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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50권, 숙종 37년 7월 5일 임진 1번째기사 1711년 청 강희(康熙) 50년

대신과 비국 제신들과 양역을 변통하는 일을 의논하다

대신(大臣)과 비국 제신(備局諸臣)을 인견(引見)하고 양역(良役)을 변통(變通)하는 책략을 논의하니, 영의정(領議政) 서종태(徐宗泰) 등 제신(諸臣)이 모두 호포(戶布)를 제일로 삼았다. 그 말에 대개 이르기를,

"구전(口錢)295) 은 번밀(繁密)하여 시행(施行)하기가 어렵고, 호포(戶布)가 가장 정당(正當)합니다."

하였는데, 유독 예조 판서(禮曹判書) 조태구(趙泰耉)만이 아뢰기를,

"호포는 시행할 수 없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수령(守令)을 독촉하고 꾸짖어서 양정(良丁)을 찾아 모아 궐액(闕額)을 충정(充定)하도록 영갑(令甲)296) 을 만들기를, 적곡(糴穀)297) 을 허록(虛錄)하는 제도와 같이 하면 유익할 것 같습니다."

하고, 우윤(右尹) 박권(朴權)은 이르기를,

"호포(戶布)는 당(唐)의 조용조(租庸調)298) 가운데의 조역(調役)입니다. 이제 만약 9등(九等)의 제도299) 를 설정(設定)하여 가난한 이와 잘 사는 이가 납부(納付)하는 것이 꼭 들어맞게 하면 민역(民役)을 균등하게 할 수 있고 국용(國用)도 지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부제학(副提學) 유봉휘(柳鳳輝)는 이르기를,

"무슨 명색(名色)을 논할 것 없이 양정(良丁)으로부터 베[布]를 거두는 것은 한 사람마다 각각 한 필(疋)을 거두고 이름하여 ‘양인포(良人布)’라 이르고, 한 관사(官司)로 하여금 주관(主管)하게 하기를 선혜청(宣惠廳)과 같이 하고는 각 아문(衙門)과 각 영진(營鎭)에서 1년 동안 수용(需用)하는 수량을 마련(磨鍊)하여 지용(支用)하면 단지 1필(疋)만을 거두어도 또한 부족할 염려가 없을 것이니, 8도(八道)의 양정(良丁)의 총수(總數)와 1년간 수용(需用)의 다소(多少)를 먼저 뽑아서 셈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하니, 임금이 3건(件) 가운데서 다시 상확(商確)을 더하여 가장 좋은 점을 따라 품처(稟處)하도록 명하였다. 뒤에 비국(備局)에서 재외 대신(在外大臣)에게 의논하니, 윤지완(尹趾完)은 말하기를, ‘호포(戶布)가 옳다.’고 하였고, 이여(李畬)는 말하기를, ‘의당 절약해 줄이는 것을 우선으로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김우항(金宇杭)의 내국 제조(內局提調)를 체개(遞改)하고 조무(曹務)와 성역(城役)에만 전념하도록 하였다. 임금이 괘서 죄인(掛書罪人)을 아직도 기포(譏捕)하지 못하였다 하여 명하여 좌·우 포도 대장(左右捕盜大將)과 종사관(從事官)을 나문(拿問)하게 하고, 이기하(李基夏)를 좌대장(左大將)으로, 김중기(金重器)를 우대장(右大將)으로 삼았다. 또 대간(臺諫)이 포장(捕將)을 논하지 않는다 하여 엄교(嚴敎)를 내리자, 집의(執義) 유술(柳述)이 이로써 인피(引避)하니, 이튿날 처치(處置)하여 체차(遞差)시켰다.


  • 【태백산사고본】 57책 50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402면
  • 【분류】
    군사-군역(軍役)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註 295]
    구전(口錢) : 인두세(人頭稅).
  • [註 296]
    영갑(令甲) : 법령(法令).
  • [註 297]
    적곡(糴穀) : 봄에 꾸어 주었다가 가을에 받아들이는 곡식. 환자곡(還上穀).
  • [註 298]
    조용조(租庸調) : 옛날 징세법의 하나. 조(租)는 구분전(口分田)에 매긴 세, 용(庸)은 노역 대신에 무명이나 베로 내는 세, 조(調)는 호(戶)를 대상으로 하여 각지의 특산물을 나라에 바치게 하던 것임.
  • [註 299]
    9등(九等)의 제도 : 통일 신라 및 고려 시대의 호등(戶等) 구분 방법. 각 민호(民戶)를 인정(人丁)의 많고 적음에 따라 상상호(上上戶)에서 하하호(下下戶)에 이르는 9등급으로 구분함. 9등호제(九等戶制).

○壬辰/引見大臣、備局諸臣, 論良役變通之策。 領議政徐宗泰等諸臣, 皆以戶布爲第一。 其言槪以爲口錢則繁密難行, 戶布最爲正當。 獨禮曹判書趙泰耉曰: "戶布不可行。 臣意則督責守令, 使之搜括良丁, 充定闕額, 作爲令甲。 如糴穀虛錄之制, 則似有益也。" 右尹朴權曰: "戶布, 卽租庸調中調役也。 今若設爲九等之制, 貧富所納適中, 則民役可均, 國用可支。" 副提學柳鳳輝曰: "勿論某名色, 良丁收布者, 每名各收一疋, 名曰良人布, 使一司主管, 如宣惠廳, 而各衙門、各營鎭一年需用之數, 磨鍊支用, 則只收一疋, 亦無不足之慮。 八道良丁總數及一年需用多少, 先令抄算爲宜。" 上命三件中更加商確, 從長稟處。 後備局議于在外大臣, 尹趾完言: "戶布爲可。" 李畬言: "宜以節損爲先。" 上命遞金宇杭內局提調, 使專意曹務及城役。 上以掛書罪人, 尙未譏捕, 命拿問左、右捕盜大將及從事官, 以李基夏爲左大將, 金重器爲右大將。 又以臺諫之不論捕將, 下嚴敎。 執義柳述以此引避, 翌日處置遞差。


  • 【태백산사고본】 57책 50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402면
  • 【분류】
    군사-군역(軍役)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