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차사의 일, 양역 변통의 일, 주서 천망의 일 등에 대해 논의하다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제신(諸臣)을 인견(引見)하였다. 우의정(右議政) 조상우(趙相愚)가 말하기를,
"그 자문(咨文)에 또 관원(官員)을 차견(差遣)하여 장백(長白)으로 간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 나라 육로(陸路)의 통하기 어려움은 임신년163) 의 회자(回咨)에서 청함을 얻었으며, 수로(水路)의 통하기 어려움은 작년에 목극등이 또한 이미 갖추 알았으니, 급히 회자를 지어 수로·육로가 모두 득달(得達)하기 어려운 정상(情狀)을 갖추어 진달한다면, 혹시 발행(發行)을 정지시킬 방도(方道)가 없지 않을 듯합니다."
하고, 병조 판서(兵曹判書) 최석항(崔錫恒)은 말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매양 길이 험함을 가지고 말로 하였는데, 이제 한 말의 봉행(奉行)도 없다면 전에 그 어려움을 견지(堅持)함이 도리어 허투(虛套)로 돌아가니, 이자(移咨)는 그만둘 수 없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저쪽에서 이미 자문을 보내고 이어 패문이 있는데, 이제 만약 회자(回咨)하여 방색(防塞)한다면 반드시 말썽이 생길 근심이 있으니, 익히 생각하여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호조 판서(戶曹判書) 김우항(金宇杭)이 말하기를,
"목차(穆差)164) 가 작년에 이미 간험(艱險)을 겪고도 이제 또 나와서 그 계책을 그만 두지 않을 것이니, 이제 비록 이자(移咨)한다 하여도 무익(無益)할 듯합니다."
하니, 사직(司直) 김석연(金錫衍)만이 김우항의 말을 옳다고 하고 그 나머지 제신(諸臣)은 모두 조상우의 말에 따라서 이자를 마땅한 것으로 하였다. 이조 참의(吏曹參議) 이광좌(李光佐)가 더욱 힘써 말하기를,
"말에 이르기를, ‘오랑캐는 백 년의 운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저들이 수십 년 내로 우리를 대우함이 지나치게 두터워서 공물(貢物)을 경감(輕減)한 데에 이른 것은 반드시 그 까닭이 있습니다. 대개 백 년 동안 중토(中土)165) 에 거처하면서 금수(錦繡)와 양육(粱肉)166) 에 젖었으니, 하루아침에 막북(漠北)으로 돌아간다면 형세가 반드시 견디기 어렵습니다. 조만간(早晩間) 패하여 돌아갈 텐데, 시간이 여유 있으면 어염(魚鹽) 등 물산(物産)에서부터 토지·민인(民人)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서 취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고, 급하면 우리의 서북변(西北邊)에서 길을 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번 길은 장차 산천(山川)의 애색(隘塞)167) 과 도리(道里)168) 의 원근(遠近)을 미리 살피려는 것입니다. 내지(內地)의 설한령(薛罕嶺)의 길은 결코 허락하여서는 안됩니다. 이제 만약 이자(移咨)하여 도리의 통하기 어려움을 가지고 말한다면, 이른바 그 방도(方道)로써 속일 수 있을 것이니, 저쪽에서 혹시 곧장 설한령의 길을 묻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만약 본디 없는 것으로써 대답한다면, 어찌 능히 그 반드시 있음을 멀리서 헤아려서 책(責)함을 가져온단 말입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저쪽에서 이미 자세히 아는 것을 우리가 없는 것으로 대답한다면 이미 성실한 것이 아니므로 마침내 또한 방색(防塞)할 수 없으며, 방색함을 얻지 못하여 나라를 욕되게 하기에 이른다면, 어찌 무익(無益)하고 해(害)가 있음이 되지 않으랴?"
하였다. 조상우가 아뢰기를,
"연접(延接)하는 사개(使价)를 무엇으로써 호칭(呼稱)합니까?"
하니, 임금이 명하기를,
"다만 접반사(接伴使)를 내보내고, 또 본도(本道)의 감사(監司)에게 명하여 접반사와 함께 가서, 저들이 우리의 지경(地境)을 경유하여 길을 떠날 때에 접대(接待)케 하라."
하고, 또 하교하기를,
"이미 패문이 있음을 가지고 비록 반드시 연칙(延勅)169) 의 예(禮)를 쓸 것 없으나 작년에 비하여 자별(自別)하여야 할 듯하니, 접대를 너무 박하게 하여서는 안된다."
하였다. 장차 자리를 파(罷)하려 하는데, 이광자가 다시 이자(移咨)의 청을 거듭하고 제신(諸臣)이 또한 이에 이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군부(君父)가 계책을 정한 뒤에 각각 소견을 고집하여서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 같음이 있다. 내가 본디 밝은 지혜가 없으니, 제신이 반드시 이와 같이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곧장 스스로 이를 행할 것이지, 무엇 때문에 품지(稟旨)하랴?"
하였다. 강화 유수(江華留守) 조태로(趙泰老)가 말하기를,
"이번 양역(良役)을 변통(變通)할 때에 교생(校生)은 시강(試講)하고, 군관(軍官)은 시사(試射)하여서 군액(軍額)170) 을 태정(汰定)171) 하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강도(江都)는 교생과 군관이 각각 수천 명이니, 교생은 의려대(義旅隊)로 만들고 군관은 장려대(壯旅隊)로 만들어 모두 단속(團束)을 행하여서 졸오(卒伍)와 다름없으나, 다만 교생·군관의 이름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조금 나았는데, 하루 아침에 군액을 태정하니, 원통함을 호소함이 적지 않습니다. 강도는 특별히 정지함이 좋을 듯합니다."
하여, 임금이 제신에게 물었는데, 모두 조태로의 말을 옳다고 하니, 임금이 이를 허락하였다. 장령(掌令) 홍중우(洪重禹)가 아뢰기를,
"이번에 주서(注書)를 새로 천망(薦望)172) 할 때에, 일찍이 겪은 한 사람이 이르기를, ‘그 문안(文案) 속에 그 이름을 다른 사람을 천거한 밑에다 추후(追後)로 메꾸어 넣었다.’ 하여 끌어다 혐의(嫌疑)의 단서(端緖)로 삼아서 즐겨 천망(薦望)에 응하려 하지 않았는데, 그 문안의 기록에 과연 다른 글씨로 추후로 메꾼 일이 있었으니, 이는 실로 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배(下輩)가 장치(藏置)173) 를 삼가지 아니하여서 함부로 추서(追書)하여 천망의 일을 그르치는 거조(擧措)가 있게 하였으니, 청컨대 승정원(承政院)으로 하여금 사품 이정(査稟釐正)174) 하여서 속히 천망을 완결(完結)하고 하인(下人)을 수금(囚禁)하여 과죄(科罪)케 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승지(承旨)에게 물었는데, 승지 이세최(李世最)의 대답이 분명치 않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조가(朝家)에서 이정할 일이 아니다."
하였다. 이날 홍중우가 김덕원(金德遠) 등의 세초 탕척(歲抄蕩滌)의 논계(論啓)를 정지하였다. 형조 판서(刑曹判書) 이언강(李彦綱)이 일찍이 아내를 죽인 죄인 이문환(李文煥)으로써 【이문환의 일이 위에 보인다.】 광역(狂易)175) 이 명백하니 마땅히 참작하여 처리함이 있어야 할 뜻으로 진달하여서, 임금이 등대(登對)하여 품처(稟處)케 하였는데, 이날 임금이 이언강의 말로 인하여 제신(諸臣)에게 하순(下詢)하여서 제신이 많이 참작 처리하는 것으로써 옳은 것으로 하였기 때문에, 임금이 명하여 감사 정배(減死定配)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9책 5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432면
- 【분류】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신분-천인(賤人)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사-임면(任免) / 사법-행형(行刑) / 윤리(倫理)
- [註 163]임신년 : 1692 숙종 18년.
- [註 164]
목차(穆差) : 차사(差使) 목극등을 가리킴.- [註 165]
중토(中土) : 중국 땅.- [註 166]
양육(粱肉) : 기름진 쌀과 고기.- [註 167]
애색(隘塞) : 좁고 막힘.- [註 168]
도리(道里) : 길의 이수(里數).- [註 169]
연칙(延勅) : 칙사(勅使)를 맞이함.- [註 170]
군액(軍額) : 군인의 수효.- [註 171]
태정(汰定) : 태거(汰去)하여서 정함.- [註 172]
천망(薦望) : 벼슬아치를 천거함.- [註 173]
○引見大臣、備局諸臣。 右議政趙相愚曰: "彼咨文, 又有差官往長白之語。 我國陸路之難通, 壬申回咨得請, 水路之難通, 昨年穆克登, 亦已備知。 急修回咨, 備陳水陸俱難得達之狀, 則或不無停行之道。" 兵曹判書崔錫恒曰: "我國每以路險爲言, 今者無一辭奉行, 則前所持難, 反歸虛套, 移咨似不可已。" 上曰: "彼旣送咨文, 繼有牌文, 今若回咨防塞, 則必有生梗之患。 不可不熟慮處之。" 戶曹判書金宇杭曰: "穆差昨年, 旣經險艱, 今又出來, 其計不但已。 今雖移咨, 似爲無益。" 司直金錫衍是宇杭言, 其餘諸臣, 皆從相愚, 以移咨爲宜。 吏曹參議李光佐尤力言曰: "語云: ‘胡無百年之運。’ 彼數十年內, 待我過厚, 至於減貢者, 必有其故。 蓋百年中土, 狃於錦繡、梁肉, 一朝還歸漠北, 勢必難堪。 早晩敗歸時, 緩則欲自魚鹽物産, 以至土地、民人, 無不取資於我, 急則欲取路於我西北, 故此行將預察山川隘塞、道里遠近也。 內地薛罕嶺路, 決不可許矣。 今若移咨, 以道里難通爲言, 則所謂可欺以其方也, 彼或直問薛罕之路, 我若答之以本無, 則安能懸度其必有而致責乎?" 上曰: "彼旣詳知, 而我乃答之以無, 旣非誠實, 而終亦不可防塞。 防塞不得, 以至辱國, 則豈不爲無益有害乎?" 相愚稟以延接使价, 何以稱號?" 上命只出接伴使。 又命本道監司, 與接伴使偕往, 彼由我境作行時, 爲之接待。 又敎以旣有牌文, 雖不必用延勑禮, 而比昨年則似別, 接遇之不可太薄也。 將罷, 光佐復申移咨之請, 諸臣亦繼之, 上曰: "君父定計後, 各執所見, 有似好勝者然。 予本未有明知, 諸臣必欲如是, 則當直自行之, 何爲稟旨乎?" 江華留守趙泰老曰: "今番良役變通時, 有校生試講, 軍官試射, 汰定軍額之命。 江都校生、軍官, 各數千, 而校生則義旅作隊, 軍官則壯旅作隊, 俱行團束, 無異卒伍, 但校生、軍官之號, 於渠差勝, 而一朝汰定軍額, 呼冤不貲。 江都則特爲停止似好。" 上問諸臣, 皆以泰老言爲是, 上許之。 掌令洪重禹啓曰: "今番注書新薦時, 曾經一人, 謂其案中, 追塡其名於他人所薦之下, 引爲嫌端, 不肯應薦。 其案錄, 果有異書追塡之事, 則此實前所未聞, 而下輩不謹藏置, 致有追書胡亂, 誤了薦事之擧。 請令政院, 査稟釐正, 速爲完薦, 下人囚禁科罪。" 上問之承旨, 承旨李世最所對未瑩, 上曰: "此非自朝家釐正之事也。" 是日, 重禹停金德遠等歲抄蕩滌之啓。 刑曹判書李彦綱, 曾以殺妻罪人李文煥, 【文煥事見上。】 狂易明白, 宜有酌處之意仰達, 上令登對稟處。 是日, 上因彦綱言, 下詢諸臣, 諸臣多以酌處爲是, 上命減死定配。
- 【태백산사고본】 59책 5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432면
- 【분류】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신분-천인(賤人)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사-임면(任免) / 사법-행형(行刑) / 윤리(倫理)
- [註 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