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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51권, 숙종 38년 5월 23일 을사 1번째기사 1712년 청 강희(康熙) 51년

접반사 박권이 백두산 정계의 일에 대해 치계하다

접반사(接伴使) 박권(朴權)이 치계하기를,

"총관(摠管)이 백산(白山) 산마루에 올라 살펴보았더니, 압록강(鴨綠江)의 근원이 과연 산 허리의 남변(南邊)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미 경계(境界)로 삼았으며, 토문강(土門江)의 근원은 백두산 동변(東邊)의 가장 낮은 곳에 한 갈래 물줄기가 동쪽으로 흘렀습니다. 총관이 이것을 가리켜 두만강(豆滿江)의 근원이라 하고 말하기를, ‘이 물이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서 나뉘어 두 강(江)이 되었으니 분수령(分水嶺)으로 일컫는 것이 좋겠다.’ 하고, 고개 위에 비(碑)를 세우고자 하며 말하기를, ‘경계를 정하고 비석을 세움이 황상(皇上)의 뜻이다. 도신(道臣)과 빈신(儐臣)도 또한 마땅히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겨야 한다.’고 하기에, 신 등은 이미 함께 가서 간심(看審)하지 못하고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김은 일이 성실(誠實)하지 못하다.’는 말로 대답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9책 51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440면
  • 【분류】
    과학-지학(地學) / 군사-관방(關防) / 외교-야(野)

○乙巳/接伴使朴權馳啓曰: "摠管登白山顚審見, 則鴨綠江源, 果出於山腰南邊, 故旣定爲境界, 而土門江源, 則白山東邊最下處, 有一派東流。 摠管指此爲豆江之源曰: ‘此水一東一西, 分爲兩江, 名爲分水嶺可也。’ 嶺上欲立碑曰: ‘定界立石, 乃是皇旨。 道臣、儐臣, 亦宜刻名碑端。’ 臣等以旣不得同往看審, 而刻名碑端, 事不誠實, 爲答矣。"


  • 【태백산사고본】 59책 51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440면
  • 【분류】
    과학-지학(地學) / 군사-관방(關防)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