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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60권, 숙종 43년 10월 27일 정미 2번째기사 1717년 청 강희(康熙) 56년

임금이 희정당에서 칙사를 접견하다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서 칙사(勅使)를 접견하였는데 영의정(領議政) 김창집(金昌集), 우의정(右議政) 조태채(趙泰采), 도승지(都承旨) 조도빈(趙道彬), 우승지(右承旨) 심택현(沈宅賢)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방 안의 이석(離席)519) 으로 나아가니 심택현이 황제의 지의(旨意)를 낭독했는데, 그 내용에 이르기를,

"황제가 행궁(行宮)520) 에 주필(駐蹕)하고 있으면서 한림 학사(翰林學士) 아극돈(阿克敦)과 치의정(治儀正) 장정매(張廷枚)를 불러들여서 유시하기를, ‘조선왕(朝鮮王)이 안정된 가운데 법을 잘 봉행하여 백성들이 40여 년 동안 애대(愛戴)하여 왔으니, 나라 안에서 태평을 누린 복이 이렇게 오래인 경우는 아직 있지 않았다. 따라서 짐(朕)이 매우 가상하게 여긴다. 예부(禮部)에서 주청(奏請)한 내용을 열람하여 보건대 「조선왕이 병으로 인하여 공청(空靑)을 구매(購買)하게 하여 줄 것을 대신 아뢰어 달라」라 하였다. 짐은 왕이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듣고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공청(空靑)은 짐이 있는 곳에 있으므로 즉시 행재소(行在所)521) 에서 특별히 그대들을 선발하여 가지고 가서 하사하게 하겠다. 이는 격외(格外)의 은전(恩典)에 관계되는 것이니 모든 예절(禮節)을 그대들이 도착하였을 적에 왕으로 하여금 성례(成例)에 구애되는 일이 없게 하라. 처지에 따라 만나보고 이런 내용을 전유(傳諭)하도록 하라."

하였다. 다 읽고 나자 임금이 배례(拜禮)를 행하고 나서 칙사(勅使)와 다례(茶禮)를 행하고 파하였다. 칙사가 나가고 나자 약방 제조(藥房提調) 민진후(閔鎭厚)도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공인(工人)을 불러 공청(空靑)을 가져와서 【그 모양은 둥글고 크기는 은행(銀杏)만 하였다.】 구멍을 뚫어보니 습기(濕氣)가 있는 듯하였으나 장즙(漿汁)은 전혀 없었다. 안부(眼部)에 떨어뜨려 넣었으나 속눈썹만 조금 적셨을 뿐이었다. 이날 여러 신하들이 실망(失望)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 【태백산사고본】 68책 60권 47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681면
  • 【분류】
    외교-야(野) / 의약-약학(藥學) / 무역(貿易) / 왕실-국왕(國王)

  • [註 519]
    이석(離席) : 조금 떨어져 있는 자리.
  • [註 520]
    행궁(行宮) : 임금이 거둥할 때에 머무는 별궁(別宮).
  • [註 521]
    행재소(行在所) : 임금이 멀리 거둥하여 임시로 머물러 있는 곳.

○上接見勑使于熙政堂。 領議政金昌集、右議政趙泰采、都承旨趙道彬、右承旨沈宅賢等, 入侍。 上御房內離席, 沈宅賢讀旨意言: "皇帝駐蹕行宮, 召翰林學士阿克敦、治儀正張廷枚入諭曰: ’朝鮮王安靜奉法, 人民愛戴四十餘年, 國中享太平之福, 未有如此之久者。 朕甚嘉之。 覽禮部奏稱, 王因病籲請代題, 購買空靑。 朕聞王之疾, 深爲軫念。 空靑朕處有之, 仍卽於行在, 特簡爾等齎賜。 此係格外之恩, 凡一應禮節, 爾等到時, 令王不必拘於成例, 隨處可以相見, 可傳諭之。’" 讀訖, 上行禮, 與勑使行茶而罷。 勑使旣出, 藥房提調閔鎭厚亦入侍。 上命招工人, 取空靑, 【其形團圓, 大如銀杏。】 鑽穴, 似有濕氣, 而全無漿汁, 試點眼部, 只得微潤睫毛。 是日, 諸臣莫不缺望矣。


  • 【태백산사고본】 68책 60권 47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681면
  • 【분류】
    외교-야(野) / 의약-약학(藥學) / 무역(貿易)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