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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61권, 숙종 44년 2월 24일 계묘 2번째기사 1718년 청 강희(康熙) 57년

세자가 빈궁의 행실을 써서 정원에 내린 내용

예장 도감(禮葬都監)에서 빈궁(嬪宮)의 지문(誌文)을 시기보다 앞서 찬진(撰進)해야 하였는데, 경신년055)신사년056) 의궤에 모두 임금이 행록(行錄)을 써서 내렸던 일이 있었다고 계품(啓稟)하니, 세자가 드디어 빈궁의 행실(行實)을 써서 정원에 내렸다. 그 글에 이르기를,

"빈(嬪)의 성(姓)은 심씨(沈氏)인데, 가계(家系)는 청송(靑松)이다.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는 개국(開國)의 원신(元臣)으로 바로 13대 선조이다. 영의정 안효공(安孝公) 청천 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은 곧 청성의 소출로 바로 12대 선조이다. 영의정 충혜공(忠惠公) 심연원(沈連源)은 바로 8대 선조이고, 영의정 익효공(翼孝公) 심강(沈鋼)은 곧 충혜공의 소출로 7대 선조이다. 영의정 충정공(忠靖公) 심열(沈悅)은 5대 선조이다. 홍문관 교리 심희세(沈熙世)는 고조부인데, 청양군(靑陽君) 심의겸(沈義謙)의 손자로서 충정공의 후사가 되었다. 관찰사 심권(沈權)은 증조부이고, 의금부 도사 심봉서(沈鳳瑞)는 목사 심추(沈樞)의 아들로서 관찰사의 후사가 되었다. 아비는 첨정(僉正) 심호(沈浩)이고, 어미는 고령 박씨(高靈朴氏)인데, 아비는 군수 박빈(朴鑌)이고, 조부는 이조 판서 증 영의정 문효공(文孝公) 박장원(朴長遠)이고, 증조부는 직장(直長) 증 이조 판서 박훤(朴烜)이다.

을축년057) 에 관찰사가 가족을 거느리고 양근(楊根)에 있는 선영 아래에 가서 살았는데, 그해 8월 충정공의 무덤에서부터 거주하던 동리 밖에 이르기까지 밤마다 연달아 빛이 있어 십리 정도까지 뻗쳤으므로 동리가 대낮처럼 환히 밝아서 산 위의 새와 짐승을 모두 볼 수가 있었다. 그 다음날 어떤 중이 용문산(龍文山)에서 와서 말하기를, ‘이 곳에 날마다 연달아 서기(瑞氣)가 있으니, 어떤 이상한 일이 있을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였었다. 이달부터 그 어미가 비로소 임신하여 문득 연달아 꿈을 꾸었는데, 달빛이 환하게 비추고 오색의 상서로운 구름이 현란하여 마치 비단과 같았고 또 여러 마리 봉황새가 쌍쌍이 하늘로 날아 올랐었다.

병인년058) 5월 21일에 이르러 회현동(會賢洞) 우사(寓舍)에서 탄생하였는데, 어려서부터 빼어나게 슬기롭고 의젓하고 유순하였으며 아직 첫돌을 지나기 전에 능히 말을 하였다. 비록 유희(游嬉)하는 일이라도 반드시 법도가 있었고 일찍이 섬돌 아래로 내려와 마당을 밟지 아니하였다. 겨우 3세에 조모 정씨(鄭氏)를 공양하는데 정성과 효도가 돈독하고 지극하여서 능히 어른[長者]의 기색을 살필 줄을 알았고, 뜻보다 먼저 받들어 모셨고, 기뻐하거나 노여워하는 것을 함부로 드러내지 아니하였고, 언어는 반드시 단정하고 조심스럽게 하였다. 모든 물건을 처음 보면 희귀한 것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어른에게 먼저 바쳤고, 어른이 먹으라고 명하지 아니한 음식은 먹지 않았다. 매양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부모가 계신 곳에서부터 증조모가 계신 곳과 조모가 계신 곳까지 문안한 다음에 비로소 물러났다. 5세 때에 관찰사가 여름철을 당하여 술에 취하여 자면서 그로 하여금 부채를 잡고 파리를 쫓게 하였더니, 명령을 따라서 오로지 부지런히 부쳐 저녁 때가 되도록 끝내 감히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가 깨기를 기다렸으므로 관찰사가 매우 기특하게 여기고 사랑하여 항상 가인(家人)들에게 이것을 말하였다고 한다. 천성이 간소한 것을 좋아하여 남이 좋고 호화로운 옷을 입는 것을 보고 일찍이 흠선하거나 부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비록 호화롭고 아름다운 물건을 얻더라도 반드시 여러 아우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담담하게 물욕(物欲)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구차스레 얻으려고 하는 마음도 없었다. 오로지 어버이를 사랑하고 친족에게 화목하게 하는 데에만 돈독하였었는데, 이것은 모두 타고난 것이요 억지로 꾸며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11세에 처음으로 간택(揀擇)에 참여하였다가 귀가한 뒤에 문득 비감한 말을 하고 손수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집안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먹였다. 두 번째 간택하던 때에 이르러서는 종일토록 눈물을 흘렸는데, 부모 곁을 길이 떠나는 것을 슬퍼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마침 본집을 피하여 떠나게 됨에 사묘(私廟)에 하직하지 못함을 더욱 한스럽게 여겨 부모에게 청하여 가서 하직하려 했으나 집안이 부정(不淨)하였기 때문에 끝내 그 소원대로 할 수가 없었다. 별궁(別宮)에 들어와 거처하게 되자 하루 종일 단정하게 앉아서 잠시라도 함부로 기대거나 나태한 모양을 짓지 아니하였고, 시녀들이 혹시 유관(遊觀)하기를 청하더라도 선선히 따르지 않았으며, 《소학(小學)》을 가져다가 책상 위에 두고 항상 애독하였다. 대례(大禮)하던 날에 이르러 복통이 갑자기 심하여 부모와 친족들이 모두 황급하여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하였으나 문득 말하기를, ‘어찌 제 병 때문에 대례(大禮)를 그르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고, 드디어 힘써 스스로 견디면서 탈이 없이 행례(行禮)하였는데, 혼례가 파하자 복통의 증세가 다시 처음과 같이 아팠으나 이미 대내(大內)에 들어오자 문득 능히 스스로 힘써 예로 뵈어 위로 대전과 중궁 양전(兩殿)을 받들어 모심에 지극히 즐겁고 기뻐하는 모습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해이하지 않았다. 나를 섬기는 데에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조심하였다. 불행히도 기이한 질병에 걸려 신사년059) 에 이르러 병이 위독했는데, 병이 조금 나아지자 매양 인현 왕후(仁顯王后)의 상사에 병 때문에 예를 다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애통해 하였다. 갑오년060) 에 성상의 환후가 미령하여 상하가 초조하고 황급했을 적에는 빈(嬪)이 음식을 폐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밤낮으로 자기 몸으로 대신하기를 원했고, 작년 온천에 행차할 때에는 더욱 연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정성과 효도로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 이와 같았으니, 아! 천도(天道)는 선한 자에게 복을 주는 것이므로 의 덕으로서는 반드시 오래 살아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질병에 걸려 갑자기 사람의 세상을 하직하였으니, 어찌 도리가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는가? 이것이 내가 통곡하고 슬퍼하는 까닭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9책 6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6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禮葬都監, 以嬪宮誌文, 所當前期撰進, 而庚申、辛巳儀軌, 皆有自上書下行錄之事啓稟, 世子遂書下嬪宮行實于政院。 其文曰:

嬪姓沈氏, 系出靑松靑城伯德符, 開國元臣, 寔爲十三代祖。 領議政安孝公靑川府院君, 卽靑城出也, 寔爲十二代祖。 領議政忠惠公連源, 寔爲八代祖, 領議政翼孝公, 卽忠惠出也, 寔爲七代祖。 領議政忠靖公, 寔爲五代祖。 弘文館校理名熙世, 寔爲高祖, 以靑陽君義謙之孫, 爲忠靖後。 觀察使名, 寔爲曾祖, 義禁府都事名鳳瑞, 以牧使名之子, 爲觀察後。 考僉正名, 母高靈 朴氏, 父郡守名, 祖吏曹判書贈領議政文孝公長遠, 曾祖直長贈吏曹判書名也。 乙丑歲, 觀察使挈家往居於楊根先壠之下。 其八月, 自忠靖公墓, 至所居洞外, 連夜有光, 彌亘十里, 洞明如晝, 山上禽獸皆可見。 翌日有僧龍門山來言: "此地連日有瑞氣, 未知有何異事?" 云。 自是月, 母始有身, 而輒連夢, 月光照耀, 五色祥雲, 絢爛如錦, 又有群鳳雙雙飛翔。 至丙寅五月二十一日, 誕生于會賢洞寓舍。 幼而英慧婉順, 未周甲, 已能言語。 雖游嬉之事, 必有法度, 足未嘗下階庭。 甫三歲, 養于祖母鄭氏, 誠孝篤至, 能知長者氣色, 先意承奉, 喜怒不妄形, 言語必端愼。 凡物有初見, 雖非稀貴者, 必先獻於長者, 長者不命之食, 則不食。 每朝起, 必自父母所, 適曾祖母所及祖母所兩處問安, 然後始退。 五歲時, 觀察使當暑月醉寢, 使之抱扇揮蠅, 則遵命惟謹, 至暮終不敢離側, 以竢其醒。 觀察使甚奇愛, 恒以語於家人云。 天性喜簡素, 見人被服鮮華, 未嘗有欽艶希慕之色, 雖得華美之物, 必盡分於諸弟, 淡然無物欲之累, 無苟得之心。 惟篤於愛親睦族, 此皆得之天賦, 非有資於矯揉勉强而然也。 十一歲, 初與揀擇, 歸家之後, 出言輒悲傷, 手辦酒食, 遍饋家衆。 及再揀, 終日涕泣, 以永離父母爲悲。 時適避離本第, 尤以未得辭訣於私廟爲恨, 請於父母, 欲爲往辭, 以家內不淨, 竟不能如其願焉。 及其入居別宮, 終日端坐, 未嘗暫時欹跛設惰容, 侍女或請遊觀, 亦不應唯, 取《小學》置案上, 恒受讀。 至大禮日, 肚疼猝劇, 父母親黨, 皆遑遑不知所爲, 則輒曰: "豈可以我病而誤大禮?" 遂黽勉自持, 行禮不愆, 禮罷而疼復如初。 旣入大內, 又輒能自强禮見。 上奉兩殿, 克盡怡愉, 終始匪懈, 事余必敬必愼。 不幸中罹奇疾, 至辛巳彌篤, 及少間, 每以仁顯先后之喪, 病未盡禮爲至痛。 歲甲午, 聖候違豫, 上下焦遑, 嬪廢食涕泣, 日夜願以身代, 昨年溫幸, 尤切戀慕。 誠孝之感動人, 類如此者。 噫! 天道福善。 以嬪之德, 必永年, 而一疾遽厭人世, 何理之反常至此耶? 是余所以痛悼者也。


  • 【태백산사고본】 69책 6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6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