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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52권, 숙종 38년 11월 16일 을미 1번째기사 1712년 청 강희(康熙) 51년

통신사가 민간에 끼친 폐단·과거 부정 등에 대한 장령 정필동의 상소문

장령 정필동(鄭必東)이 논사소(論事疏)를 올렸다. 그 대략에 이르기를,

"신(臣)은 통신사(通信使)가 왕래하는 길에 살고 있는데, 그들이 돌아올 때에 군읍(郡邑)에 끼친 폐단은 실로 전고(前古)에 없던 바입니다. 통신사는 바야흐로 나명(拿命)에 응하고 있어 비록 그 자신은 역마(驛馬)를 타지 않지만, 딸린 사람들이 타는 말은 오로지 역로(驛路)에다 책임지우고, 복물(卜物)은 각 고을로 하여금 말을 세 내어 운반하도록 하여, 상사(上使)의 것은 30여 바리나 되고 부사(副使)의 것도 또한 같습니다. 각 고을의 관리들이 사방으로 나가 마을들에서 억지로 우마(牛馬)를 가져다가 그 수를 채우고, 특히 그들이 가진 절모(節旄)483) 를 역참(驛站)에 팽개쳐 둔것을 우관(郵官)들이 습득(拾得)하여 며칠이 걸리는 길을 뒤쫓아 보내기도 합니다. 종사(從事)와 일행(一行)의 사람들이 가진 것은 모두 돌아가는 배에 싣기 때문에 복태(卜駄)의 수를 신이 잘 알 수는 없지만 대개 상사·부사의 것과 매한가지라고 합니다. 복태 이외에도 또한 져서 운반해야 할 것이 있어, 부산 첨사(釜山僉使)가 방물(方物)을 지고 갈 역군 5백명을 정비해 놓고 기다리라는 뜻으로 각 고을들에 이관(移關)484) 하고, 그 수 이외에 1천 명이나 공공연히 판출(辦出)해 놓고 대기하는 동안에 걸핏하면 한 순(旬)을 넘깁니다. 운반하는 물건은 감롱(龕櫳)·궤독(櫃櫝) 등속이 많은데 굳게 봉하거나 두텁게 싼 것이고, 그 중에 봉쇄(封鎖)하지 않아 사람들이 보았던 것들은 기화 이초(奇花異草)의 유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무릇 이러한 진기한 물품들은 민간에서 모두 헌어(獻御)하는 물건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이 함부로 천 명이 넘는 백성을 징발하고 멀리 천리 밖까지 가져가 원망이 조정으로 돌아가고 의심이 성덕(聖德)에 미치게 하니, 그 죄를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정시(庭試)의 시권(試券) 중에 글제의 글자 모양이 이상하여 현저하게 법에 어긋난 단서가 있는 것을 재신(宰臣)으로서 목도한 사람이 많았고, 사람들의 말이 또한 매우 떠들썩하다고 합니다. 대개 글제의 글자가 점획(點劃)이 현판(懸板)에 쓴 것과 다르게 되어 있을 경우 고관(考官)이 뽑지 않음은 전례가 곧 이러한 것으로, 이는 실로 간사한 짓을 막고 근신(謹愼)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암암리에 간사한 꾀를 부린 자취는 비록 적발해 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처럼 글자에다 표를 한 것이 현저한 일을 어찌 한결같이 덮어둘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해조(該曹)로 하여금 시권에 표가 있어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은 것일 경우 일체 모두 뽑아내어 과법(科法)을 엄하게 하소서. 김만채(金萬埰)윤덕준(尹德駿)에게 본래부터 원수와 같은 혐의가 있음은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 그가 기백(畿伯)485) 을 제배(除拜)했을 적에도 이것을 혐의로 여겨 잠깐 들어갔다가 곧 다시 나와 승패(承牌)하여 덮어놓고 부임하였으되, 부절(符節)을 교부(交付)할 때 얼굴을 돌린 채 상대하였으니, 행동거지가 해괴 하였습니다. 더욱이 정령(政令)은 전도(顚倒)되고 청단(聽斷)은 잘못되고 있으니, 흉년의 순선(旬宣)486) 하는 책임을 아마도 이 사람에게 그대로 맡길 수 없을 듯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통신사의 일은 사리에 가깝지 않은 듯하고, 시권 중에서 글제의 글자 모양이 이상한 것은 뽑아내어 버리자는 말은 매우 과당한 데 관계된다. 기백(幾伯)의 정령이 어떠한지는 알지 못하겠다만, 조신(朝臣)은 피혐(避嫌)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하교한 것이 있는데, 덮어놓고 부임했다고 하니,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였다. 정필동이 비지(批旨)를 미안하게 여겨 인피(引避)했는데, 피사(避辭)에다 통신사(通信使)의 복태(卜駄)가 외람되게도 많아 폐단을 끼침이 적지 않은 정상을 더욱 상세하게 논하고 말하기를,

"영남(嶺南)·호남(湖南)의 수령(守令)과 연로(沿路)의 사민(士民)들이 다같이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고, 신(臣)도 이목(耳目)으로 보고 듣고 기억하고 있는 것을 사실에 의거하여 논열(論列)했던 것인데, 살펴 주심을 받지 못하였으니, 신이 그윽이 개탄합니다."

하고, 그 다음에 시권(試券)의 글제에 관한 일은 논하기를,

"무릇 모든 시험장의 글제나 시권에 감히 이상한 표가 있는 글자를 쓰지 못하는 것은 대개 간사한 짓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이번의 정시(庭試) 때에 이헌영(李獻英) 형제의 시권 내용에 ‘공(龔)’자를 ‘’으로 쓴 것을, 금오(金吾)에서 가져다 고찰할 적에 참여했던 당상(堂上)과 낭관(郞官)이 놀라며 의아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었으며 서로 의심스런 것으로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만 안핵(按覈)받는 것 밖의 일이었으므로 의언(議讞) 가운데 거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뒤 두 대신(臺臣)의 상소에 이른바 ‘사핵(査覈)해야 할 어긋난 단서라’고 한 것이 바로 이 일을 가리킨 것인데, 미미하게 그 실마리만 꺼내고 그 말을 다하지 않았기에 아직까지 사핵을 하는 일이 없게 된 것입니다. 또 듣건대, 이 이외에도 이 시권과 같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옛날 선조(先朝) 때에도 거자(擧子) 권환(權瑍)의 정대(庭對) 시권 가운데 ‘배(拜)’자를 ‘扒’자로 써서 입격(入格)했다가, 뒤에 곧 도로 빼버렸습니다. 이번에 글제의 글자가 이상한 것은 원편(原篇) 가운데 있는 한 글자와 비교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닙니다. 또 이미 공좌(公坐)의 뭇사람이 보는 곳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인데, 한결같이 덮어 두고 아직까지 핵실하여 바로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엄하게 하고 간사한 짓을 막는 도리에 있어서 분명하게 사핵해 처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니, 과당하다는 하교는 실로 뜻밖입니다."

하고, 말미에 또 논하기를,

"김만채(金萬埰)는 진퇴(進退)에 있어 법도가 없어 얼굴을 돌린 채 상대했으니, 더욱 대단히 해괴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아울러 논하게 된 것입니다."

하였다. 장령 홍호인(洪好人)이 처치(處置)하되, ‘아래 조관에서 한 말은 너무 지나친 데 관계되나, 【곧 김만채에 관한 일을 가리킨다.】 그 나머지 논열(論列)은 모두 고집하는 바가 있다.’는 말로 출사(出仕)시킬 것을 청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0책 52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470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외교-왜(倭) / 교통-육운(陸運)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인사-선발(選拔)

  • [註 483]
    절모(節旄) : 임금이 사신(使臣)에게 부신(符信)으로 주는 깃대. 모(旄)는 깃대 머리에 다는 쇠꼬리 털, 또는 그 기(旗).
  • [註 484]
    이관(移關) : 관문(關文)을 보냄. 관문은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에 시달하는 공문서.
  • [註 485]
    기백(畿伯) : 경기 관찰사.
  • [註 486]
    순선(旬宣) : 백성을 다스리며 왕명(王命)을 펴는 것.

○乙未/掌令鄭必東上論事疏。 略曰:

臣居在通信使往來之路。 其回還時貽弊郡邑, 實是前古未有。 信使方就拿命, 雖身不騎馹, 而從人所騎, 專責驛路, 卜物則令各邑, 貰馬以運, 上使三十餘駄, 副使亦如之。 各邑官吏四出, 閭里勒取牛馬, 以充其數, 而獨其所持節旄, 抛棄站上, 爲郵官所拾得, 追送於數日之程。 從事行中所帶, 盡載歸舟, 故卜駄之數, 臣未之詳, 而蓋與上、副使一樣云。 卜駄之外, 亦有擔運之物, 釜山僉使以方物負持軍五百名整待之意, 移關列邑, 而數外一千名, 公然辦出, 待候之際, 動經旬日。 所輸物件, 多是龕櫳、櫃櫝之屬, 而堅封厚裹, 其不封鎖而爲人所目見者, 則無非奇花異卉之類。 凡此珍奇之品, 民間皆認爲獻御之物, 彼擅發過千之民, 遠致千里之外, 使怨歸朝廷, 疑及聖德者, 其罪可勝言哉? 庭試試券中, 有書題字樣異常, 顯有違端者, 宰臣多有目覩, 人言亦甚喧藉云。 蓋書題之字, 點畫有異於懸板所書者, 考官不敢取者, 前例卽然, 實是防奸謹愼之意也。 暗中用奸之迹, 雖無以鉤摘, 而如此字標顯著之事, 何可一向掩置乎? 請令該曹, 收聚試券, 有標果如人言者, 一竝拔去, 以嚴科法。 金萬埰之與尹德駿, 素有讎嫌, 世所共知。 其除畿伯也, 以此爲嫌, 乍入卽出, 承牌冒赴, 交符之際, 側面相對, 擧止駭異。 況其政令顚倒, 聽斷乖舛, 荒歲旬宣之責, 恐不可仍畀此人。

答曰: "信使事, 似不近理。 試券中書題字樣之異常者, 拔去之說, 殊涉過當。 畿伯之政令, 未知如何, 而朝臣之不得避嫌, 明有下敎, 冒赴云者, 予未曉也。" 必東以批旨未安, 引避。 其避辭論信使駄載猥多, 貽弊不貲之狀, 尤詳而曰: "嶺、湖守令、沿路士民, 所共明知, 臣以耳目所覩記, 據實論列, 而未蒙察納, 臣竊慨然。" 其下論試券書題事則曰: "凡諸試場題卷, 不敢用異常有標之字者, 蓋所以防奸也。 今番庭試李獻英兄弟試券中, 龔字以龍字書之, 金吾取考之際, 參坐堂郞, 莫不驚訝, 互相指疑, 而但以受按之外, 故不果擧論於議讞之中。 其後兩臺臣疏中, 所謂違端可覈者, 正指此事, 而微發其端, 不盡其說, 以致尙無行査之擧。 且聞此外, 有如此試券云。 昔在先朝, 擧子權瑍之庭對試券中, 拜字以扒字書之, 入格之後, 旋卽拔去。 今此題字之異常, 非如原篇中一字之比。 且已昭著於公坐衆見之處, 而一向掩置, 尙未覈正。 其在嚴科杜奸之道, 不可不明査處之。 過當之敎, 實是意慮之外也。" 末又論: "金萬埰進退無據, 側面相對, 尤是大段駭擧, 人多言之, 故有所竝論矣。" 掌令洪好人處置, 以下款措語, 殊涉太過, 【卽指金萬埰事也。】 其他論列, 俱有所執爲辭, 而請出仕。


  • 【태백산사고본】 60책 52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470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외교-왜(倭) / 교통-육운(陸運)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