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이유 등이 북한 산성의 행궁을 옮기는 일·권설 및 이택의 일 등에 대해 논의하다
대신과 비국(備局)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引見)하였다. 병조 판서 조태채(趙泰采)가 아뢰기를,
"북한 산성(北漢山城)의 행궁(行宮) 자리는 중흥사(重興寺)의 옛터만 못하니, 행궁을 다시 이 곳에 옮기어 세우도록 명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고, 영의정 이유(李濡)는 아뢰기를,
"당초에 예관(禮官)을 보내어 간심(看審)하게 하고 여러 대신이 함께 의논하여 품정(稟定)한 것이니, 조용하게 상확(商確)하여 처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니, 임금이 다시 간심한 다음에 품처(稟處)하도록 명하였다. 지평 어유귀(魚有龜)가 앞서의 계사(啓辭)를 거듭 아뢰었으나 임금이 윤허하지 않았고, 권설(權卨)의 일에 대해서는 임금이 대신들에게 물었다. 이유(李濡)는 피혐(避嫌)하여 주대(奏對)하지 않았고, 조태채(趙泰采) 및 지사(知事) 이기하(李基夏)와 형조 판서 박권(朴權)은 모두 말하기를,
"권설이 도둑을 다스리는 데 능한지의 여부는 비록 잘 알지 못하지만, 김부차(金夫差)에 관한 말은 혼란을 요행으로 여겨 능력을 자랑하는 계책이었으니, 쟁집(爭執)하는 것이 진실로 당연합니다."
하고, 헌납 한영조(韓永祚)도 또한 대계(臺啓)를 옳게 여기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어유귀가 또 논하기를,
"어버이의 나이가 70인 사람은 3백리 밖에 서용(敍用)하지 않는데, 진도 군수(珍島郡守) 이사목(李思牧)은 어미의 나이가 70인데다가 독자(獨子)로서 멀리 천리의 땅에 있으면서 한 번 사장(辭狀)을 내고는 지금까지 여전히 그대로 눌러 앉아 있으니, 청컨대 파직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교리 신심(申鐔)이 관료(館僚)의 구간(苟簡)478) 함을 들어 마땅히 변통하는 도리가 있어야 함을 진달했다. 임금이 이르기를,
"이택(李澤)이 도배(徒配)된 일은, 그 자신이 남기(濫騎)하는 짓을 한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인데, 대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자, 이유(李濡)가 아뢰기를,
"이택의 일은 아랫사람을 검찰(檢察)하지 못한 데서 연유한 것이고, 그 자신이 남기한 것은 아닙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벌을 이미 집행했으니 방송(放送)하라."
하였다. 임금이 연은문(延恩門)에다 괘서(掛書)479) 한 사람을 아직도 체포하지 못하였다 하여 포도 대장을 모두 추고(推考)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0책 52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469면
- 【분류】군사-관방(關防) / 왕실-종사(宗社)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인사-관리(管理)
○己丑/引見大臣、備局諸臣。 兵曹判書趙泰采曰: "北漢行宮基址, 不如重興寺舊址。 行宮更命移建於此處爲宜。" 領議政李濡曰: "當初遣禮官看審, 諸大臣相議而稟定, 從容商確而處之好矣。" 上命更爲看審後稟處。 持平魚有龜申前啓, 上不允。 至權卨事, 上問大臣, 濡嫌不對, 泰采及知事李基夏、刑曹判書朴權皆言: "卨之治盜能否, 雖未詳知, 夫差之說, 則幸亂衒能之計也, 爭執固宜矣。" 獻納韓永祚, 亦以臺啓爲是, 上允之。 有龜又論: "親年七十, 勿敍三百里外, 而珍島郡守李思牧, 母年滿七十, 而以獨子, 遠在千里之地。 一番辭狀, 尙今蹲冒, 請罷職。" 上從之。 校理申鐔以館僚苟簡, 直有變通之道陳達, 上曰: "李澤徒配事, 與身自濫騎有異, 大臣以爲何如?" 濡曰: "澤之事, 由於不能檢下, 而非身自濫騎矣。" 上曰: "罰已行矣, 放送。" 上以延恩門掛書人, 尙未捕得事, 命捕將竝推考。
- 【태백산사고본】 60책 52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469면
- 【분류】군사-관방(關防) / 왕실-종사(宗社)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