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 42권, 숙종 31년 8월 23일 갑인 1번째기사
1705년 청 강희(康熙) 44년
권상유·김만채·조도빈·김창흡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상유(權尙游)를 전라도 관찰사로, 김만채(金萬埰)를 대사간으로, 조도빈(趙道彬)을 헌납으로, 김창흡(金昌翕)을 익위(翊衞)로 삼았다. 김창흡은 고(故) 상신(相臣) 김수항(金壽恒)의 세째 아들로서, 천분(天分)이 매우 높고 시명(詩名)이 세상에 으뜸이었는데, 감시(監試)에 입격한 뒤로는 관리가 되는 학업을 일삼지 않았다. 성품이 아름다운 산수(山水)를 사랑하므로, 짚신에다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며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는데, 경치가 좋은 곳을 만날 때마다 문득 읊조리고 머뭇거리며 오랫동안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 처음에는 선가(仙家)·불가(佛家)의 서적을 보기를 좋아하였으므로, 세상에서 속세를 벗어나 숨어 사는 선비로 지목하였으나, 늦게는 그 중형(仲兄) 김창협(金昌協)과 함께 학문에 종사하여 조예가 정통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난형난제(難兄難弟)라 일컬었다. 아버지의 비명(非命)을 상심하여 소식(素食)한 것이 거의 10여 년이었으니, 지극한 성품이 이러하였다. 주부(主簿)·좌랑(佐郞) 세자 서연관(世子書筵官) 등에 천거되었으나 다 취직하지 않았다. 스스로 호를 삼연자(三淵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9책 42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16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