 내시가 남쪽 협실(夾室)에서 왕세자(王世子)를 부축하고 나와 입(笠)과 사포(紗袍)를 벗기고 머리를 풀고 거애(擧哀)106) 하였다. 연잉군이 옷을 벗고 머리를 풀고 기둥 밖에서 거애하였다. 대신 이하가 침문(寢門) 밖에서 부복(俯伏)해 거애하였는데, 뒤죽박죽으로 질서가 없었다. 곡이 끝나자 김창집이 주서(注書)로 하여금 ‘상대점(上大漸)’이란 세 글자를 써서 외정(外庭)에 내다 보이게 하였다. 이때 비가 퍼붓듯 크게 쏟아졌다. 백관(百官)들이 세 곳에 나뉘어 모여 있었는데, 주서가 두루 돌아다니며 들어보이니, 백관들이 모두 곡하였다. 대신이 마침내 외정으로 물러나와 옷을 바꿔입고 백관을 인솔하여 거애한 뒤 숭정전(崇政殿)의 동쪽 월랑(月廊)에 모였다. 승정원(承政院)·옥당(玉堂)·춘방(春坊)107) ·익위사(翊衞司)108) 등은 흥태문(興泰門) 밖에 모였다.


  • 【태백산사고본】 73책 65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10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註 097]
    와내(臥內) : 침실(寢室).
  • [註 098]
    감군(監軍) : 밤중에 도성(都城) 안팎을 돌면서 군사의 순찰을 검독(檢督)하던 임시 벼슬. 날마다 병조(兵曹)에서 병조와 도총부(都摠府)의 낭청(郞廳)과 모든 선전관(宣傳官)의 이름을 써서 임금께 올리고 낙점(落點) 받은 두 사람은 신시(申時)에 대궐 안에 들어가서 감군패(監軍牌)를 받아 가지고 각기 맡은 구역을 순검(巡檢)하였음.
  • [註 099]
    진정(辰正) : 오전 여덟시.
  • [註 100]
    2각(二刻) : 30분.
  • [註 101]
    속광(屬纊) : 임종(臨終) 때 솜을 코 밑에 대어 숨이 지지 않았나 알아보는 일. 전(轉)하여 임종(臨終)을 달리 이르는 말.
  • [註 102]
    갑인년 : 1674 숙종 즉위년.
  • [註 103]
    습렴(襲殮) :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다음, 옷을 입히고 염포(殮布)로 묶는 일. 염습(殮襲).
  • [註 104]
    호복(呼復) : 죽은 망인(亡人)의 혼(魂)이 되돌아 오기를 염원하는 의미에서 혼을 부르는 것을 말함.
  • [註 105]
    강사 곤룡포(絳紗袞龍袍) : 임금이 조하(朝賀) 때에 입던 붉은 빛깔의 예복(禮服). 모양은 관복(官服)과 같으나, 깃·도련·소맷부리와 폐슬(蔽膝)의 가에 검은 선을 두름.
  • [註 106]
    거애(擧哀) : 발상(發喪)을 말함.
  • [註 107]
    춘방(春坊) : 세자 시강원(世子侍講院).
  • [註 108]
    익위사(翊衞司) : 세자 익위사(世子翊衞司).

○癸卯/上昇遐。 侍藥廳三提調及史官等, 自昨夕入侍徹夜, 退出楹外, 已而天明。 都提調李頣命, 使宦侍, 啓于中宮曰: "天已明矣, 臣等將暫退問安矣。" 仍趨出, 史官隨之。 纔到侍藥廳, 宦官急出傳內敎曰: "姑勿問安, 卽速入來。" 頣命等, 與史官顚倒趨入, 延礽君迎謂頣命曰: "所進藥物, 盡爲吐出矣。" 諸臣入臥內, 上喉中痰響洪大。 宦侍高聲奏朝廷、政院、玉堂問安, 上不能省聽。 都承旨尹憲柱告世子曰: "監軍單子, 上候如此, 不能落點。 以昨日落點, 仍爲施行何如?" 世子許之。 延礽君自內出曰: "只留府院君, 而都提調以下少退。" 三提調及史官退伏楹外, 是時, 宮女輩號泣之聲徹外, 宦侍輩亦涕泣奔走。 頃之, 府院君金柱臣出至楹外, 謂頣命曰: "內殿猶望上候之萬一回蘇, 故纔以無復可爲之意, 奏達矣。" 已而內侍招諸臣還入, 中宮使延礽君傳敎曰: "曾聞明聖王后患候時, 只有胸前一點微溫, 而能得回陽云。 上候雖重, 胸腹俱有溫氣, 愼用藥物, 期於回陽也。" 頣命對曰: "如有可爲之道, 敢不盡誠乎?" 中宮又使延礽君, 出傳敎: "錦平尉 朴弼成東平尉 鄭載崙臨昌君 、御營大將金錫衍 【卽上內舅。】 及時任、原任大臣, 竝令稟于東宮, 而使之入侍。" 又使延礽君頣命曰: "元命龜 【淑敬公主之子。】 鄭健一 【淑徽公主之子。】 金道浹, 【錫衍之子。】 一倂招入何如?" 頣命對以太廣。 延礽君入奏, 復出命召沈廷輔 【淑明公主之子。】 又命招入魚有龜金東弼兩人, 頣命曰: "此時何必盡招姻婭乎? 須以此意稟奏。" 延礽君入奏, 而出傳內敎曰: "所達是矣。" 於是, 時任、原任諸大臣, 皆同入臥內。 頣命就御榻下高聲奏曰: "時任、原任大臣入來矣。" 領議政金昌集, 又高聲奏曰: "小臣昌集等入來矣。" 上不能聽。 延礽君捧御手而泣曰: "手指已盡靑矣。" 醫官進按鼻梁, 仍診脈而退曰: "右脈先絶, 左脈方浮搖不定矣。" 中宮使宦侍, 傳敎曰: "從前藥路差失, 已至此境。 此時用藥尤難, 必詳審用之。" 頣命涕泣對曰: "臣等在保護之地, 雖無下敎, 豈不欲十分詳審, 而素昧藥理, 至於此境, 死有餘罪。 卽今藥路多岐, 方審愼擇用, 而未知其當否矣。" 已而, 臨昌君 東平尉 鄭載崙錦平尉 朴弼成、御營大將金鍚衍原州牧使沈廷輔入來。 頣命延礽君曰: "向者侍藥設廳日, 以殯殿事, 有所下敎, 而宣政殿昌德宮, 有掣肘難行之端。 其時欲達而不忍仰陳矣。" 延礽君曰: "此是遺敎, 何忍違之乎?" 時, 諸臣俱靜伏榻前。 上氣息、痰響漸微, 忽大吐, 遂昇遐。 時卽辰正二刻。 北夾室內一時叫哭, 欲排戶出來, 延礽君拒門禁止, 而宦侍整手足。 中宮使延礽君傳敎曰: "初喪凡事, 中宮主管之意, 親承聖敎矣。 今當依此行之, 大臣須知此意。" 昌集俯伏曰: "謹當奉敎矣。" 時, 在外諸承旨、宗戚, 皆入來。 大臣以下涕泣蒼黃, 莫知所爲, 披閱《五禮儀》及謄錄。 上昇遐時刻頗久, 而不卽行屬纊。 承旨韓重熙, 以甲寅日記, 示禮曹判書李觀命曰: "其時張善澂, 以禮判行屬纊。 今日君當屬纊矣。" 觀命曰: "張善澂乃戚屬故也, 吾則不可。" 諸議, 欲使朴弼成行之, 未決。 右議政李健命, 手持儀註, 入房中曰: "屬纊之節, 內戚當行之, 可使沈廷輔行之。" 時, 廷輔出闕外, 不卽入來, 尋覓紛鬧之際, 內侍已屬纊矣。 中宮使延礽君傳敎曰: "聖上平日, 每以襲歛諸節, 務使整齊之意, 縷縷下敎矣。 大臣須體此意, 大事則稟于內間, 細節則斟酌行之, 而必須致精。" 昌集健命對曰: "敢不盡心乎?" 大臣使內侍二人, 呼復, 內侍二人, 以函盛絳紗袞龍袍, 升殿屋, 三呼上尊號。 內侍扶出王世子於南夾室, 去笠及紗袍, 散髮擧哀, 延礽君釋服散髮, 擧哀於楹外。 大臣以下俯伏擧哀於寢門外, 而雜難無序。 哭訖, 昌集使注書, 書上大漸三字, 出示外庭。 時, 大雨如注。 百官分聚三處, 注書遍走擧示, 百官皆哭。 大臣遂退外庭易服, 率百官擧哀, 會于崇政殿東月廊, 政院、玉堂、春坊、翊衛司, 會于興泰門外。


  • 【태백산사고본】 73책 65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10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