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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64권, 숙종 45년 12월 20일 무오 1번째기사 1719년 청 강희(康熙) 58년

춘첩자 문제·방납의 폐해·문사의 승전 등에 관한 세자와 대신의 논의

세자가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여러 재신(宰臣)들을 인접(引接)하였다. 우의정(右議政) 이건명(李健命)이 말하기를,

"일찍이 전에는 춘첩자(春帖子)455) 의 영상시(迎祥詩)를 지어 바칠 때 대제학(大提學)이 패초(牌招)받아 대궐에 나아가 운(韻)을 내면 뽑힌 자들도 대궐에 나아가 지어서 바쳤는데, 근래에는 모두 집에서 지어서 보낸다 하니, 이 또한 태만한 습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번부터 춘첩자는 마땅히 궐중(闕中)에 나아가서 지어 바치게 하소서."

하니, 세자가 옳게 여겼다. 지돈녕(知敦寧) 민진원(閔鎭遠)이 말하기를,

"근래에 기강(紀綱)이 해이해져서 각 고을의 공부(貢賦)·군포(軍布) 등의 물건을 모리배(牟利輩)들이 중간에서 모두 방납(防納)하여 외방(外方)에서 받아 내고는 경중(京中)에 도착하면 곧 상납(上納)하지 않으므로 각 아문(衙門)의 용도(用度)가 구간(苟簡)하니, 일이 지극히 한심합니다. 이후로 방납하는 무리를 포청(捕廳)에 이송(移送)시켜 엄중하게 다스려 독촉해서 받아들이되, 기한 안에 바치지 않는 자는 바로 강도(强盜)와 다름없으니, 형조(刑曹)에 보내어 부대시 참형(不待時斬刑)456) 에 처하소서. 그리고 수령으로서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자도 또한 마땅히 나문(拿問)하소서."

하자, 영의정(領議政) 김창집(金昌集)이 말하기를,

"근래에 방납의 폐해(弊害)가 한정이 없으나, 부대시 참형에 처하는 데 이르러서는 어떨는지 모르겠습니다. 포청으로 하여금 장형(杖刑)으로 다스려 죄를 징계해도 또한 뒷날의 폐단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자, 민진원이 말하기를,

"국가(國家)의 재물 4, 5천 금을 중간에서 도둑질해 먹은 자는 곧 도둑 중에서도 큰 도둑이니, 부대시 참형에 처하는 것이 지나친 줄을 모르겠습니다."

하였는데, 이건명이 말하기를,

"이러한 무리는 장물(贓物)을 계산하여 많을 경우 비록 사율(死律)에 이르더라도 또한 불쌍히 여길 것이 못 되나, 곧바로 부대시 참형으로 감단(勘斷)하는 것은 끝내 너무 지나친 듯합니다."

하니, 세자가 장물을 계산하여 논단(論斷)하게 하였다. 병조 판서(兵曹判書) 이만성(李晩成)이 말하기를,

"무사(武士)로서 승전(承傳)하여 오랫동안 정체(停滯)된 자가 근년에 상언(上言)하여 억울함을 호소하였는데, 병조(兵曹)는 과궐(窠闕)이 매우 적기 때문에 미처 은혜를 입지 못하여 억울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양서(兩西)의 둔별장(屯別將)·산성 별장(山城別將), 진도(津渡)의 다섯 군데 별장 등의 직임(職任)은 그래도 전혀 은혜를 입지 못한 것보다 낫다고 하므로, 일찍이 이로써 정탈(定奪)하였으나 아직 절목(節目)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청컨대 이제부터 시작해서 절목을 만들어 달하(達下)해서 거행하게 하소서."

하니, 세자가 옳게 여겼다. 이만성이 또 말하기를,

"내삼청(內三廳)의 말사(末仕)를 옛날에는 이조에 보내어 승륙(陞六)시켰는데, 근래에 대신(大臣)이 ‘이조(吏曹)에서 승륙시킨 후 대부분 그대로 작산(作散)457) 하니, 억울하게 여긴다.’ 하고, 다시 이조에 보내지 않는 것으로 품정(稟定)하였습니다. 대저 수문장(守門將) 등속은 감찰(監察) 등의 벼슬을 할 수 없어서 쉽게 작산(作散)되지만, 선전관(宣傳官) 등속은 감찰·수령(守令) 등의 벼슬을 삼을 수 있는데도 이조에서 저지받는다 하여 도리어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이후로는 선전관과 부장의 말사(末仕)는, 청컨대 전례에 의거하여 이조에 보내고 훈련원 수문장은 병조에 보내소서."

하니, 세자가 옳게 여겼다. 지평(持平) 김민택(金民澤)이 전에 진달(陳達)했던 것을 거듭 아뢰었으나, 세자가 따르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72책 64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91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재정-공물(貢物) / 군사-군정(軍政) / 사법-탄핵(彈劾) / 인사-관리(管理)

  • [註 455]
    춘첩자(春帖子) : 입춘(立春) 날 대궐 안 전각(殿閣)의 기둥에 써 붙이는 주련(柱聯). 제술관(製述官)에게 명하여 하례(賀禮)하는 시를 지어 올리게 하고, 연꽃과 연잎의 무늬를 그린 종이에 써서 붙였음.
  • [註 456]
    부대시 참형(不待時斬刑) : 시기를 기다리지 않고 참형에 처함. 사형을 집행할 때 가을철 추분(秋分)까지 기다려는 것이 원칙이나, 십악 대죄(十惡大罪) 등 중죄(重罪)를 범한 죄인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사형을 집행하였음.
  • [註 457]
    작산(作散) : 산관(散官)을 삼음.

○戊午/世子引接大臣、備局諸宰。 右議政李健命曰: "曾前春帖子迎祥詩製進時, 大提學承牌詣闕出韻, 則被抄者亦進闕中製述矣。 近來則皆在家製送云, 此亦出於怠慢之習。 自今番春帖, 宜令竝詣闕中製進矣。" 世子可之。 知敦寧閔鎭遠曰: "近來紀綱解弛, 各邑貢賦、軍布等物, 中間牟利輩, 盡爲防納, 受出於外方, 而來到京中, 不卽上納, 故各衙門用度苟簡, 事極寒心。 此後防納之徒, 移送捕廳, 嚴治督捧, 而限內未納者, 便是强盜, 送于刑曹, 不待時處斬, 守令之知而不知者, 亦宜拿問矣。" 領議政金昌集曰: "近來防納之弊, 罔有紀極, 而至於不待時處斬, 未知如何。 令捕廳, 亂杖懲罪, 亦可杜後弊矣。" 鎭遠曰: "國家財物四五千金, 中間偸食者, 卽盜之大者, 不待時處斬, 未知其過矣。" 健命曰: "此類計贓多者, 雖至死律, 亦不足恤, 而直勘以不待時處斬, 終似太遽。" 世子令計贓論斷。 兵曹判書李晩成言: "武士之有承傳而久滯者, 年前上言訢冤, 而兵曹窠闕甚少, 故未盡霑恩, 以爲抑鬱矣。 兩西屯別將、山城別將、津渡五處別將等任, 猶勝於全未蒙恩云, 故曾以此定奪, 而尙未定節目。 請自今爲始, 作爲節目, 達下擧行。" 世子可之。 晩成又言: "內三廳末仕, 昔則送于吏曹陞六矣, 近來大臣以爲: ‘吏曹陞六後, 仍多作散爲冤’, 稟定不復送吏曹, 而大抵守門將之屬, 不得爲監察等職, 固易作散, 而宣傳官之類, 可爲監察、守令等職, 以見阻吏曹, 反爲稱冤。 此後宣傳官、部將末仕, 請依前送于吏曹, 訓鍊院守門將, 送于兵曹。" 世子可之。 持平金民澤申前達, 世子不從。


  • 【태백산사고본】 72책 64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91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재정-공물(貢物) / 군사-군정(軍政) / 사법-탄핵(彈劾)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