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 윤봉조가 상소하여 왕세자의 진학하는 요건 등을 논계하다
지평(持平) 윤봉조(尹鳳朝)가 상소하여 진계(陳戒)하였는데, 먼저 본원(本源)을 잘 다스리는 공부를 논하기를,
"신(臣)이 염려하는 바는 다만 전하(殿下)의 한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착한 행실을 십분 지켜나가지 못하시고, 허물을 일절 버리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의사(意思)가 쇠미(衰微)하여 잠시 생각하고는 편한 대로 마치시니, 뜻이 성실하다고 이를 수가 없습니다. 함양(涵養)하는 바가 지극하지 못하고, 희로(喜怒)에 절도가 없으며, 사의(私意)를 버리지 못하고, 좋아하고 미워함이 많이 편벽(偏僻)되니 마음이 바르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폭노(暴怒)하시는 병이 더욱 근저(根柢)가 되어 일에 따라 서로 부딪쳐 격동되면 혹은 억재(抑裁)할 바를 알지 못하므로, 항상 의리(義理)를 드러냄은 적고 사사로운 혈기(血氣)는 문득 뛰어나 유죄(有罪)·무죄(無罪)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모두 억눌러 꺾고 욕하며 꾸짖으니, 이것이 무슨 기상(氣像)입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왕자(王子)의 저택[第宅]이 크게 상제(常制)를 넘고, 액정(掖庭)225) 의 소수(小竪)가 마을에서 횡포하며 궁위(宮闈)가 엄격하지 못하여 사특(邪慝)한 길이 열리기 쉬우므로, 궁내(宮內)의 말이 더러 나오기도 하고 밖의 말이 또한 들어가기도 하니, 한 가지 일이 있을 때마다 여항(閭巷)에서 수군거리는 말이 이미 파다합니다. 진실로 사사로운 은혜를 억누르고 모든 행동을 예법에 따라야 하는데, 통연(洞然)하게 털끝만큼이라도 사사롭고 간사한 틈이 없음을 주자(朱子)가 말한 바와 같이 한다면, 이 몇가지 일에 어찌 허물이 되겠습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근년 이래로 옥후(玉候)가 많이 편찮으셔서 만기(萬機)에 싫증이 나실 것입니다. 깊은 밤 한가로운 여가에 비록 조금 불안(不安)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진실로 정자(程子)의 말에 의거하여 그다지 구속되지 말고 편안하게 사대(賜對)하시고, 편복(便服)으로 별전(別殿)에서 상규(常規)를 벗어난 채 혹은 재집 대신(宰執大臣)을 인견(引見)하시거나 혹은 유신(儒臣)을 소대(召對)하여 고금(古今)의 성패(成敗)를 논하시고, 인물(人物)의 시비(是非)를 분변(分辨)하시며, 혹은 의리(義理)를 강구(講究)하시거나, 혹은 질고(疾苦)를 순문(詢問)하시면서 화기(和氣)가 애연(藹然)226) 하여 군신 간에 막힘이 없으시면, 자신에게 돌이켜 일을 조처하는 데에 도움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하고, 또 왕세자(王世子)의 진학(進學)하는 요건(要件)을 논계(論啓)하기를,
"강관(講官)이 발문(發問)하여 왕세자께서 대답하여 이를 논난(論難)하고, 왕세자께서 발문하여 강관이 이를 논설하게 하며, 전하께서 또 여가가 있을 때 소대(召對)하여 조용히 배운 것을 강독(講讀)케 하시면 훈적(訓迪)227) 의 도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마지막으로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정학(正學)을 숭상하는 방도를 논하기를,
"저축이 이미 고갈(枯渴)되어 경용(經用)을 잇대기가 어렵습니다. 마땅히 몸소 먼저 시범(示範)하여 가까운 데로 말미암아 먼 데에 이르도록 하여야 합니다. 궁궐[九重]에서는 굵은 베를 입는 덕화(德化)에 힘쓰고, 후정(後庭)에서는 검은 명주옷을 입는 풍습을 이룬 후에야 대소 비용이 전날에 비하여 더욱 줄어들 것이니, 일세(一世)를 선도(先導)하는 법도로 삼으소서. 또 일을 위임시킨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군민(軍民)의 정사(政事)에서 원망을 부르거나 폐해를 끼치는 자가 있으면, 일일이 강구(講究)하여 차례로 뜯어 고쳐 정리하여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태 주는 성덕(盛德)을 보일 수 있게 하소서. 당론(黨論)은 한결같이 갈라져서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올바른 것을 잃게 되어, 비록 이이(李珥)·성혼(成渾) 같은 어진이라 하더라도 무함(誣陷)하고 패기(悖棄)하는 자들이 거의 일세(一世)의 반(半)이나 되며, 송시열(宋時烈) 같은 이를 미워하고 헐뜯는 무리가 더욱 많으니, 이는 실로 세도(世道)의 변고(變故)입니다. 그러나 정학(正學)의 일맥(一脈)이 길게 이어져 멸절(滅絶)되지 아니하고, 지금 송시열의 적전(嫡傳)228) 도 또한 마땅한 사람이 있어, 산림(山林)에서 덕(德)을 기르고 나이와 명망(名望)이 함께 높으니, 마땅히 정성과 예의를 다해 조정의 높은 벼슬에 초치해서 위임하여 책성(責成)229) 함으로써 학문하는 사람의 긍식(矜式)으로 삼으소서. 호서(湖西)와 경기(京畿) 사이에서도 성리학(性理學)을 강명(講明)하고 경전(經傳)을 탐구(探究)하여 아름답게 흥기(興起)한 자가 또한 많으니, 또한 빨리 전조(銓曹)에 명하시어 특별히 추천하여 발탁해서 임용(任用)함으로써 선비의 기풍을 진작(振作)시키소서."
하니, 임금이 우악(優渥)한 비답으로 가납(嘉納)하고, 인하여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稟處)케 하였다. 묘당에서 복주(覆奏)하기를,
"조목(條目)으로 진계(陳啓)한 바가 시폐[時病]에 절실하게 맞으니, 오직 성상께서 더욱 체념(體念)하시는 데 달려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군민(軍民)이 받는 괴로움은 신역(身役)보다 심한 것이 없는데, 백골(白骨)과 아약(兒弱)에게 포(布)를 징수하는 것은 폐단이 이미 깊은 고질(痼疾)이 되었으니, 오직 한결같이 절손(節損)하기를 생각하고, 그 폐단에 따라 변통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선정신(先正臣) 송시열(宋時烈)의 적전(嫡傳)은 좨주(祭酒) 신(臣) 권상하(權尙夏)를 가리키는 듯한데, 이 사람은 성상께서 돈후(敦厚)하게 불러 좌우에 두지는 아니하셨으나, 권주(眷注)230) 가 융성하니, 마땅히 거듭 뜻을 더하여 측석(側席)231) 을 베풀어 불러들이는 도리를 다하소서. 호서·경기 사이의 두세 선비는 성예(聲譽)가 널리 알려졌으니, 발탁해서 조용(調用)하여 선비를 진작(振作)하는 바탕으로 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옳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55책 48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356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군사-군역(軍役) / 사상-유학(儒學)
- [註 225]액정(掖庭) : 대궐안.
- [註 226]
애연(藹然) : 온화한 모양.- [註 227]
훈적(訓迪) : 가르쳐 인도함.- [註 228]
적전(嫡傳) : 정통(正統)을 물려받음.- [註 229]
○甲寅/持平尹鳳朝上陳戒疏, 首論克治本源之工曰:
臣之所憂, 只在殿下之一心。 善未能十分做去, 過未能一切決去, 一朝意思衰, 霎便了, 意未可謂誠矣。 涵養未至, 喜怒無節, 私意未祛, 好惡多偏, 心未可謂正矣。 最是暴怒之病, 尤爲根柢, 隨事觸動, 或不知裁, 義理之發常少, 血氣之私輒勝, 莫問有罪無罪, 一皆摧折罵詈, 此何氣象?
又曰:
王子第宅, 大踰於常制, 掖庭小竪, 橫暴於閭里, 宮闈不嚴, 邪逕易啓, 內言或出, 外言亦入, 每有一事, 閭巷竊言, 已不勝藉藉。 誠使裁抑恩私, 動由禮法, 洞然無有一毫私邪之間, 如朱子所云, 則此數者, 何以爲累哉?
又曰:
比年以來, 玉候多愆, 萬機倦勤。 乙丙淸燕之暇, 雖有些不安之節, 誠依程子說, 不甚拘束, 安舒賜對, 便服別殿, 擺脫常規, 或引宰執, 或召儒臣, 論古今成敗, 辨人物是非, 或講究義理, 或詢問疾苦, 和氣藹然, 無有間阻, 則反身措事, 庶幾有所助矣。
又論:
王世子進學之要, 請使講官發問, 而王世子答難之, 王世子發問, 而講官論說之, 殿下又以暇時召對, 從容講其所學, 則訓迪之道得矣。
末論節財用崇正學之方曰:
儲蓄已竭, 經用難繼。 惟宜先之自躬, 由近而遠。 九重勵大布之德, 後庭成弋綈之風, 大小費用, 必視前日而尤減, 以爲一世之率, 而又令任事諸臣, 凡於軍民之政, 有可以招怨貽害者, 一一講究, 次第釐革, 以示損上益下之盛德焉。 黨論一岐, 好惡失正, 雖以李珥、成渾之賢, 侮誣悖棄者, 幾判一世, 而若宋時烈, 則其醜毁而詆辱者, 益繁其徒, 斯固世道之變。 然其正學一脈, 綿延不滅, 目今時烈之嫡傳, 亦有其人, 養德山林, 齒德俱尊, 正宜竭誠盡禮, 招致朝右, 委任責成, 以爲學者之矜式。 至於湖甸之間, 講明性理, 探討經傳, 斐然興起者, 亦多其人, 亦宜亟命銓曹, 特加甄薦, 擢拔而進用之, 以振士風也。
上優批嘉納, 仍命廟堂稟處。 廟堂覆奏言: "其所條陳, 切中時病, 惟在聖上之益加體念。 我國軍民之受困, 莫甚於身役, 而白骨、兒弱之徵布, 弊旣深痼, 惟當一意節損, 隋其弊端, 講究變通。 先正臣宋時烈之嫡傳, 似指祭酒臣權尙夏, 此則聖上敦召不置, 眷注方隆, 更宜加意側席, 以盡招延之道。 湖甸之間, 數三人士聲譽播聞, 不可不甄拔調用, 以爲振作之地。" 上可之。
- 【태백산사고본】 55책 48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356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군사-군역(軍役) / 사상-유학(儒學)
- [註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