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에게 나라를 경영할 학문 수양에 열중하라는 뜻으로 헌납 조성복이 올린 상서문
헌납(獻納) 조성복(趙聖復)이 상서(上書)하였는데, 대략 말하기를,
"저하(邸下)께서 곤란하고 위태로운 시기를 당하여 정사를 대리(代理)하라는 명을 받들었으니, 진실로 분발하고 힘을 다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퇴패한 기강을 진작시키고 묵은 폐단을 일소하려는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어떻게 위로 성상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아래로 여러 사람들의 소망에 부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천하의 모든 일의 이치와 역대의 치란(治亂)의 자취가 경전(經典)과 사서(史書)에 모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치평(治平)을 이룩하는 방도는 반드시 학문의 강론을 근본으로 삼지만, 또한 학업에 침잠(沈潛)하여 그 깊은 뜻을 찾아내고 그 이치를 자세히 이해하여 그 뜻을 꿰뚫어 보게 된 다음이라야 바야흐로 수용(受用)할 곳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이 삼가 살피건대, 선정신(先正臣) 이이(李珥)가 지은 《성학집요(聖學輯要)》는 경전의 요결(要訣)을 뽑아 모으고 제자(諸子)와 사서(史書)의 정화(精華)를 주워 모아서 종류별로 분류하여 모았는데, 글이 간략하고 이치가 정연하여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요점이 찬연히 구비되어 있으니, 이것은 진실로 제왕(帝王)이 입도(入道)하는 지침서입니다. 저하께서 만약 이 책을 항상 안궤(案几)에 두시고 때때로 열람(閱覽)하시면서 혹 소대(召對)할 적에 사서(史書)와 함께 하루씩 돌려가면서 강독(講讀)하게 한다면, 덕을 배양하고 학업을 닦는 데에 보탬이 있는 것이 또한 어찌 적겠습니까?
오늘날 강관(講官)의 선임 또한 널리하지 않는 것이 아니나, 경술(經術)에 능한 선비는 한 사람도 교지에 응하는 자가 없으니, 진선(進善)·자의(諮議) 등의 관직은 다만 임하(林下)의 아름다운 호칭일 뿐 필경 세자에게 강(講)을 권하는 것을 과목(科目)에 합격한 속류(俗流)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은 생각하건대 유사(儒士) 가운데 이미 강직(講職)을 제수한 자는 정성과 예절을 다하여 초치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데, 익위사(翊衛司)에서도 서연(書筵)에 나아가서 배강(陪講)하는 예(例)가 있으니, 또한 반드시 경학(經學)에 능한 선비를 결원이 생기는 대로 보충하여 임명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강하는 자리에 출입하게 한다면 실효가 있게 될 것입니다.
또 부자(父子)가 동방(同榜)일 경우 아들이 아비의 아리에 있어도 오히려 나란히 선다는 혐의가 있는데, 하물며 아들이 방수(榜首)가 되고 아비가 도리어 아래에 있게 되는 경우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윤리와 기강의 도치가 이보다 심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번 이유춘(李囿春) 부자에게 아울러 창방(唱榜)하는 것을 허락하였으나 이는 실로 지나친 말인데, 어찌 그대로 준행하여 상전(常典)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신은 생각하건대, 지금부터 이후로는 정시(庭試)·알성시(謁聖試)와 별과(別科)에는 일체 함께 시험보는 것을 금지시켜 부자가 같이 부시(赴試)하지 말게 한다면, 효순(孝順)의 기풍을 기를 수 있는 것은 물론, 견철(牽掣)의 걱정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신급제(新及第) 이형등(李馨登)은 그 아비와 아울러 문과(文科) 강경(講經)에 부시하였는데, 아비가 초시(初試)에 참여하면 그 아들은 정장(呈狀)하여 진시(陳試)008) 하는 것이 통행하여 온 전례인데, 지금 이형등은 무릅쓰고 부시하였으니 법의 뜻을 대단히 어겼습니다. 마땅히 해조(該曹)로 하여금 법전을 상세히 상고하여 즉각 바로잡도록 하소서.
백성들을 가까이하는 관직으로는 수령(守令) 같은 것이 없는데, 이를 선발함에 있어 사사로운 뜻이 너무 성하고 청탁이 너무 심하여 전관(銓官)에 취사 선택에 현란하여 사람을 정선(精選)할 겨를이 없으니, 삼가 원하건대 저하께서는 다시 엄한 신칙을 더하소서."
하였는데, 세자가 답하기를,
"반복하여 진계(陳戒)한 말은 진실로 나를 사랑하는 정성에서 나온 것으로 모두 간절하고 지극한 말이니, 내가 심히 가상하게 여긴다. 《성학집요(聖學輯要)》를 날마다 돌려가며 강독하라는 일은, 사부(師傅)와 빈객(賓客)에게 문의하겠다. 익위사의 관직에는 반드시 경학(經學)에 능한 선비를 보임하라는 것과 수령을 엄정하게 고르라는 두 가지 조문은, 이조·병조의 전관(銓官)들에게 신칙하겠다. 그리고 부자가 동방(同榜)일 경우 같이 부시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자는 것은,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겠다. 이형등의 일은 해조에서 품처(稟處)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하였다. 이 뒤에 묘당에서 부자가 동방일 경우에 대하여 대신들에게 의논하기를 청하였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과 우의정 조태채(趙泰采)가 의논하여 아뢰기를,
"세교(世敎)를 손상시키는 일이니, 같이 부시하는 것을 금하는 조치 이외에는 달리 선처할 방도가 없습니다. 이것을 사목(事目)에 첨가하여 넣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세자가 그 의논을 따랐다. 이형등의 일에 대하여는 예조(禮曹)에서 복주(覆奏)하기를,
"지금 만약 한 해가 지난 뒤에 추후하여 발거(拔去)한다면, 원통하고 억울해 하는 단서가 없지 아니할 것이니, 청컨대 자표(字標)009) 를 서로 바꾼 사람에게는 연한(年限)을 정하여 관직을 주지 아니하는 예에 의하여 이형등에게 3년을 기한으로 관직을 주지 말도록 하소서."
하니, 세자가 좋다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9책 6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1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왕실-경연(經筵) / 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獻納趙聖復上書。 略曰:
邸下當艱危之會, 膺代理之命, 苟不奮發淬礪, 眞實做去, 以振頹綱掃積弊爲心, 則尙何望上悅聖心, 下副衆望乎? 然天下萬事之理, 歷代治亂之迹, 莫不具於經史。 致治之道, 必以講學爲本, 而亦必沈潛玩繹, 融會貫徹, 然後方可有受用處。 臣竊觀先正臣李珥所撰《聖學輯要》, 摭經傳之要訣, 掇子史之精華, 彙分類聚, 辭約理該, 修齊治平之要, 粲然俱備, 此誠帝王入道之指南。 邸下若以此, 恒置几案間, 時加閱覽, 或於召對, 與史書輪日講讀, 則其有補於進德修業, 亦豈淺尠哉? 今日講官之選, 亦非不博, 而經術之士, 無一人應旨者, 進善、諮議等職, 只假林下之美號, 畢竟所勸講, 不過科目中流輩。 臣謂儒士之已除講職者, 不可不盡誠禮致之, 而翊衛司有登筵陪講之例, 亦必以經學之士, 隨缺補差, 使之出入講席, 則庶有實效也。 且父子同榜者, 子居父下, 尙有竝列之嫌。 況子爲榜首, 父反居下者, 倫紀倒置, 莫此爲甚。 向者李囿春父子, 竝許唱榜, 實是過擧。 豈可仍作遵行之常典耶? 臣謂自今以後, 如庭、謁聖及別科, 一倂設禁, 俾勿同赴, 則可以長孝順之風, 而無牽掣之患矣。 新及第李馨登, 與其父, 竝赴文科講經, 父參初試, 則其子呈狀陳試, 自是通行之例, 而今此馨登之冒赴, 大違法意。 宜令該曹, 詳考法典, 劃卽釐正。 近民之官, 莫如守令, 私意太勝, 干囑甚繁, 銓官眩於取舍, 不暇精選。 伏願邸下, 更加嚴飭焉。
世子答曰: "反覆陳戒, 亶出愛余之誠, 無非切至之言, 余甚嘉尙。 《聖學輯要》, 輪日講讀事, 問議于師傅、賓客。 翊衛之職, 必以經學之士塡差及精擇守令兩款, 申飭兩銓, 而父子同榜, 不許同赴, 令廟堂議處。 李馨登事, 自該曹稟處爲宜。" 是後廟堂請以父子同榜事, 議大臣。 領議政金昌集、右議政趙泰采議以爲: "有傷世敎, 禁其同赴之外, 無善處之道。 宜以此添入事目。" 世子從其議。 李馨登事, 禮曹覆奏言: "今若追拔於經年之後, 則不無呼冤之端。 請依字標相換人, 限年勿付職例, 馨登限三年勿付職。" 世子可之。
- 【태백산사고본】 69책 6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1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왕실-경연(經筵) / 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