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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41권, 숙종 31년 2월 12일 병자 1번째기사 1705년 청 강희(康熙) 44년

존호를 올리는 일을 허락해 줄 것에 대한 왕세자의 상소문

왕세자(王世子)가 상소하기를,

"삼가 신(臣)이 용렬하고 어리석은 자질로 외람되게 저위(儲闈)086) 를 욕되게 하고 있으니, 깊은 못에 가서 엷은 얼음을 밟듯 밤낮으로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학식이 무디고 거칠기는 하지만 오히려 한 부분 떳떳한 도리를 굳게 지키는 천성이 있어 어리석은 마음에서 격동하는 바를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여 만 번 죽을 것을 무릅쓰고 우러러 면류관(冕旒冠) 아래에 진달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쾌히 존호(尊號)를 올리는 일을 시행하도록 허락해 주소서. 신이 지난 역사를 상고하여 보니, 역대 제왕(帝王)이 이미 칭경(稱慶)한 이야기가 많았으며, 우리 조정에 이르러서도 이미 시행한 전례(典禮)가 있었습니다. 우러러 생각하건대 성상께서는 총명하고 밝은 지혜로서 여러 조정에서 빠뜨린 전례를 모두 시행하셨습니다. 오직 밝고 밝은 상천(上天)과 거룩하신 조종(祖宗)께서 묵묵히 성궁(聖躬)을 도와 계속 한없는 경사를 내리시니, 왕위에 오르신 지 32년 동안에 몸소 태평시대를 이루어 팔도(八道)가 평온하고 백성들이 생업에 편안한지라 이는 실로 옛날에도 드물었던 것입니다. 앞서 일찍이 조정에 있던 신하들이 진청(陳請)하였고 재야(在野)의 신하들이 서로 잇달아 봉장(奉章)하였으나 성상의 비답이 겸양하여 끝내 윤허하지 않으시니, 신은 이에 번민하고 답답함이 지극함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 군부(君父)를 존숭(尊崇)하는 것은 신자(臣子)의 지극한 심정으로,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 여러 신하들의 우러러 바라는 심정을 굽어 따르신다면, 종묘 사직이 매우 다행이겠으며 신민(臣民)에게도 매우 다행스럽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너의 상소한 내용을 보니 비록 자식이 지극한 심정에서 나오기는 하였으나, 다만 생각해보건대 칭경(稱慶)하는 것이 어떤 예(禮)이며 또 오늘날이 어떤 때인가? 재이(災異)는 거듭 이르고 국세(國勢)는 위태롭다. 백성들의 곤궁함은 나의 적은 덕(德)에 연유하지 않음이 없으니 두려워 떨며 금의(錦衣)·옥식(玉食)도 편안하지 않다. 생각하건대, 내가 무슨 마음으로 안락을 누리며 즐기는 일을 하겠는가? 결단코 따를 수 없다."

하였다. 승정원(承政院)의 계품(啓稟)으로 인하여 승지(承旨)에게 비답을 전하도록 명하였는데, 왕세자(王世子)성정각(誠正閣)에 있다가 뜰에서 내려와 꿇어앉아서 비답을 받고 승지를 머물게 하여 주찬(酒饌)을 내려 주었다.


  • 【태백산사고본】 48책 41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13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註 086]
    저위(儲闈) : 세자(世子)의 자리.

○丙子/王世子上疏曰:

伏以臣庸質不敏, 冒叨儲闈, 臨淵履氷, 夙夜憂懼。 且學識魯莾, 而猶有一端秉彝之性, 愚衷所激, 不能自抑, 冒萬死仰陳於冕旒之下。 伏願聖明, 夬賜許施焉。 臣考諸前史, 歷代帝王, 已多稱慶之說, 而至於我朝, 亦有已行之典。 仰惟聖上, 以聰明睿智, 累朝闕典畢擧。 惟明明上天, 於皇祖宗, 默佑聖躬, 降之秩秩, 無疆之休, 臨御三十有二年, 身致太平, 八路寧謐, 黎民安業, 此實前古罕有也。 曾前在廷之臣陳請, 在野之臣, 相繼封章, 聖批撝謙, 終不允兪, 臣於此, 不勝悶鬱之至。 噫! 尊崇君父, 臣子之至情, 有不能自已也。 伏願聖明, 俯從群下顒望之情, 宗社幸甚, 臣民幸甚。

答曰: "覽爾疏辭, 雖出於人子之至情, 而但念稱慶, 是何等禮, 今日是何等時耶? 災異之荐臻, 國勢之岌嶪, 生民之困窮, 罔不由於涼德, 慄慄危懼, 錦玉靡安。 顧予何心, 作此豫大之擧乎? 決不可從也。" 因政院啓稟, 命承旨傳批, 王世子誠正閣, 降階跪受, 留承旨賜酒饌。


  • 【태백산사고본】 48책 41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13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