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의정 김우항 등이 대소과(大小科)의 시권의 일에 대해 의논하다
우의정 김우항이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대소과(大小科) 시권(試券)의 비편(備篇)111) 은 원래 해서(楷書)로 비편(備篇)을 갖추어 인재를 선택하는 방도를 삼았던 것이었는데, 비편을 갖추는 규례가 폐지된 지 이미 오래 되었고, 간혹 있기는 하나 표(表)가 있다 하여 취하지 않고 다만 옛 규례를 보존한다는 뜻으로 초서(草書)로 비편을 갖추는 것이 이미 규례를 이루어 문란하기 짝이 없으니, 실로 의의가 없습니다. 그리고 1등에 합격한 시권(試券)의 경우도 이로써 어전(御前)에 아뢰게 되니 경근(敬謹)에 몹시 부족합니다. 더욱이 지금 시지(試紙)를 변통한 뒤에 종이의 품질이 매우 얇아서 안팎에 다 쓰기란 형편상 불편합니다. 또 작년에 시장(試場) 안에서 타인(打印)하는 규례를 제거한 후로 시장 안의 분답한 폐단은 없어졌으나, 선비의 습속이 아름답지 아니하고 폐단이 또 다시 생겨 밖에서 미리 비편을 써 가지고 시장에 들어오는 자도 있어 발각되어 가두고 치죄하기까지 한다고 하니, 진실로 해괴하고 놀랍습니다. 차라리 무익한 형식을 제거하여 뜻밖에 발생하는 폐단을 막는 것이 마땅하니, 지금부터 대소과(大小科)의 비편을 모두 제거하기로 규식을 정하여 시행함이 사리(事理)에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그 차자를 예조(禮曹)에 내렸다. 예조에서 복계(覆啓)하기를,
"《대전(大典)》 제과조(諸科條)에, ‘생원(生員) 초시(初試)에는 오경(五經)의 의(義)와 사서(四書)의 의(疑) 2편(篇), 진사(進士) 초시(初試)에는 부(賦) 1편과 고시(古詩)·잠(箴)·명(銘) 가운데 1편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조종조(祖宗朝) 이래 전해오는 금석(金石)같은 법전(法典)이며, 초서(草書)로 비편을 쓰는 것 또한 옛 규례를 보존하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갑자기 변경해 고치는 것는 자못 중난(重難)한 데 관계됩니다. 밖에서 비편을 미리 쓰는 폐단을 막고자 한다면, 시장(試場) 안에서 타인(打印)하는 법을 도로 복구하고 소(所)마다 각기 세 개의 인(印)을 보내어 시제(試題)를 건 뒤에 곧 타인하게 한다면, 분답한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대단한 변통에 관계되는 것이니, 대신(大臣)에게 의논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좌의정 김창집은 말하기를,
"법전에 실린 바를 하루 아침에 변경해 고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이명(李頤命)은 말하기를,
"금옥(金玉)과 같이 소중한 법전을 그대로 따르고 변경하지 않는 것이 어찌 수성(守成)의 좋은 법이 아니겠습니까마는, 형식과 본질에 폐단이 서로 생긴다면 때에 따른 손익(損益)은 성왕(聖王)도 또한 면하지 못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헌장(憲章)에 실린 바를 추후에 변경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구법(舊法)을 모두 따르지도 못하면서 홀로 폐단만 있고 유익함이 없는 이 일에 대해서는 고치기를 중난(重難)하게 여기니, 실로 신이 이해하지 못할 바입니다. 만약 헌장이 점차 변개됨을 염려하여 이것만이라도 보존할 뜻을 두고자 한다면, 비편(備篇)을 갖춰 올리기를 원하는 거자(擧子)에게는 그 정식(程式)에 의해 지어 써서 올리게 하여 인재를 선택하는 본의(本意)를 폐하지 않도록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문리(文理)도 이루지 못하는 글을 어지럽게 써서 올리지 말게 한다면 거의 실지에 힘쓰는 정사가 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이명의 의논을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63책 55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536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註 111]비편(備篇) : 생원시(生員試)·진사시(進士試)의 시험 방법의 하나. 감시(監試)의 초시(初試)와 복시(復試)에 시권(試券)의 뒤에서 부(賦)를 해서(楷書)로 쓰게 하고, 부권(賦券)의 뒤에는 시(詩)를 각각 초서로 쓰게 하는 일. 시부(詩賦)와 해서(楷書)·초서를 한꺼번에 시험하려는 것임.
○辛卯/右議政金宇杭上箚曰:
大小科試券備篇, 本爲具篇楷書, 以爲掄才之道, 而具篇之規, 廢已久矣。 間或有之, 而以有表不取, 只以存羊之義, 草書備篇, 已成規例, 胡亂甚矣, 實無意義。 至於一等入格之卷, 以此奏御, 殊欠敬謹。 況今試紙變通之後, 紙品甚薄, 內外俱書, 其勢不便。 且於昨年內, 打印除減之後, 場中紛擾之弊則無之, 士習不美, 弊又隨生, 自外預書備篇, 而入場者有之, 至於現露囚治云, 誠爲駭愕。 無寧減其無益之文具, 以杜意外之奸弊, 自今大小科備篇, 幷爲減除, 定式施行, 允合事宜。
上下其箚于禮曹。 覆啓曰: "《大典》諸科條, 生員初試, 五經義、四書疑二篇, 進士初試, 賦一篇、古詩ㆍ箴ㆍ銘中一篇, 此是祖宗朝金石之典, 而草書備篇, 亦出存羊之義, 猝然變改, 殊涉重難。 欲杜自外預書之弊, 則似當還復內打印之法, 而每所各送三印, 掛題後, 卽令打印, 則可無紛踏之弊。 然此係大段變通, 請議于大臣。" 上可之。 左議政金昌集以爲: "法典所載, 不可一朝變改。"判中樞李頣命以爲: "金科玉條, 率由而不變, 豈非守成之良法, 而文質交弊, 則以時損益, 亦聖王之所不免也。 是以國典所載, 追後更變者, 非止一二。 今不能盡復其舊, 獨持難於有弊無益之此事, 實臣之所未曉也。 若慮憲章之漸變, 欲稍存存羊之義, 則許令擧子, 自願具篇者, 依程式製寫, 不廢掄才之本意, 其不能者, 竝勿令亂寫不成文理之文, 則庶爲務實之政。" 上從頣命之議。
- 【태백산사고본】 63책 55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536면
- 【분류】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