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잠의 상소 등을 친국하기로 하다
이날 밤 임금이 인정문(仁政門)에 나아가 전좌(殿坐)364) 하고 국문(鞫問)에 참여하는 신하들이 차례로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분부하기를,
"인심(人心)·세도(世道)가 날로 더욱 어지러워져서 해괴한 상소가 전후에 잇달았다. 임부(林溥)를 이제 막 참착하여 정배(定配)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이잠(李潛)의 상소가 있었는데, 좌우전후에서 춘궁(春宮)에게 칼날을 들이댄다는 따위의 말을 방자하게 소 가운데에 쓰기까지 하여, 반이 넘는 조정(朝廷) 사람들을 모두 망측한 죄로 몰아 넣는 것이 마치 고변서(告變書)와 같으니, 어찌 통탄스럽지 아니한가? 효종(孝宗) 때에 서변(徐忭)이라는 자가 망측한 소를 바쳤는데, 효종께서 진노하시어 또한 친국(親鞫)하여 처단하셨다. 내가 이들에 대하여 명백히 사핵(査覈)하여 통렬하게 다스리지 않는다면, 장차 나라는 나라답지 않고 조정은 조정답지 않게 될 것이므로, 내가 바야흐로 친국하려 한다."
하자,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이 말하기를,
"신(臣)은 미처 이잠의 소를 보지 못하였으므로, 그 말뜻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제 상교(上敎)를 받자오니, 어찌 인심·세도가 이토록 극심하게 될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원소(原疏)를 내려서 문목(問目)을 뽑아 낼 바탕으로 삼게 하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원소를 내어 주고 금오 당상(金吾堂上)에게 명하여 상의해서 문목을 내게 하였다. 이잠이 납초(納招)할 때 말이 도리에 어그러지고 패려궂으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죄인이 지극히 방자하다. 내 앞에서도 도리어 이러하니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이러한 놈은 내가 참으로 처음 보았다. 각별히 엄하게 형신(刑訊)하라."
하고, 이어서 하교(下敎)하기를,
"두 정승의 본심을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니나, 잘못이 큰 자는 죄가 크고 잘못이 작은 자는 죄가 작다. 신사년365) 에 변이 일어난 뒤 양사(兩司)에서 두 신하를 추론(追論)하여 부처(付處)하기에 이른 것은 실로 참작한 데서 나온 것이다. 그때 논계(論啓)한 사람은 본디 춘궁에게 칼날을 들이대는 데 관계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내가 살아 있을 때에도 사악한 논의가 오히려 이러하니, 뒷날의 화(禍)를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살아 있지 않게 된 뒤라면 제주(濟州)의 죄인 유항(柳沆) 같은 무리가 뒤를 이어 일어나서 반드시 역신(逆臣) 장씨(張氏)를 신구(伸救)하고야 말려 할 것이니, 신사년의 옥사가 어떠한 곳으로 돌아갈지 모르겠으되 뒷날에 반드시 화근(禍根)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반드시 죽여 용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이번 친국은 후환(後患)을 막기 위한 것이다. 또 소 가운데다 옥사(獄事)를 안문(按問)한 대신(大臣)을 나문(拿問)하기를 청하지 않은 것을 말하였다. 대신은 반역이 아니면 국문(鞫問)할 수 없는데, 반드시 망측한 곳으로 몰아 넣으려 하니, 이것은 참으로 무슨 마음인가? 그가 한 짓을 따져 보건대 너무나도 흉참(凶慘)하다. 내가 살아 있을 때에 어찌 감히 이러한 말을 방자하게 아뢸 수 있는가?"
하였다. 신문(訊問)할 때 임금이 말하기를,
"죄인을 각별히 엄하게 형신하라는 명을 이제 막 내렸는데, 집장(執杖)한 나장(羅將)이 신장(訊杖)을 칠 때 되도록 가볍게 하는 정상이 뚜렷이 있으니, 매우 놀랍다. 유사(攸司)를 시켜 가두어 죄주게 하라."
하였다. 이잠이 한 차례 형신을 받고도 승복하지 않으니, 우선 친국을 파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1책 44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229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친(宗親)
○是夜, 上出御仁政門殿坐, 參鞫諸臣, 以次入侍。 上敎曰: "人心、世道, 日益壞亂, 怪駭之疏, 前後相繼。 林溥纔已參酌定配, 曾未幾何, 又有此李潜之疏, 至以左右前後, 向刃春宮等語, 肆然筆之於疏中, 過半朝廷之人, 一倂驅入於罔測之科, 有同變書, 豈不痛哉? 孝廟朝有徐忭者, 投進罔測之疏, 孝廟震怒, 亦嘗親鞫處斷。 予於此輩, 若不明覈痛治, 則將至於國不爲國, 朝廷不爲朝廷, 故予方親鞫矣。" 領議政崔錫鼎曰: "臣未及見李潜疏, 故不知其語意之如何矣, 今承上敎, 豈料人心、世道之至於此極耶? 請下原疏, 以爲招出問目之地何如?" 上出給原疏, 命金吾堂上, 相議出問目。 潜納供之際, 言辭悖慢, 上曰: "罪人極爲放恣。 在予前尙如此, 何所不爲? 如許之漢, 予實初見矣。 各別嚴刑。" 仍下敎曰: "兩相本心, 予非不知, 而誤之大者罪大, 誤之小者罪小。 辛巳變起之後, 兩司追論兩臣, 至於付處, 實出參酌。 其時論啓之人, 元不係於向刃春宮, 何可以此爲言? 予之在時, 邪論猶尙如此, 日後之禍, 何可勝言? 若予不在之後, 則如濟州罪人柳沅之徒, 接迹而起, 必欲伸救逆張而後已, 辛巳之獄, 未知歸諸何地, 而他日必爲禍根矣。 如此之人, 必誅罔赦。 今玆親鞫, 爲防後患。 且其疏中, 以按鞫大臣, 不爲請拿爲言。 大臣非逆, 則不可鞫問, 而必欲驅入於罔測之地, 是誠何心? 迹其所爲, 萬萬凶慘。 予之在時, 豈敢以如此等語, 肆然仰達乎?" 訊問時, 上曰: "纔下罪人, 各別嚴刑之命, 而執杖羅將, 訊杖之際, 顯有從輕之狀, 極爲痛駭。 令攸司, 囚禁科罪。" 潜受一次刑不服, 命姑罷親鞫。
- 【태백산사고본】 51책 44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229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