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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49권, 숙종 36년 11월 9일 기해 1번째기사 1710년 청 강희(康熙) 49년

위원 사람들이 범월하여 청나라 사람을 살해하다

좌의정(左議政) 서종태(徐宗泰)·우의정(右議政) 김창집(金昌集)·병조 판서(兵曹判書) 민진후(閔鎭厚)가 청대(請對)하여, 위원(渭原) 사람들이 범월(犯越)한 일을 품주(稟奏)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저들이 혹 조사하는 사신(使臣)을 보내어 오는 일이 있을까 지극히 염려스럽다."

하였다. 서종태가 말하기를,

"장계(狀啓) 가운데 각 사람들의 초사(招辭)를 보건대, 살해(殺害)하였다는 것은 허언(虛言)이 아닌 듯합니다. 만약 저들이 먼저 사문(査問)한다면, 일이 장차 순조롭지 못할 것입니다. 갑신년408) 에도 이자(移咨)한 것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무사(無事)하였었으니, 지금도 먼저 자문(咨文)을 보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여러 대신(大臣)과 경재(卿宰)들의 뜻도 모두 이와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그 말을 옳게 여겼다. 서종태가 말하기를,

"자문(咨文) 가운데에 장차 어사(御史)를 보내어 안핵(按覈)하겠다는 것을 말하였으니, 어사(御史) 1원을 차송(差送)함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옳게 여겼다.

이보다 앞서 위원(渭原)의 백성 이만건(李萬建)·이만성(李萬成)·이만지(李萬枝)·이지군(李枝軍)·이선의(李先儀)·이준건(李浚建)·이준원(李浚元)·송흥준(宋興準)·윤만신(尹萬信) 등이 밤을 틈타 경계(境界)를 넘어 삼을 캐기 위해 설치한 장막(帳幕) 가운데 들어가, 청인(淸人) 5명을 박살(撲殺)하고 삼화(蔘貨)를 약탈(掠奪)하였는데, 청인(淸人) 1인이 우연히 벗어나 달아났다가, 그 동반(同伴) 20여 인과 더불어 갑자기 위원(渭原)의 북문(北門) 밖에 이르러 큰소리로 말하기를, ‘대국(大國)의 사람 5명이 본군(本郡)의 백성 이만건·이만성·이만지·이선의·이준원 등에게 살해(殺害)당하였다.’고 하며 【이지군(李枝軍)·이준건(李浚建)·송흥준(宋興準)·윤만신(尹萬信)은 청인(淸人)이 알지 못하였는데, 안핵(按覈)하였을 때 뒤미처 발각된 자들이다.】 범인(犯人)들을 인도(引渡)하라고 협박하여 청하고, 무릇 9일 동안 포효(咆哮)409) 하며 소란을 부리다가, 순라장(巡邏將) 고여강(高汝岡)을 납치(拉致)하여 인질(人質)로 삼았다. 군수(郡守) 이후열(李後說)은 늙고 겁이 많아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처음에는 성문(城門)을 닫아 걸고 거절하다가, 뒤에는 날마다 술을 준비해 놓고 맞이하여 먹이고는 겸하여 은(銀)·주(紬)·소[牛] 쌀[米]을 뇌물(賂物)로 주었다. 때마침 고여강은 저들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몰래 스스로 벗어나 돌아왔는데, 청인(淸人)들은 이미 뇌물을 얻었고, 또 고여강을 놓쳤으므로 비로소 물러갔다. 이후열은 숨긴 채 간특하게 미봉(彌縫)하고자 하여 즉시 감사(監司)에게 보고(報告)하지 않았는데, 그후 일이 점차 드러나니, 관찰사(觀察使) 이제(李濟)가 급히 이만건 등 5명을 가두게 하고, 사유(事由)를 갖추어 계문(啓聞)하여 이후열을 죄주도록 청하였으므로, 이후열을 이로 인하여 나문(拿問)하였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이선의가 탈옥(脫獄)하여 먼저 도망하였고, 이만건·이만성·이만지·이준원위원에서 강계(江界)로 이송(移送)하여 장차 조사(調査)하려 하였는데, 그 족속(族屬)들이 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포(砲)를 쏘아 영솔(領率)하던 장리(將吏)를 쫓고, 인하여 겁탈(劫奪)하여 도주(逃走)하였다. 일을 계문하자, 임금이 크게 놀라 각별히 구포(購捕)410) 하여 반드시 잡을 것을 기필(期必)하도록 하였으나, 오히려 잡지 못하였으므로, 대신(大臣)이 먼저 저들에게 고할 것을 청한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56책 49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374면
  • 【분류】
    외교-야(野) / 사법-행형(行刑) / 군사-군정(軍政)

  • [註 408]
    갑신년 : 1704 숙종 30년.
  • [註 409]
    포효(咆哮) : 성난 소리로 외쳐댐.
  • [註 410]
    구포(購捕) : 현상을 걸어 잡음.

○己亥/左議政徐宗泰、右議政金昌集、兵曹判書閔鎭厚請對。 以渭原人犯越事, 稟奏矣。 上曰: "彼或有査使出來, 則事極可慮。" 宗泰曰: "以狀啓中各人招辭見之, 其所殺害, 似非虛言。 若自彼中, 先爲査問, 則事將不順。 甲申年, 亦賴移咨, 末乃無事。 今亦先送咨文爲宜。 諸大臣、卿宰之意, 皆如此矣。" 上是其言。 宗泰曰: "咨文中將以遣御史按覈爲辭, 御史一員差送宜矣。" 上可之。 先是, 渭原李萬建李萬成李萬枝李枝軍李先儀李浚建李浚元宋興准尹萬信等, 乘夜越境, 入採蔘幕中, 撲殺淸人五名, 掠其蔘貨。 淸人一人, 偶得脫去, 與其同伴二十餘人, 猝至渭原北門外, 唱言: "大國人五名, 爲本郡民李萬建李萬成李萬枝李先儀李俊元等所殺。" 【枝軍、俊建 興準、萬信, 淸人所不知, 按覈時追發者也。】 迫請現出犯人等, 凡九日咆(哱)〔哮〕 作拏, 執巡邏將高汝岡爲質。 郡守李後說老怯不知所爲, 初則閉城拒塞, 後乃日備酒有迎饋, 兼以銀、紬、牛、米賂之。 會, 汝岡因彼牢睡, 潛自脫還, 淸人旣得賂, 且失汝岡, 始退去。 後說欲掩匿彌縫, 不卽報聞於監司, 其後事漸發露。 觀察使李濟, 令急囚萬建等五名, 具由啓聞, 請罪後說, 後說因此拿問。 俄而, 李先儀越獄先逃, 萬建萬成萬枝(俊元)〔浚元〕 , 自渭原, 移送江界, 將就査, 其族屬要於路放砲, 逐領率將吏, 仍刦奪逃走。 事聞, 上大驚駭, 令各別購捕, 期於必得, 而尙未就捕, 故大臣請先告於彼中。


  • 【태백산사고본】 56책 49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374면
  • 【분류】
    외교-야(野) / 사법-행형(行刑)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