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숙종실록57권, 숙종 42년 3월 16일 정미 3번째기사 1716년 청 강희(康熙) 55년

송시열을 옹호하고 권상하를 파직함은 부당하다는 교리 홍계적의 상소문

교리(校理) 홍계적(洪啓迪)이 상소(上疏)하여 근일의 처분이 마땅하지 않음을 극진히 말하였다. 그 소에 대략 이르기를,

"선정신(先正臣) 송시열(宋時烈)의 도학(道學)·기절(氣節)은 실로 우리 동방의 도통(道統)이 유지(維持)되도록 해 주는 것이고, 전하께서 국가에는 기강이 있게 하고 사림(士林)에는 삼가 본보기로 삼도록 평소에 의지하시는 것이니, 전하의 호오(好惡)가 올바름을 사람들이 누구인들 우러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바가 또 선정과 배치(背馳)되던 사람에게 있으니, 초야의 선비들이 본디 이미 깊이 근심하였습니다. 대개 사도(斯道)에는 두 갈래의 길이 없고 공론에는 두 가지 옳은 것이 없으므로 전하께서 비록 양쪽을 좋아하시더라도 이세(理勢)는 끝내 양쪽을 용납할 수 없으니, 이에 부억(扶抑)이 점점 치우치고 소장(消長)이 상승(相乘)하여 진퇴(進退)하고 여탈(與奪)할 적에 번번이 사욕(私慾)이 이기고 천리(天理)가 없어지는 것을 염려하였는데, 오늘날의 처분에 이르러서는 호오(好惡)·시비(是非)가 다시는 조금이라도 공정한 데에 가까운 것이 없어졌으니, 아! 이것이 무슨 거조(擧措) 입니까? 전하께서 유현(儒賢)에 대하여 일찍이 사랑하고 예우하신 것이 과연 어떠하였습니까? 지난날에는 그 스승을 대우하는 예(禮)라 하여 그 사람을 불러 위로하더니 이제는 그 말이 그 스승을 위하여 변명하는 것이라 하여 그 글을 불사르셨으니, 처분이 전도되는 것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대간(臺諫)이 사주(使嗾)를 받았다는 분부도 대간을 대우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전하께서 저번에 어떤 놈이냐고 분부하신 데에 대하여 이미 그 실언을 뉘우치셨는데, 한 가지 말의 잘못을 겨우 뉘우치시고서 또 한 가지 말의 잘못이 있으시니, 어찌 두 번 잘못하지 않는다는 성인의 가르침에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헌납(獻納) 신정하(申靖夏)의 소(疏)에 대한 비답(批答)에 있어서는 사기(辭氣)가 박절하여 대덕(大德)을 매우 손상하였고, 신정하의 사람됨을 또한 아부하는 자라 하셨으니, 이번 분부가 또한 신하를 아시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이러한 언동은 전하께서 한쪽에 치우친 가운데 나온 것이 아니더라도, 대저 대신(大臣)의 차자(箚子)와 같이 곧바로 근심하는 정성은 참으로 그 선지(先志)를 이어받은 것인데, 미안한 비답이 도리어 이미 지난 일을 허물하는 데에 있었으니, 그 효리(孝理)의 누(累)가 되는 것이 또한 어찌 한때의 실언일 뿐이겠습니까? 사문(斯文)이 불행하여 사화(士禍)가 장차 임박했는데도 현관(賢關)의 선비가 오히려 능히 생각하는 바를 죄다 드러내어 소란스러운 가운데에서 정론(正論)을 지켰으므로 그 말이 이미 엄하고 그 기개가 숭상할 만한데, 참언(讒言)이 한 번 들어가자 특별히 정거(停擧)하라는 명이 문득 내려졌으니, 민진원(閔鎭遠)은 벼슬이 사유(師儒)의 직임에 있으므로 한 소를 올려 쟁론(爭論)하는 것이 본디 그 책무이거늘, 간신(諫臣)이 서둘러 공격하여 제거한 것은 과연 무슨 뜻입니까? 대개 그 계(啓)의 말이 바로 그 소에서 규간(規諫)한 말인데 죄명(罪名)을 구성(構成)하였으니, 이것은 참으로 잗단 꼴입니다."

하고, 끝에 말하기를,

"신(臣)이 소를 써서 올리려 할 즈음에 옥당(玉堂)의 차자를 얻어 보니, 대사헌 권상하를 파직하기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이 이에 절로 심담(心膽)이 다 써늘하여졌습니다. 아! 차자의 개요는 모두 흉악한 자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데에서 나왔는데, 그 기세를 보건대 바로 하나같이 기사년194) 에 어진이를 죽인 무리였습니다. 생각건대 저 명의(名義)를 없애고 화심(禍心)을 감춘 무리가 분을 풀고 독을 내뿜어 사류의 화를 빚어낸 것이 본디 일조일석의 일은 아니나 백료(伯寮)의 참소195) 는 또한 감히 함부로 행하여질 수 없으니, 생각건대 사문은 하늘이 없애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천도(天道)가 불운(不運)한 때를 당하여 놀라운 기회가 갑자기 나타나서 관리의 임명을 천거할 즈음에 삼사(三司)에 의망(擬望)한 자가 황이장(黃爾章) 같은 자가 아니면 번번이 오래 침체되어 유감을 품은 사람이고, 나라를 욕되게 하고 의리를 잃은 사람이 아니면 번번이 명의(名義)를 원수처럼 여기는 무리입니다. 서로 화응(和應)하여 사설(邪說)을 선동하고 견책하여 파직하라는 청이 끝내 유문(儒門)에 미쳤으니, 분서 갱유(焚書坑儒)196) 의 참화가 장차 눈앞에 있게 될 것이고 나라의 위망(危亡)은 조짐이 보일 뿐만이 아닙니다. 아! 통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엄하게 비답하여 매우 꾸짖었다.


  • 【태백산사고본】 65책 57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580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윤리(倫理) / 사법-탄핵(彈劾)

  • [註 194]
    기사년 : 1689 숙종 15년.
  • [註 195]
    백료(伯寮)의 참소 :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공백요(公伯寮)가 계손씨(季孫氏)에게 자로(子路)를 참소하였는데, 자복 경백(子服景伯)이 이 일을 공자(孔子)에게 고하고 말하기를, ‘부자(夫子:계손씨를 가리킴)가 틀림없이 공백요의 참소에 마음이 현혹되었습니다마는, 내 힘은 오히려 공백요를 처형하여 주검을 시조(市朝:저자거리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버리게 할 수 있습니다.’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도(道)가 장차 행하여지는 것도 운명이고, 도가 장차 폐기되는 것도 운명인데, 공백요가 운명을 어찌하겠는가?’ 하였다." 하였음.
  • [註 196]
    분서 갱유(焚書坑儒) : 중국의 진 시황(秦始皇)이 즉위 34년에 학자들의 정치 비평을 금하기 위하여 민간에서 가지고 있는 의약(醫藥)·복서(卜筮)·종수(種樹)에 관한 책만을 제외하고 모든 서적을 모아서 불살라 버리고, 이듬해 함양(咸陽)에서 수백(數百) 사람의 유생(儒生)을 구덩이에 묻어 죽인 일.

○校理洪啓迪上疏, 極言近日處分之失當。 其疏略曰:

先正臣宋時烈之道學、氣節, 實是我東方道統之所賴以維持, 殿下平日所依以綱紀乎國家, 矜式乎士林者, 殿下好惡之正, 人孰不仰? 旣而殿下所好, 又在於與先正背馳之人, 則草野之士, 固已深憂而竊慮。 蓋斯道無兩岐, 公議無兩是。 殿下雖兩好, 而理勢終不可兩容, 則於是乎扶抑漸偏, 消長相乘, 而進退與奪之際, 每患私勝而理泯, 至于今日處分, 而好惡、是非, 更無一分近似於公正者。 噫嘻! 此何擧措也? 殿下於儒賢, 嘗所眷禮者, 果何如也? 昨以待遇其師之禮, 而招徠其人, 今以其言, 爲其師辨明, 而燒燬其書, 處分顚倒, 何至於此耶? 至於臺諫受嗾之敎, 亦非待臺閣之道也。 殿下於頃日何如漢之敎, 旣悔其失言矣。 絶悔一言之失, 又有一言之失, 豈不有愧於不貳過之聖訓乎? 至於獻納申靖夏之疏批, 辭氣迫切, 甚傷大德。 以靖夏之人地, 亦謂之附麗, 則今玆之敎, 亦可謂知臣乎? 凡此云爲, (誰)〔雖〕 非殿下偏係中出來, 而若夫大臣之箚, 則直慨之誠, 實承其先志, 而未安之批, 反在於追咎, 其爲孝理之累, 又豈但一時失言而已哉? 斯文不幸, 士禍將迫, 而賢關士子, 猶能悉暴所懷, 抗正論於波蕩之中, 其辭旣嚴, 其氣可尙, 而讒言一入, 特停之命遽下, 則閔鎭遠職在師儒之任, 一疏爭論, 固其責也, 諫臣之汲汲擊去, 果何意也? 蓋其啓語, 正是就其疏規諫之言, 而構成罪名, 此眞宵小之態也。 末言, 臣於治疏將上之際, 得見玉堂箚子, 乃大司憲權尙夏罷職之請也。 臣於是, 不覺心膽俱寒。 噫! 箚槪一出, 手脚凶狠, 觀其氣勢, 便一己巳戕賢之黨也。 惟彼滅名義藏禍心之輩, 其欲逞憤吹毒, 釀成士類之禍, 固非一朝一夕之故, 而伯寮之愬, 亦未敢肆行, 則意者斯文, 天不欲喪也, 不料道際陽九, 駭機猝發, 以政注間所提, 擬於三司者, 非如黃爾章者, 則輒在於久枳含憾之人, 不在於辱國失義之人, 則輒在於讎視名義之輩, 交相和應, 扇動邪說, 譴罷之請, 終及儒門, 焚坑之慘, 將在目前, 國之危亡, 不啻兆見。 噫嘻可勝痛哉!

上嚴批切責。


  • 【태백산사고본】 65책 57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580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윤리(倫理)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