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추 이인엽이 조령과 죽령을 방수하는 일에 대해 진달하는 상소하다
지중추(知中樞) 이인엽(李寅燁)이 상소하여 조령(鳥嶺)과 죽령(竹嶺)을 방수(防守)하는 일에 대해 조목조목 진달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신이 진달한 영애(嶺隘)에 대한 일은 또한 말단적인 것입니다. 지금 급무는 인심을 굳게 결속(結束)시키는 것만한 것이 없는데, 신역(身役)이 번거롭고 부세(賦稅)가 무거운데다, 또 거듭 기근을 만나 덕과 은혜가 두루 미치지 못하여 원망하는 소리가 위에까지 들리니, ‘윗사람을 어버이처럼 여기고 장자를 위해 죽는 것’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한 현(縣)이나 한 군(郡)도 적절한 사람을 얻어 맡긴다면 그 백성이 오히려 어깨를 쉬게 할 수 있거늘, 하물며 한 도(道)나 조정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있고서야 정사가 행해진다.’고 하였으니, 자고로 치란 흥망(治亂興亡)은 오로지 인재의 얻고 잃음에 달려 있었고, 인재의 얻고 잃음은 위에 있는 사람의 뜻이 서 있느냐 서 있지 않느냐에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왕업(王業)을 도모하고 패업(霸業)을 흥기(興起)하는 것도 오로지 이 마음이며, 나라를 망하게 하고 집안을 패몰(敗沒)시키는 것도 오로지 이 마음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원하옵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유의하소서."
하였다. 그 나열한 조목에는 이르기를,
"1. 조령·죽령·추풍령(秋風嶺)·팔영치(八營峙)는 호서(湖西)·호남(湖南)에서 영남(嶺南)으로 통하는 대로(大路)이므로, 그 요해지(要害地)에 따라 특별히 성채(城砦)를 설치하지 않을 수 없으니, 고개 아래의 내외 각 고을로 하여금 신지(信地)를 나누어 정하여야 합니다. 조령의 경우는 안으로는 연풍(延豊) 등 몇 고을과 밖으로는 문경(聞慶) 등 몇 고을에 조령의 방수(防守)를 맡기고, 팔영치의 경우는 안으로는 운봉(雲峰) 등 몇 고을과 밖으로는 함양(咸陽) 등 몇 고을에 팔영치의 방수를 맡깁니다. 죽령과 추풍령도 또한 이와 같이 배치(排置)한다면 죽령에서 지리산(智異山)까지 무릇 너댓 개의 큰 진(鎭)이 되어, 성세(聲勢)가 서로 의지하고 완급시(緩急時)에 서로 구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묘당(廟堂)과 원임 대신(原任大臣)으로 하여금 널리 묻고 의논하게 하며, 또 본도의 감사(監司)와 병사(兵使)에게 물어 장점을 따라 품처(稟處)하게 하소서.
1. 연변(沿邊)의 여러 진(鎭)은 모두 주사(舟師)가 매인 바이고, 육지를 대비하는 도구는 하나도 조치한 것이 없으니, 이는 실로 국가의 실책입니다. 신의 얕은 생각으로는, 연변의 여러 고을을 혹은 3, 4고을 혹은 5, 6고을을 정하여 주진(主鎭)과 속진(屬鎭)을 삼고 또한 윗 항목에서 진달한 바와 같이 하며, 각 고을의 군병(軍兵)과 속오(束伍) 및 각 군문 소속 외에 따로 성안(成案)하여 급할 때에 조용(調用)하되, 매번 농한기 때면 수령이 그 경내의 각색 군병를 거느려서 점열(點閱)하고 연습시켜 상벌을 명확하게 보이며, 연변의 성루(城壘)를 옛 터에 그대로 수축(修築)하게 한다면 완급시에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아울러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소서.
1. 지금의 근심은 해방(海防)에 많이 있는데, 허술한 단서가 한 둘에 그치지 않습니다. 연해(沿海)의 여러 진이 별과 바둑처럼 펼쳐져 있으나, 조잔(凋殘)하고 피폐한데다 토졸(土卒)이 적으니, 만약 완급한 경우라면 힘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신의 얕은 생각으로는, 그 가장 요해처(要害處)가 되는 곳을 고르되, 영남의 거제(巨濟)·남해(南海)·가덕(加德)·다대포(多大浦), 호남의 가리포(加里浦)·위도(蝟島)·고군산(古群山), 호서의 원산(元山)·안흥(安興), 해서의 백령(白翎)·소강(所江), 관서의 광령(廣梁)·선사(宣沙) 같은 곳은 다시 더 증수(增修)하고, 도중(島中)의 인민을 모두 획급(劃給)하여 단속해 대오(隊伍)를 만들고 시시때때로 무예(武藝)를 익히도록 해야 한다고 여기는 바입니다. 그리고 섬안의 전토(田土)는 태복(太僕)의 소속이 많은데, 해마다 바치는 바를 그 변장(邊將)으로 하여금 구관(句管)케 하여 상납(上納)하고, 그 섬에 소속된 염분(鹽盆)과 어전(漁箭)은 여러 궁가(宮家)와 각 아문(衙門)의 절수(折受)를 논하지 말고 또한 획급하여 양향(糧餉)을 저축하게 해야 할 것이니,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상확(商確)하여 품처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1. 서북쪽의 변방은 을축년175) 에 한 번 채삼(採蔘)을 금지한 뒤로부터 의식(衣食)의 근원이 끊어져 변방 백성의 생활이 날로 조모(凋粍)해지고 있습니다. 점고(點考)하는 규례에 이르러서는 거의 하루도 생업을 편안히 하고 농사를 지을 겨를이 없으며, 조총(鳥銃)은 항상 관부(官府)에 두어 갈무리하고 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신의 얕은 생각으로는 점고하는 기한을 늦추어 농사를 짓도록 하고 우리 경내에서 채삼을 허락하며, 또 장사꾼의 통상(通商)을 허락하여 무천(懋遷)176) 하게 하되, 관에서 가지고 있는 조총을 죄다 내주어 또한 갈무리하고 쏘는 것을 익히게 해야 할 듯하니, 또한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소서.
1. 우리 나라의 산세(山勢)로서 왕경(王京)을 호위하는 것은 남쪽으로는 조령이요, 서쪽으로는 동선령(洞仙嶺)인데, 저절로 관애(關隘)를 이루어 비워두고 버릴 수가 없으므로 12진(鎭)을 동선령 한 산록(山麓)에다 설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잔폐(殘弊)하여 모양을 이루지 못하므로 황해 병사(黃海兵使) 조이중(趙爾重)이 극성(棘城)을 쌓을 것을 청하여 아뢰었는데, 미처 복주(覆奏)하지 아니하여 조이중이 이미 과만(瓜滿)이 되었음을 보고하였으니, 그 대신을 각별히 가려서 보내어 효과가 있기를 책임지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몇 개의 진을 합쳐 하나로 만든다면 관향(管餉)의 모손(粍損)되는 폐단을 없앨 수 있고, 본관(本官)으로 하여금 주관하게 하면 또한 방수(防守)를 착실히 하는 방도가 있다.’하니, 또한 묘당으로 하여금 상확하여 품처하게 하소서.
1. 서북의 관방(關防)은 이와 같이 한가한 때에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상확하여 품처하게 하소서. 함흥(咸興)은 독진(獨鎭)이니 마땅히 다시 증수(增修)해야 할 것이고, 영동(嶺東) 또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으나, 우선 조령·죽령 및 극성에서부터 시작한 뒤에 천천히 방수(防修)할 대책을 궁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급무는 백성을 구휼하는 것만한 것이 없으니, 따로 수령을 선택하여 변방 백성의 질고(疾苦)를 조정에다 알려지게 해야 할 것입니다. 원컨대 성명께서는 유의(留意)하여 신칙(申飭)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경이 깊이 근심하고 멀리 생각하여 이처럼 조목조목 진달하였으니, 나라를 위한 정성을 내가 몹시 가상하게 생각한다. 마땅히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겠으며, 나 또한 마땅히 유념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45권 69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28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군사-병참(兵站) / 군사-군기(軍器) / 농업-전제(田制) / 수산업-어업(漁業) / 수산업-염업(鹽業)
○乙巳/知中樞李寅燁上疏條陳鳥、竹兩嶺防守事, 仍言:
孟子曰: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臣所陳嶺隘事, 亦末也。 卽今急務, 莫如固結人心, 而役煩賦重, 又値荐饑, 德惠未遍, 怨聲上徹, 其可望親上而死長乎? 一縣一郡, 得人而任之, 其民猶能息肩。 況一道乎, 況朝廷乎? 古人有云: "人存政擧。" 自古治亂興亡, 惟係於人才之得失, 而人才得失, 在於在上者之志立不立耳。 圖王興覇, 惟此心, 亡國敗家, 惟此心, 可不懼哉? 伏願聖明, 留意焉。 其條列曰: 一, 鳥嶺、竹嶺、秋風、八營, 卽自湖西、南通嶺南之大路, 不可不就其要害, 特設城砦, 使嶺底內外各邑, 分定信地。 如鳥嶺, 則內而延豐等數邑, 外而聞慶等數邑, 委以鳥嶺之防守, 八營峙則內以雲峰等數邑, 外而咸陽等數邑, 委以八營之防守。 竹嶺、秋風, 亦如是排置, 自竹嶺至智異, 凡爲四五大鎭, 庶得以聲勢相倚, 緩急相救。 竝令廟堂及原任大臣, 博詢廣議, 又問諸本道監、兵使, 從長稟處焉。 一, 沿邊列鎭, 俱是舟師所繫, 陸備之具, 無一措置, 此實國家之失計也。 臣之淺慮以爲, 沿邊列邑, 或三四邑或五六邑, 定爲主鎭、屬鎭, 亦如上頂所陳, 各邑軍兵、束伍及各軍門所屬外, 別爲成案, 臨急調用, 每於農隙, 守令率其境內各色軍兵, 點閱鍊習, 明示賞罰, 沿邊城壘, 仍舊修築, 可以得力於緩急。 竝令廟堂, 商確稟處。 一, 卽今憂虞, 多在海防踈虞之端, 非止一二。 沿海列鎭, 雖星羅碁布, 而凋殘疲弊, 土卒鮮少, 脫有緩急, 無以得力。 臣之淺慮以爲, 擇其最要害處, 如嶺南之巨濟、南海、加德、多大浦, 湖南之加里浦、蝟島、古羣山, 湖西之元山、安興, 海西之白翎、所江, 關西之廣梁、宣沙, 更加增修, 島中人民, 盡爲劃給, 團束作隊, 時時鍊藝。 島中田土, 多是太僕所屬, 常年所納, 使其邊將, 句管上納, 其島所屬鹽盆、漁箭, 勿論諸宮家、各衙門折受, 亦爲劃給, 以儲糧餉。 宜令廟堂, 作速商確稟處。 一, 西北邊, 一自乙丑蔘禁之後, 絶其衣食之源, 邊民生理, 日就凋耗。 至於點考之規, 殆無一日安業, 作農之隙, 鳥銃藏在官府, 未曉藏放之制。 臣之淺慮以爲, 寬其點考之期, 俾爲作農, 許採我境, 又通商(買)〔賈〕 , 以爲懋遷, 盡給官藏之銃, 亦習藏放。 亦令廟堂稟處。 一, 我國山勢之護衛王京者, 南則鳥嶺, 西則洞仙嶺, 自成關隘, 不可虛抛, 故設置十二鎭於洞仙一麓, 而今皆殘弊, 不成貌樣, 故黃海兵使趙爾重, 有請築棘城之啓, 未及覆奏, 爾重已報瓜。 其代各別擇送, 以責成效。 或云: "合數鎭爲一, 可除管餉耗損之弊, 使本官主管, 亦有防守着實之道。" 亦令廟堂, 商確稟處。 一, 西北關防, 及此閑暇, 不可不別樣措置。 令廟堂, 商確稟處。 咸興獨鎭, 宜更增修, 嶺東亦不可不慮, 而先始鳥嶺、竹嶺及棘城, 然後徐究防修之策。 急務莫如恤民, 另擇守令, 使邊民疾苦, 達於朝廷。 願聖明, 留意申飭。
答曰: "卿憂深慮遠, 有此條陳, 爲國之誠, 予甚嘉之。 宜令廟堂, 商確稟處, 而予亦當留心焉。"
- 【태백산사고본】 52책 45권 69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28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군사-병참(兵站) / 군사-군기(軍器) / 농업-전제(田制) / 수산업-어업(漁業) / 수산업-염업(鹽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