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 어유귀가 화상을 그린 일 등에 대해 논하다
정언(正言) 어유귀(魚有龜)가 국사(國事)를 의논하는 소(疏)를 올렸는데, 대략 말하기를,
"전하께서는 몸소 대덕(大德)을 이룩하시어 마지못해 휘칭(徽稱)을 받으셨으니, 이는 진실로 정신을 분발하여 선치(善治)를 도모할 하나의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세월만 보내는 것이 종전이나 똑같습니다. 어용(御容)을 심도(沁都)302) 에 봉안(奉安)하는 일은 애초에 성세(聖世)의 아름다운 일이 아닌데, 이제 또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그 일을 떠벌려서 어진이를 인대(引對)하는 것은 도본(圖本)을 살펴보는 일에 지나지 않고, 대신(大臣)에게 자문하는 바는 정치의 방법을 강론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으니, 신은 전하께서 항상 억제하고 두려워하는 자세를 가지시어 겸양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은 외식(外飾)이요 내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삼가 깊은 궁중(宮中)에서 한가롭고 편안한 가운데 경계(警戒)하는 마음은 이미 해이해지고, 게으르고 소홀히 하는 마음이 점차 거기 편승하여 마침내 실덕(實德)을 이루고 실효(實効)를 나타내지 못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허위와 가식(假飾)을 숭상하지 마시고 더욱 겸양하는 마음을 가지시어 성학(聖學)을 진수(進修)하고 심신(心神)을 제철(提綴)해서 순수(純粹)·정일(精一)하고 표리(表裏)가 형철(瑩徹)케 하여 마치 방훈(放勳)303) 의 흠명(欽明)304) 과 대순(大舜)305) 의 준철(濬哲)306) 과 문왕(文王)의 목목집희(穆穆緝熙)307) 와 같게 하신다면, 천하 후세(天下後世)에 치군(治君)·명주(明主)로 우러르며 대성인(大聖人)의 기상(氣像)을 상상하여 반드시 흠탄(欽歎)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어찌 채색으로 그림을 그려 빛나는 영정(影幀)에 전하는 것과 같은 날에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그림 그리는 일을 끝마친 이후에는 2품 이상의 관원과 삼사(三司)의 여러 신하들에게 첨배(瞻拜)하라는 분부가 있으셨는데, 이것은 비록 사체(事體)를 소중히 여기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대소(大小)의 신료(臣僚)들이 떠들썩하니 혼잡하게 나아가 마치 관광(觀光)이나 하는 것처럼 한다는 것은 이미 과시(誇示)하는 결과가 됨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법좌(法座)308) 에 친히 나오시고 조정의 신하들이 모두 나온 자리에서 이에 도리어 초상화에 첨배(瞻拜)한다는 것은 더욱 미안한 바가 있습니다. 바라건대 간단히 입시(入侍)하여 한결같이 봉심(奉審)할 때의 준례에 따르도록 하고, 첨배하는 절차는 제거케 하소서. 그리고 또 삼가 들으니, 초본(草本)을 오대산(五臺山)에 장치(藏置)하는 일로 해서 정탈(定奪)309) 한 바가 있었다 합니다. 어진(御眞)을 비장(秘藏)하여 오래 전하는 것이 진실로 덕업(德業)이 후세에 빛나는 데에 무슨 이익이 있기에 반드시 금궤(金櫃)·석실(石室)에 보관하여 영구의 계획으로 삼으려 하는 것입니까. 송(宋)나라 신하 구양수(歐陽脩)가 말한 ‘스스로 그 명예를 좋아함이 지나치면 나중에는 무궁한 우려가 된다.’고 한 것에 거의 가깝다 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의견이 있어서 상소로 진달하는 것은 진실로 불가할 것이 없으나, 다만 도상(圖像)의 일에 대한 ‘위겸(撝謙)’ 두 글자는 제목에 맞지 않는 듯하다. 이미 초본(草本)을 내보였으니 도감(都監)을 설치한 것은 사체(事體) 사이의 일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본래 떠벌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정본(正本)은 초본과는 다르니, 첨배(瞻拜)하는 절차를 제거하도록 하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 바이다. 선원각(璿源閣)에 장치(藏置)한 것은 스스로 그 곡절(曲折)이 있으니, 이번의 이 소론(疏論)은 그 본지(本旨)를 상실함을 면치 못한 것이다."
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어유귀(魚有龜)의 상소는 진실로 없을 수 없는 것인데, 임금의 하교에서 현저히 좋아하지 않는 기색을 보였으니, 어떻게 마음에 거슬리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61책 53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498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사(宗社) / 역사-사학(史學)
- [註 302]심도(沁都) : 강화도(江華島)를 일컬음.
- [註 303]
방훈(放勳) : 요(堯)임금을 지칭함.- [註 304]
흠명(欽明) : 덕성이 공경스럽고 통명(通明)함.- [註 305]
대순(大舜) : 순임금.- [註 306]
준철(濬哲) : 덕성이 깊고도 지혜가 있음.- [註 307]
○正言魚有龜陳論事疏。 略曰:
殿下躬凝大德, 勉受徽稱, 此誠勵精圖治之一初也, 而一日二日, (玩)〔忨〕 愒猶前。 御容之奉安沁都, 初非聖世之美事, 而今又設置都監, 張大其事, 景賢引對, 不過看審圖本, 延英諮訪, 未聞講論治體, 臣知殿下所以常存抑畏, 示以撝謙者, 外也, 非內也, 而竊恐深宮燕安之中, 警戒已弛, 怠忽漸乘, 終無以成實德而著實效也。 願聖上, 毋尙虛假, 益加沖挹, 進修聖學, 提掇心神, 純粹精一, 表裏瑩澈, 如放勛之欽明, 大舜之濬哲, 文王之穆穆緝熙, 則天下後世, 仰爲治君、明主, 而想見大聖人氣像, 必有所欽歎矣。 豈可與圖寫丹靑, 垂之炳煥者, 同日而語哉?
又曰:
圖寫畢工後, 有二品以上三司諸臣瞻拜之命。 此雖出於重事體, 而大小臣僚, 紛然雜進, 有若觀光者然, 已難免夸示之歸。 況法座親臨, 廷僚咸簉, 而乃反瞻拜於傳神, 尤有所未安。 乞令從簡入侍, 一依奉審時例, 俾去瞻拜之節。 且伏聞以草本藏置五臺事, 有所定奪云。 御眞之秘藏壽傳, 固何益於德業之耀後, 而必欲藏之於金櫃、石室, 以爲永久之圖? 宋臣(歐陽脩)〔歐陽修〕 所云: "自喜其名之甚, (過)〔適〕 爲無窮之慮" 者, 殆近之矣。
答曰: "有懷疏陳, 固無不可, 而第圖像之事, 撝謙二字, 似不着題矣。 旣己出示草本, 則都監之設, 不過事體間事耳, 本非張大而然也。 正本異於草本, 俾去瞻拜之節云者, 亦所未曉。 藏置璿閣, 自有曲折, 今玆疏論, 未免失其本旨也。"
【史臣曰: "有龜疏, 誠不可無者, 而聖敎顯示訑訑之色, 何以來逆心之言乎。"】
- 【태백산사고본】 61책 53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498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사(宗社) / 역사-사학(史學)
- [註 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