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 판서 민진후 등이 하례 때에 봉전을 올리는 일에 대해 의논하다
좌의정 김창집(金昌集) 등이 숭릉(崇陵)의 마석(馬石)이 손상(損傷)된 곳을 봉심(奉審)하고 돌아와, 다시 만들지 말고 그대로 옛것을 다듬어서 만들 것을 청하였다. 손상된 곳이 크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임금이 윤허하였다. 예조 판서 민진후(閔鎭厚)가 아뢰기를,
"금번 하례(賀禮)할 때에 강화(江華)·개성(開城) 두 유수(留守)는 하반(賀班)에 참여함을 핑계로 끝내 봉전(封箋)을 궐(闕)했으니, 사체가 미안합니다. 청컨대 지금부터 법식을 정하여 입참(入參) 여부를 물론하고 모두 봉전을 올리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그 후에 강화 유수(江華留守) 김진규(金鎭圭)와 개성 유수(開城留守) 김연(金演)이 소를 올려 말하기를,
"외관(外官)의 봉전(封箋)은 하반(賀班)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하반에 참여한 자에게 어찌 봉전을 폐했다고 책망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릇 이미 외방(外方)에 있다 하여 봉전을 하고 또 조반(朝班)에 입참(入參)한다면, 봉전한 것으로 볼 때에는 외직(外職)이요 내직(內職)이 아니며, 참반(參班)한 것으로 논한다면 내직이요 외직이 아닙니다. 어찌 한 사람으로서 내외(內外)의 직사(職事)를 아울러 행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해조(該曹)로 하여금 대신(大臣)에게 물어 품처(稟處)하게 하였다. 우의정 김우항(金宇杭)이 말하기를,
"《대전(大典)》 조의조(朝儀條)에 외관(外官)의 배전(拜箋)·진하(陳賀)하는 자리에 개성 유수와 여러 도(道)의 관찰사 이하를 모두 실어 기록하였으니, 거류(居留)075) 의 신하가 배전하고 진하함은 본시 전장(典章)에서 폐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로써 보건대 하반(賀班)에 반드시 참여할 필요는 없으나 하전(賀箋)은 궐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그 의논을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63책 55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534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관리(管理)
- [註 075]거류(居留) : 유수(留守)를 말함.
○朔庚午/左議政金昌集等, 奉審崇陵馬石傷碎處而還, 請勿爲更造, 仍舊琢成。 以所傷不至闊大故也。 上許之。 禮曹判書閔鎭厚奏言: "今番賀禮時, 江華、開城兩留守, 稱以身參賀班, 竟(關)〔闕〕 封箋, 事體未安。 請自今定式, 勿論入參與否, 皆令上箋。" 上從之。 是後, 江華留守金鎭圭、開城留守金演上疏曰:
外官封箋, 旣爲其不得參班, 則今於參班者, 而可責其廢箋乎? 夫旣以在外而封箋, 又入參朝班, 則卽其封箋而觀之, 外而非內也, 就其參班而論之, 內而非外也。 安有以一人而竝行內外之職事哉?
上令該曹, 問于大臣稟處。 右議政金宇杭曰: "《大典》朝儀條, 外官拜箋、陳賀之位, 開城留守、諸道觀察使以下, 竝擧而載錄, 則居留之臣, 拜箋、陳賀, 自是典章之不可廢者。 以此見之, 則賀班不必參, 而賀箋不可闕也。" 上從其議。
- 【태백산사고본】 63책 55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534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