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과 한재를 부덕으로 자책하고 당쟁을 중지할 것을 유시하는 하교를 내리다
임금이 하교(下敎)하기를,
"아! 나 소자(小子)가 덕이 없어 왕위(王位)를 욕되게 한 지 거의 4기(紀)355) 가 되어 가는데, 착하지 못한 정치가 많아서 하늘에 죄를 얻었다. 홍수와 가뭄과 바람과 서리의 재해가 없는 해가 없으므로, 농작물이 죄다 병들어 백성이 곤궁하니, 밤낮으로 근심하고 한탄하여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편안하지 않다. 지난번에 홍수(洪水)가 있은 뒤에 이어 가뭄의 재앙이 와서, 바로 만물이 성장할 때를 당하여 한 달 동안이나 계속 가물어 온갖 곡식이 시들었다. 김맨 후에 한재(旱災)가 몹시 다급하므로, 희생(犧牲)356) 을 아끼지 않고 규벽(圭璧)357) 을 다하였으나, 작은 정성이 사무치지 못하여 비가 내릴 뜻은 더욱 아득하다. 예전에 풍요하던 곳이 이제는 다 민둥민둥하여, 계절은 7월인데 가을 곡식이 성숙할 희망이 끊어졌다. 내 적자(赤子)를 생각하면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으니, 백성의 부모가 되어 내가 어떠하겠는가? 병중에도 마음이 졸여서 편안히 있을 겨를이 없으니, 차라리 스스로 몸을 불살라 하늘의 꾸중에 보답하고 싶으나 그럴 수도 없다.
아! 이번 가뭄은 오로지 착하지 못한 데에 말미암았으니, 대개 스스로 덕을 닦고 허물을 살피기에 겨를이 없어야 하겠으나, 또한 어찌 뭇 신하를 칙려(勅礪)하여 서로 경계하는 도리가 없을 수 있겠는가? 아! 임금이 미워하는 것은 당론(黨論)보다 심한 것이 없는데, 오늘날의 당론은 이미 심복(心腹)의 고질(痼疾)이 되었다. 이 병을 제거하지 못하면 반드시 나라를 망치고야 말 것이니,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절로 한심하여진다. 전후에 신칙(申飭)을 누누이 하였을 뿐만이 아닌데 번번이 헛소리가 되었으니, 이는 위에 있는 사람이 표준을 세우는 도리를 잘하지 못하여 그런 것이다. 내가 참으로 부끄럽고 겸연쩍다. 아! 너희 모든 신하가 나의 정사에 부지런한 근심을 몸받아 붕당(朋黨)의 버릇을 힘껏 고치고 마음과 힘을 다하여 왕실(王室)을 돕는다면, 어찌 국가의 복이 되지 않겠는가? 각각 이를 힘써야 할 것으므로, 이에 유시(諭示)한다."
하였다. 정원(政院)에서 이는 여느 분부와 같은 것이 아니라 하여 중외(中外)에 반시(頒示)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66책 58권 5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600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註 355]기(紀) : 1기는 12년.
- [註 356]
희생(犧牲) : 천지(天地)·종묘(宗廟)에 제물(祭物)로 바치는 짐승.- [註 357]
규벽(圭璧) : 신(神)을 제사할 때에 쓰는 옥(玉).○上下敎曰:
嗚呼! 予小子無德, 忝位殆近四紀, 而政多不善, 獲戾于天。 水旱、風霜, 無歲無之, 稼穡卒痒, 生民困瘁, 夙夜憂歎, 玉食靡安矣。 廼者極備之餘, 繼有極無之災, 正當長養, 彌月恒暘, 百穀焦枯, 鋤後之旱災, 乃至燃眉。 靡愛斯牲, 圭璧旣卒, 而微誠未格, 雨意愈邈。 昔之穰穰, 今皆濯濯, 節屆流火, 西成望斷。 念我赤子, 大命近止, 爲民父母, 予惟若何? 病裏焦迫, 不遑寧處, 寧欲自焚, 以答天譴, 而不可得也。 嗚呼! 今玆亢旱, 亶由不穀, 蓋自修省之不暇, 而亦豈無勑礪群工, 交相儆戒之道乎? 嗚呼! 人君之所惡, 莫甚於黨論, 而今日黨論, 已成心腹之痼疾。 此疾不去, 必亡人國而後已。 思之至此, 不覺心寒。 前後申飭, 不啻縷縷, 而每歸空言, 玆由於在上之人, 不能建極之道而然也。 予實愧恧焉。 咨爾大小臣僚, 體予宵旰之憂, 痛革朋比之習, 一乃心力, 夾輔王室, 則豈非國家之福耶? 宜各勉旃, 故玆諭示。
政院以此非尋常絲綸之比, 請頒示中外,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66책 58권 5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600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註 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