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틀리게 하고 역서를 개정하게 한 역관(曆官)을 정배시키다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引見)하였다. 당초에 서로(西路)의 적곡(糴穀)에 축난 것이 많으므로, 유망(流亡)하거나 절호(絶戶)된 것은 탕척(蕩滌)하라는 명이 있었으나, 그때의 수령(守令)들이 이에 따라 터무니없이 수를 불려 탕감(蕩減)하였다. 그 수가 많아 30여만 석(石)이나 되었으므로 조정에서 다시 사핵(査覈)하게 하였더니, 각 고을에서 게을리하여 끝까지 사핵하지 않고, 늘거나 준것이 없다고 첩보(牒報)한 자가 31인이나 되는 많은 수에 이르렀다. 경은 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이 전에 순안(順安)을 맡았을 때에 또한 감사(監司)의 장문(狀聞) 가운데에 들어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우의정 이유(李濡)가 아뢰기를,
"이것은 사유(赦宥) 이전의 일에 관계되니, 한결같이 아울러 나문(拿問)을 청할 수 없으나, 또한 파직(罷職)·추고(推考)로만 그칠 수도 없습니다. 청컨대 입시(入侍)한 신하들에게 물으소서."
하였다. 판윤(判尹) 민진후(閔鎭厚)가 참작하여 죄를 정하기를 청하고, 병판(兵判) 유득일(兪得一)은 말하기를,
"신하의 죄는 속이는 것이 중대한 것이 되니, 어찌 추고하고 말 수가 있겠습니까?"
하였으나, 임금이 답하지 않았다. 유득일이 사계(査啓)를 찾아 보고 비로소 놀라 말하기를,
"문부(文簿)에 적힌 것이 매우 많아서 상세히 살필 수 없으니, 어찌 황공함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국구(國舅)의 체모는 대신(大臣)과 같은데, 어찌 다른 사람과 같이 논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국구도 나문을 청하거나 파직을 청한 전례가 있는가? 끝내 구별하지 않고 혼동하여 죄를 청하니, 매우 미안하다. 논하지 말라."
하였다. 이유가 말하기를,
"사계 가운데에 있는 수령들도 모두 논하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논하지 말라고 명하였는데, 어찌 다시 말하는가?"
하고, 또 말하기를,
"병판은 사계를 가져다 본 뒤에 비로소 운운하였고, 당초에는 조금도 구별한 일이 없었다. 대신이 어찌하여 이러한가? 대신도 또한 미안하다. 이 일은 계하(啓下)326) 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비국의 여러 신하들이 반드시 살펴보았을 것인데, 유득일의 말은 이제 비로소 볼 수 있었던 듯이 하니, 매우 정직하지 못하다. 종중 추고(從重推考)하라."
하였다. 이유도 또한 대죄(待罪)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죄하지 말라."
하였다. 이에 앞서 올 을유년327) 의 역서(曆書)가 완성되었는데, 청국(淸國)의 역서가 나오자 11월·12월의 대소(大小)가 서로 틀리므로, 본감(本監)에서 아뢰어 해당 역관(曆官)을 가두고 다시 산술(算術)에 밝은 자를 시켜 두세 번 계산하게 하였더니, 역관들이 ‘모두 해당 관원들이 추산(推算)한 것과 같고, 조금도 착오가 없다.’ 하므로, 본감에서 해당 관원을 석방하기를 청하고, 이어서 우리 나라의 역사를 반행(頒行)하기를 청하였다. 그 뒤에 역관들이 다시 말하기를,
"전일 부경(赴京)하여 산법(算法)을 배운 관원이 남겨둔 사본(寫本) 한 책에는 지두(紙頭)에 잔 글씨 두어 줄이 있었는데, 곧 이른바 연근(年根)이었으며, 4궁(宮)에서 비는[空] 9도(度)를 더하여 다음해의 연근을 만들었습니다. 시험삼아 이 방법으로 추산하였더니, 각년(各年)의 연근이 모두 꼭 들어맞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올해의 연근에 이르러서도 이 방법으로 견주어 보았더니, 2궁에서 10공도(空度)였는데, 본감의 《문자책(文字冊)》에 인쇄된 것은 2궁 14도였습니다. 10공도로 올해에 견주면 청력(淸曆)과 과연 서로 들어맞는데, 공자(空子) 4자(字)가 서로 어긋나므로 대월(大月)·소월(小月)이 같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므로, 본감에서 이 뜻으로 다시 아뢰고, 또 말하기를,
"책자를 가져다 살펴보았더니, 과연 그 말과 같았습니다. 이른바 《문자책》이란 곧 서양(西洋)의 신법(新法)인 일전표(日躔表)·월리표(月離表)인데, 갑오년328) 에 배워 올 때에 한 건(件)을 사 와서 인간(印刊)하여 전한 것입니다. 그 지두에 쓴 것은 곧 산법(算法)에서 임시로 빼 놓은 것인데, 그때 배워 온 관원이 미처 본책 가운데에 인간하여 넣지 못하였으므로, 4자가 잘못 인쇄되게 하였습니다. 역관들이 구습에 따라 추보(推步)하여 이토록 착오가 나게 하였다면, 이것은 태만하여 잘못 계산한 따위는 아니고, 해당 관원이 깊이 연구하지 못한 것인 듯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 잘못된 것을 알았으니, 11월·12월 장(張)은 제때에 미쳐 개정(改正)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어(進御)한 삼력일과(三曆日課)는 도로 내려 고쳐서 인쇄해 들이고, 대월·소월은 청력에 따라 시행한다는 뜻을 해조(該曹)로 하여금 팔도에 행회(行會)329) 하게 하소서. 그리고 《문자책》의 진본(眞本)도 청컨대 이번의 절사(節使)가 갈 때 산법을 조금 잘 아는 자를 들여보내 사 오게 하여 바로잡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그 뒤에 승지(承旨) 허지(許墀)가 말하기를,
"역법은 관계가 지극히 중대하므로 정밀하게 추산하여 착오가 없게 하는 것이 그 직분입니다. 청력이 나와서야 비로소 서로 다른 것을 깨닫고 조정에서 추문(推問)하였으며, 정밀하게 그 도수(度數)를 연구하여 《문자책》이 잘못 인간되었는지를 밝혀야 할 것인데, 추산이 틀리지 않았다 하여 도리어 청력이 틀렸다 하였습니다. 이제 신력(新曆)을 만들어 내어 진위(眞僞)를 엄폐할 수 없는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운운하였는데, 실정이 어떠한지를 물론하고 막중한 역사를 틀리게 하고, 어람(御覽)하는 역서까지도 이렇게 고치는 일이 있었으니, 어찌 죄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당해 관원을 청컨대 유사(攸司)를 시켜 죄주게 하소서."
하니, 장(杖) 80에 수속(收贖)하는 율(律)로 감죄(勘罪)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예조 판서 윤세기(尹世紀)가 아뢰기를,
"역관(曆官)들이 전후에 말한 것이 크게 서로 어그러지니, 임시변통으로 둘러대어 그 삼가지 않은 것을 엄폐하려는 정상을 끝내 피할 수 없습니다. 《서경(書經)》에 실려 있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역상(曆象)330) 하여 공경히 사람들에게 때를 알려 주라.’ 하고, ‘희화(羲和)331) 가 그 직분을 다하지 못하여 천상(天象)에 혼미하니, 제때에 앞서게 한 자도 죽여 용서하지 않고, 제때에 미치지 못하게 한 자도 죽여 용서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보면, 그 죄가 매우 무거우므로 가벼운 벌에 그칠 수 없습니다. 또 개인(改印)하여 반포하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니, 중률(重律)로 논해야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대신에게 물었다. 이유(李濡)가 참작하여 도배(徒配)하기를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민진후(閔鎭厚)가 말하기를,
"개인적으로 진휼(賑恤)한 강승석(姜承碩) 등이 8백여 인을 완전히 살렸으니, 논상(論賞)해야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전례를 살펴서 품처(稟處)하라고 명하였다. 민진후가 또 말하기를,
"이여매(李如梅)는 임진년332) 에 흠차 의주 진수 참장(欽差義州鎭守參將)으로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을 따라 오고, 정유년333) 에도 다시 와서 형제가 다 재조(再造)한 공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자 이성룡(李成龍)이 요하(遼河)의 싸움 때에 우리 나라에 와서 의탁한 것은 국가에서 그 선조를 생각하여 감싸 주기를 바란 것입니다. 이제 우리 성상께서 능히 큰 의리를 밝히시는 때이니, 그 종손(宗孫)을 돌보아 대대로 사용(司勇) 한 체아(遞兒)를 주고, 중손(衆孫) 가운데서 한 사람은 재주에 따라 등용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풍성(風聲)을 세우는 정사에 빛이 있을 듯합니다."
하고, 이유도 말하니, 임금이 기뻐서 따랐다. 민진후가 또 말하기를,
"이지함(李之菡)을 포증(褒贈)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드디어 의정(議政)을 증직(贈職)하였는데, 이지함은 호가 토정(土亭)으로서 선조(宣祖) 때에 이름난 사람이다. 민진후가 또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의 억울함을 추신(追伸)하여 그 관작(官爵)을 회복시키기를 청하니, 임금이 어렵게 여기고 대신에게 물으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9책 42권 5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159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재정-국용(國用) / 과학-역법(曆法) / 외교-야(野) / 인사-관리(管理) / 구휼(救恤)
- [註 326]계하(啓下) : 신하가 계청(啓請)한 문서를 임금이 보고 결재하여 내리는 것. 이때에 반드시 계청한 대로 재가하는 것은 아니고, 검토 또는 수정을 명하는 글을 써서 내리기도 하였는데, 이것을 유서 계하(有書啓下)라고 하였음.
- [註 327]
을유년 : 1705 숙종 31년.- [註 328]
갑오년 : 1645 효종 5년.- [註 329]
행회(行會) : 공문을 보내어 알림.- [註 330]
역상(曆象) : 역을 추산하고 천체를 관측함.- [註 331]
희화(羲和) : 희씨(羲氏)와 화씨(和氏). 요(堯)임금 때 천지 사시(天地四時)를 다스려 온 가문(家門)의 사람들임.- [註 332]
임진년 : 1592 선조 25년.- [註 333]
정유년 : 1597 선조 39년.○壬寅/引見大臣。 備局諸臣。 初, 西路糴穀, 多逋欠, 有流亡絶戶蕩滌之命。 其時守令, 因此虛張蕩減, 其數多至三十餘萬石。 朝家使之更査, 則各邑慢不究覈, 以無加減牒報者, 至於三十一人之多。 慶恩府院君 金柱臣, 以曾任順安, 亦在監司狀聞中。 至是, 右議政李濡啓曰: "此係赦前事, 有難一倂請拿, 亦不可罷職推考而止。 請問于入侍諸臣。" 判尹閔鎭厚請參酌定罪, 兵判兪得一曰: "人臣之罪, 欺瞞爲重, 何可推考而止?" 上不答。 得一搜見査啓, 始驚曰: "簿書浩多, 不能詳察, 豈勝惶恐? 國舅體貌與大臣同, 何可與他同論乎?" 上曰: "國舅有請拿請罷之例乎? 終不區別, 混同請罪, 殊甚未安。 勿論。" 濡曰: "査啓中守令, 竝勿論乎?" 上曰: "旣命勿論, 更何云乎?" 又曰: "兵判取見査啓之後, 始有云云, 當初少無區別之事。 大臣何乃如此? 大臣亦未安矣。 此事啓下已久, 備局諸臣, 必已考見, 而兪得一之言, 有若今始得見者然, 殊甚不直。 從重推考。" 濡亦待罪, 上曰: "勿待罪。" 先是, 今乙酉曆書旣成, 淸國曆書出來, 則十一月、十二月大小, 與之相左。 本監以此啓達, 囚禁當該曆官, 更令算術精明者, 再三叩算, 則曆官等以爲: "一如該官等所推算, 少無差謬" 云, 本監請釋該官, 仍請以我國曆書頒行矣。 其後曆官等, 復以爲: "求得往日赴京學算官遺置寫本一冊, 則紙頭有細字數行, 卽所謂各年年根, 而以四宮空九度加之, 爲次年年根。 試以此法而推算, 則各年年根, 無不脗合。 至於今年年根, 以此法較之, 則二宮十空度, 而本監《文字冊》所印, 則二宮十四度也。 以十空度, 較諸今年與淸曆, 果爲相符。 空字四字相左, 致有大小月之不同" 云。 本監以此意更啓, 且曰: "取考冊子, 果如其言。 所謂《文字冊》者, 乃西洋新法日躔表月離表, 而甲午年學來時, 貿得一件刊傳者也。 其紙頭所書, 卽算法假令之遺漏者, 而其時學來之官, 未及刊入于本冊中, 致有四字之誤印, 而曆官輩, 因循推步, 以致差誤至此, 則此非怠慢誤算之比。 當該官似不深究, 而旣知其誤, 十一月、十二月張, 不可不及時改正。 進御三曆日課, 還下改印以入, 大小月從淸曆施行之意, 令該曹, 行會八道。 《文字冊》眞本, 請於今番節使時, 入送稍解算法者, 貿來釐正。" 從之。 其後, 承旨許墀以爲: "曆法關係至重, 精加推算, 俾無差謬者, 乃其職耳。 淸曆出來, 始覺其相左, 自朝家推問, 則所當精究其度數, 以驗《文字冊》之誤刊與否, 而謂之推算不差, 反謂淸曆之差謬。 今當新曆造出, 眞僞難掩之日, 始有所云云, 無論情實之如何, 莫重曆書, 致令差謬, 至於御覽曆書, 有此改修之擧, 烏得無罪? 當該官, 請令攸司科罪。" 乃勘以杖八十收贖之律。 至是, 禮曹判書尹世紀啓曰: "曆官輩前後所言, 大相違拂, 其彌縫周遮, 欲掩其不謹之狀, 終無所逃。 以《書傳》所載曆象日月星辰, 敬授人時, 與羲和尸厥官, 昏迷天象, 先時者, 殺無赦, 不及時者, 殺無赦之義觀之, 其罪甚重, 不可薄罰而止。 且改印頒布, 曾所未有之擧也。 似當論以重律。" 上問大臣。 濡請參酌徒配, 從之。 鎭厚言: "私賑人姜承碩等, 全活八百餘人, 宜論賞。" 上命考例稟處。 又言: "李如梅, 壬辰以欽差義州鎭守參將, 隨提督如松而來, 丁酉再來, 兄弟俱有再造之勳。 其孫成龍, 遼河之戰, 來托我國, 冀朝家之念其先庇護之也。 今我聖上, 克明大義之日, 宜加撫恤其宗孫, 世付司勇一遞兒, 衆孫中一人, 隨才錄用, 則似有光於樹風聲之政矣。" 濡亦以爲言, 上悅從之。 鎭厚又言: "當褒贈李之菡", 遂贈議政。 之菡, 號土亭, 宣祖朝聞人也。 鎭厚又請追伸皇甫仁、金宗瑞之冤, 復其官爵, 上重之, 命問于諸大臣。
- 【태백산사고본】 49책 42권 5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159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재정-국용(國用) / 과학-역법(曆法) / 외교-야(野) / 인사-관리(管理) / 구휼(救恤)
- [註 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