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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50권, 숙종 37년 6월 22일 경진 2번째기사 1711년 청 강희(康熙) 50년

이현궁을 환수토록 하다.

또 전교하기를,

"옛날의 이현궁(梨峴宮)은 곧 지금의 숙빈방(淑嬪房)이다. 주위(周圍)의 넓고 큼이 다른 궁(宮)에 비교할 바가 아니어서 연(輦)을 타고 지날 때마다 마음이 항상 미안(未安)하다. 이제는 연잉군(延礽君)의 제택(第宅)으로 이미 정하였으니, 이 집에 동거하여도 불가할 것이 없다. 이러한 뜻으로 분부(分付)하라."

하였다.

사관(史官)은 말한다. 이 두 가지의 일은 진실로 궁부(宮府)276) 는 일체(一體)이며 왕이 된 자는 사사로움이 없다는 뜻을 얻은 처사이며, 또 사람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성상의 마음으로 판단하였으니 더욱 그 성대한 절도(節度)를 볼 수 있다. 다만 내사(內司)는 아직도 아울러 혁파(革罷)함을 아껴 그 선(善)함을 다하지 못하니, 애석하다.


  • 【태백산사고본】 57책 50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401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역사-사학(史學)

○又敎曰: "昔日梨峴宮, 卽今淑嬪房也。 周遭闊大, 非他宮之比, 每當輦過之時, 心常未安矣。 今則延礽君第宅已定, 同居此第, 未爲不可。 以此分付。"

史官曰: "此二事, 實有得於宮府一體, 王者無私之義, 而且不待人言, 斷自上心, 尤可見其盛節也。 但內司之猶靳竝罷, 未爲盡善, 惜哉!"


  • 【태백산사고본】 57책 50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401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