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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61권, 숙종 44년 4월 8일 병술 2번째기사 1718년 청 강희(康熙) 57년

임금이 소현 세자빈 강씨의 위호를 회복시키다

임금이 소현 세자빈(昭顯世子嬪) 강씨(姜氏)의 위호(位號)를 회복하게 하였다. 임금이 이미 강빈(姜嬪)의 옥사를 가지고 대신(大臣)과 2품 이상에게 의논하게 하였는데 모두 그 일이 원통하다고 하였다. 또 외방에 있는 대신들에게 물으니, 좌상 권상하(權尙夏)도 자신의 스승인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이 효종[孝廟]에게 아뢰었던 말을 인용하여 대답하였다. 임금이 드디어 하교하기를,

"내가 강빈의 옥사에 대해 마음속으로 슬퍼해 온 지가 오래 되었다. 작년에 조목별로 열거하여 개서(改書)해서 하교하였던 것은 그 단서를 열기 위해서였다. 금일에 이르러 경연에서 하교하여 자세히 말하였고, 친히 지은 세 절구(絶句)를 잇따라 내어 보여 조정에 있는 신하들로 하여금 나의 뜻을 다 알게 하였으니, 또한 미진한 남은 회포가 없다. 아! 하교 가운데 ‘은미한 뜻[微意]’이라는 두 글자는 우리 성조(聖祖)께서 측은하고 불쌍하게 여기시던 마음을 일찍이 잊은 적이 없었으므로 내가 ‘우러러 알고 있다[仰認]’라고 한 것이다. 아아! 원통함을 알고서도 그 억울함을 씻어주지 않는다면 이것이 옳은 일이겠는가? 나의 뜻이 먼저 정해지자 공의(公議)도 이와 대동(大同)하니, 신원(伸冤)하는 은전과 차례로 응당 행하여야 할 일을 빨리 유사(有司)로 하여금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리하여 예조께서 계청하기를,

"시호(諡號)와 길일(吉日)을 선택하고 예장 도감(禮葬都監)과 묘소 도감(墓所都監)의 당상관·낭관을 차출하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초상 때와 다른 점이 있다고 하여 묘소 도감을 봉묘 도감(封墓都監)이라 고치고, ‘예장(禮葬)’이라는 두 글자를 고쳐 복위 선시 도감(復位宣諡都監)이라 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9책 61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14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사법-행형(行刑)

○命復昭顯世子嬪 姜氏位號。 上旣以姜嬪事, 議于大臣二品以上, 皆言其冤。 又問於在外大臣, 左相權尙夏, 亦援其師文正公 宋時烈, 陳白於孝廟者爲對。 上遂下敎曰:

予於獄, 隱傷于中者久矣。 昨年擧條, 改書以下, 所以發其端也。 及至今日, 筵敎備悉, 所製三絶, 繼又出示, 使在廷之臣, 咸知予意, 則亦無餘懷之未盡者。 噫! 下敎中微意二字, 我聖祖, 未嘗忘惻怛之念, 有以仰認之謂也。 噫! 知其冤, 而不雪其枉, 可乎? 予志先定, 公議大同。 伸理之典, 自是次第應行之事, 亟令有司擧行。

於是, 禮曹啓請推擇議謚吉日, 差出禮葬及墓所都監堂郞, 上以與初喪有異, 命改墓所爲封墓, 禮葬二字, 改爲復位宣謚都監。


  • 【태백산사고본】 69책 61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14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