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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45권, 숙종 33년 11월 6일 갑인 3번째기사 1707년 청 강희(康熙) 46년

영의정 최석정이 소를 올려 재이로써 진계하다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이 소를 올려 재이(災異)로써 진계하기를,

"은(殷)나라 중종(中宗)이 상곡(桑穀)의 변이(變異)137) 를 당하자 은나라를 가정(嘉靖)138) 하였고, 선왕(宣王)운한(雲漢)의 재앙139) 을 만나자 주도(周道)를 광복(光復)140) 하였으며, 송(宋)나라 경공(景公)이 군인(君人)의 말을 하자 형혹성(熒惑星)이 3사(三舍)를 물러갔으니,141) 감응(感應)의 이치는 밝고 밝아 어긋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 3기(三紀)142) 동안 근심하고 부지런하시며 한마음으로 대월(對越)하셨는데, 이로 말미암아 쇠잔함을 일으키고 어지러움을 진정(鎭定)하셨으니, 우리 나라는 거의 다스려지는 데 가깝게 되었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처음에 부지런한 것이 혹 끝에 가서 게을러지기도 하고, 잠시 동안 두려워하던 것이 오랫동안 버티기 어려워지기도 하니, 원컨대 전하께서는 분발하고 힘 쓰시어 혹시라도 퇴전(退轉)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영명(永命)을 빌고 아름다움을 맞이하는 계획을 삼으며, 시조(施措)하는 사이에 미루어 베푼다면 또한 근본을 굳게 정하고 사공(事功)을 발휘할 것입니다. 사람을 쓰시되, 각각 그 장점을 취하여 재식(才識)이 드러나고 나랏일에 마음을 다하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맡기실 것이며, 말을 들으시되 먼저 그 마음을 살펴 지극한 정성에서 나와 성상의 마음을 거스리는 것을 넓게 받아 들이소서. 삼가 성헌(成憲)을 지키시되 오래되어 폐단이 생긴 것은 고치시고, 폐지되어 시행되지 아니하는 것은 개선하며 법령(法令)을 밝게 신칙하시어 정사(政事)에 해로운 것은 혁파해 변통하고 백성에게 편리한 것은 결단코 시행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직임은 반드시 구임(久任)하게 하되, 형정(刑政)과 재정(財政)을 관장하는 자는 재능에 따라 택차(擇差)하여 그 성과를 책임지우소서. 외관(外官)도 또한 자주 천직(遷職)시키지 말고, 번얼(藩臬)을 안찰(按察)하는 자는 적당한가를 헤아려 목사(牧使)를 겸임케 해 그 업적을 드러나게 해야 할 것이니, 이것은 모두 오늘날의 긴요한 일입니다. 요사이의 사람쓰는 것은 전적으로 과제(科第)와 문벌(門閥)에다 떠맡기고, 또 붕당(朋黨)과 호오(好惡)의 편벽됨이 있으니, 그 재주를 구하는 데 있어서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오직 공경(公卿)과 시종(侍從)만을 신중히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외방의 번곤(藩閫)과 수령의 현부(賢否)도 마땅히 상세히 살펴서 초빙해야 할 것입니다. 음로(陰路)의 초사(初仕)와 과목(科目)의 신진(新進)에 이르러서도 또한 반드시 그 조세(祖世)와 인품이 어떠한가를 두루 물어본다면, 빠트려지거나 숨는 무리가 없을 것이고 다스리는 도구가 갖추어질 것입니다. 무릇 사람의 재주에는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만약 그 재주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주어서 맡긴다면, 비록 자세히 물어서 조사하고 널리 찾는다 한들 또한 치도(治道)에 무슨 보탬이 있겠습니까? 요(堯)임금의 성스러움으로도 사람을 알아보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순(舜)임금의 덕으로도 반드시 그 총명함을 일컬었습니다.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영예(英睿)한 성품을 타고 나시어 여러 신하들의 현우 충사(賢愚忠邪)와 온갖 말의 시비 득실(是非得失)을 아래로 임하셔서 빠짐없이 두루 통촉하시니, 거의 숨길 정상이 없습니다. 단지 성지(聖志)가 서지 못하여 능히 대유(大猷)로 올라갈 수 없음을 걱정할 따름입니다. 성지가 이미 서고 또 능히 어진이를 들어서 쓰며 유능한 사람에게 맡긴다면, 나라를 다스림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또 대저 당비(黨比)의 논(論)은 폐습(弊習)이 이미 고질이 되었으니, 오직 건극(建極)을 주로 삼으시어, 색목(色目)이 어떠한가를 논하지 말고 그 재주를 가려서 간국(幹局)에 따라 일을 맡기소서. 죄가 있으면 죄를 주되, 쓰고 버림과 상과 벌을 줌이 이미 명백하고 정당하다면 군하(群下)에서 어찌 감히 당을 짓겠습니까? 이와 같이 한다면 보합(保合)하여 크게 화평(和平)해지는 것은 비록 바랄 수 없다 하더라도, 마음을 같이하여 서로 돕는 데에는 반드시 정공(靖共)143) 의 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구임(久任)하는 한 가지 일은 마땅히 추조(秋曹)·경조(京兆)·장례원(掌隷院) 등의 여러 아문(衙門)에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당상의 많은 관원을 비록 수를 정하여 구임케 할 수는 없었으나, 조무(曹務)를 재단(裁斷)하는 것은 오로지 장관(長官)에게 있으므로 형판(刑判)·경윤(京尹)·판결사(判決事)는 스무 달로 한정하고, 추조랑(秋曹郞)은 일찍이 1주년(一周年)을 기한으로 하였는데, 마땅히 경조·장례원의 여러 낭관(郞官)과 더불어 아울러 모두 2주(二周)로 정하여 비록 대정(大政)을 당하더라도 한두 인원으로 가장 오래된 자를 제외하고는 가볍게 옮기지 말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피연(罷軟)144) 하여 감당하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당상관이 아뢰어 체직시켜, 택차(擇差)하며 염근(廉勤)하여 직임에 알맞다고 드러나게 일컬어지는 자를 전조(銓曹)에서 따로 우직(右職)145) 에 서용하여 그 재능을 장려할 것입니다. 호조랑(戶曹郞) 및 병조의 군색(軍色)은 스무 달로 한정해 서리(胥吏)가 간사하게 좀먹는 것을 막고 관조(官曹)의 사무를 익히게 할 것입니다.

이 외에 각사(各司)의 낭속(郞屬) 각 1원(員)을 고제(古制)에 의해 상관(上官)으로 하여금 따로 가려서 주의(注擬)하거나 자벽(自辟)146) 하여 모두 스무 달로 정하며, 여러 구임하는 사람을 아울러 계하(啓下)하게 하여 천동(遷動)하지 말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청컨대 이 뜻을 전조에 신칙하소서. 이른바 ‘번얼(藩臬)을 적당한가를 헤아려서 목사(牧使)를 겸임하게 한다.’는 것은, 해서(海西)는 이미 목사를 겸하게 하였지만 호서(湖西)는 일찍이 목사를 겸하게 하였다가 8, 9년이 지난 뒤 도로 혁파하였으므로, 식자들이 한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전의 규례를 살피고 다시 상량(商量)을 더해 장문(狀聞)하게 한 뒤에 품처(稟處)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또 외방(外方)을 염찰(廉察)하는 데 수의(繡衣)만한 것이 없으니, 재해가 든 해에는 나누어 보내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팔도에 다 보낼 필요는 없고, 많은 수를 추생(抽栍)147) 할 필요도 없으며, 동시에 함명(銜命)148)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잇달아 발송(發送)하여 먼 외방으로 하여금 항상 두려워 징계하는 마음을 품도록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누누이 계회(戒誨)하여 말이 몹시 간절하고 지극하니, 깊이 감탄한다. 가히 유의(留意)하지 않겠는가? 수의(繡衣)가 염문하는 것은 내 뜻도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구임(久任)과 목사(牧使)를 겸임하는 등의 일은 마땅히 다른 대신과 더불어 의논해 처리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45권 59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276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137]
    상곡(桑穀)의 변이(變異) : 은(殷)나라 9대 임금이 태무(太戊:중종(中宗)) 때 뽕나무와 닥나무가 대궐뜰에 같이 나서 하루 밤 사이에 한아름이나 크는 괴변(怪變)이 있자, 태무가 이척(伊陟)의 말을 듣고 선왕(先王)의 정사(政事)를 본받아, 임금의 덕(德)을 닦은 지 이틀 만에 두 나무가 말라 죽었다는 고사(故事).
  • [註 138]
    가정(嘉靖) : 잘 다스려 편안하게 함.
  • [註 139]
    운한(雲漢)의 재앙 : 주(周)나라 11대 임금인 선왕(宣王)이 선왕(先王)인 여왕(厲王)의 실정(失政)을 바로잡을려는 뜻을 품고, 심한 가뭄을 당해서 두려워하고 걱정하며 덕행(德行)을 닦아 재변을 사라지게 하려고 하자. 백성들이 왕화(王化)의 재현(再見)을 기뻐하였다는 고사.
  • [註 140]
    광복(光復) : 구업을 다시 회복함.
  • [註 141]
    송(宋)나라경공(景公)이 군인(君人)의 말을 하자 형혹성(熒惑星)이 3사(三舍)를 물러갔으니, : 송(宋)나라 경공(景公) 때 형혹성이 심성(心星)을 침범하자 경공이 이를 근심하여 덕(德) 닦는 말 세 가지를 하였더니, 형혹성이 3사(三舍)를 옮겨 물러갔다는 고사.
  • [註 142]
    3기(三紀) : 36년.
  • [註 143]
    정공(靖共) : 삼가 힘씀.
  • [註 144]
    피연(罷軟) : 피곤하고 연약 함.
  • [註 145]
    우직(右職) : 현직보다 높은 벼슬.
  • [註 146]
    자벽(自辟) : 명관이 자기 뜻대로 관원을 추천 임명함.
  • [註 147]
    추생(抽栍) : 제비를 뽑음.
  • [註 148]
    함명(銜命) : 사명(使命)을 받들고 지방에 나가는 것.

○領議政崔錫鼎上疏, 以災異陳戒曰:

商宗遇桑穀之異, 而嘉靖邦, 宣王《雲漢》之災, 而光復道, 宋景有君人之言, 而熒惑退舍, 感應之理, 昭昭不差。 惟我殿下, 三紀憂勤, 一心對越, 由是而興衰撥亂, 吾國其庶幾乎! 然勤於始者, 或怠於終, 惕於暫者, 難持於久。 誠願殿下, 奮發振勵, 無或退轉, 以爲祈命迓休之圖, 推諸施措之間, 亦必堅定根本, 發揮事功。 用人各取其長, 而才識茂著, 盡心國事者, 任之專; 聽言先察其心, 而出於至誠, 逆于上心者, 受之弘。 謹守成憲, 而久而生弊者理之, 廢而不擧者修之, 明勑法令, 而害政者革而通之, 便民者斷而行之。 要職必令久任, 而掌刑財者, 隨材擇差, 以責其成。 外官亦勿數遷, 而按藩臬者, 量宜兼牧, 俾著其績, 是皆當今之要務也。 今之用人, 專責於科第、門閥, 又有朋黨好惡之偏焉, 其於求才, 不亦難乎? 不惟公卿、(待)〔侍〕 從爲可愼擇也, 外之藩閫、守令之賢否, 宜在詳延。 至於蔭路之初仕, 科目之新進, 亦必詢問其祖世、人品之如何, 則物無遺隱, 而治具張矣。 凡人之才, 各有長短, 苟不量其材而授任, 則雖審問而博訪, 亦何補於治道哉? 以之聖, 其難於知人, 以之德, 必稱其聰明。 惟我殿下, 英睿性得, 群臣之賢愚忠邪, 衆言之是非得失, 下臨旁燭, 殆無遁情, 而獨患夫聖志不立, 不能允升於大猷耳。 聖志旣立, 又能擧賢任能, 則於爲國乎何有! 且夫黨比之論, 弊習已痼, 惟以建極爲主, 勿論色目之如何, 擇其才而器使, 有罪則罪之, 用捨賞罰, 旣明且正, 群下何黨之敢爲? 如是則保合太和, 縱不可望, 協輔共濟, 必有靖共之益矣。 久任一事, 宜自秋曹、京兆、掌隷諸衙門, 始。 堂上多官, 雖不得定數久任, 曹務裁斷, 專在長官, 刑判、京尹、判決, 以二十朔爲限, 秋曹郞曾限一周, 宜與京兆、掌隷諸郞, 竝皆定以二周, 雖値大政, 一二員最久者外, 勿爲輕遷。 如有罷軟不堪者, 堂上啓遞擇差, 其以廉勤稱職著稱者, 銓曹另敍右職, 以奬其能。 戶曹郞及兵曹軍色, 限二十朔, 以防吏胥奸蠧, 以習官曹事務。 此外各司郞屬各一員, 依古制令上官另擇, 通擬注自辟字, 皆定十二朔, 諸久任人, 竝令啓下, 勿爲遷動。 請以此意, 申飭銓曹。 所謂藩臬, 量宜兼牧云者, 海西則已令兼牧, 湖西曾已兼牧, 八九年而還罷, 識者恨之。 宜令道臣, 按其前規, 更加商量, 狀聞後稟處。 且外方廉察, 莫如繡衣, 災歲不可不分遣, 不必盡送八路, 不必多數柚栍, 又不必同時銜命。 只可連續發送, 使遠外, 恒懷畏戢可矣。

答曰: "縷縷戒誨, 言甚切至, 深用感歎。 可不留意焉? 繡衣廉問, 予意亦然。 久任兼牧等事, 當與他大臣議處。"


  • 【태백산사고본】 52책 45권 59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276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